엽관제(獵官制)와 '나가수'
상태바
엽관제(獵官制)와 '나가수'
  • 정영수
  • 승인 2011.08.03 1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치칼럼] 정영수 / 프라임전략연구원 대표


엽관제는 선거에서 승리한 후보와 철학과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이나 선거과정에서 도움을 주었던 인사들을 주요 공직의 대상자로 발탁하는 영국과 미국에서 시작된 정치제도 중 하나이다.
 
엽관제에 대한 비판적 의견이 있지만 당선자 입장에서는 본인의 생각을 잘 이해하고 이를 주요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사람이나, 힘들고 어려운 정치역정에 본인과 함께했던 정치적 동지들을 정부 내 주요 자리에 임명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할 수 있다. 제3자 입장에서도 일정부분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전제조건이 있다. 엽관제는 '승자독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슈스케(슈퍼스타 K)를 통해 시작된 오디션 프로그램을 한 번 보자. 주요 방송매체들이 경쟁적으로 유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 대한민국은 가히 '오디션 천국'으로 불러도 될 듯싶다. '나는 가수다'는 대표적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나가수 폐인'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실력이 있었으나 소수 사람들에게서 기억되었던 임재범을 전국적 스타로 등극시킨 '나가수'는 기존 가수들을 대상으로 노래 경쟁을 통해 최후의 승자를 결정하는, 말 그대로 무한경쟁 룰로 운영된다.

많은 사람들이 '나가수'에 빠져드는 요인 중 하나는 우리사회가 공정한 룰을 기초로 운영되기를 기대하는 목마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가수' 운영방식이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 없고 최고의 선은 아니다.

모든 사회제도가 그렇듯, 이상적이고 완벽한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유토피아(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지구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유토피아를 찾아 헤매는 것처럼 사람들은 이상적인 사회제도를 기대하고 바라고 있다.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가 끝나고 난 후 당선자가 임명하는 인사들에 대한 비판적인 논조는 다름 아닌 '자기사람 심기'라는 단어이다. 즉, 엽관제 인사라는 것이다.

엽관제 인사는 공무원 내부적으로 볼 때 더욱 인정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지방 공무원의 경우 9급으로 공직에 입문하여 4급으로 승진하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불가능한 일이다. 9급으로 입직한 많은 공무원들이 4급으로 승진하지 못하고 공직을 정리하고 있는 게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당선자와 정치적 행보를 같이 했다거나 관계가 있다고 하여 관련분야 전문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4급 자리에 임명하니, 그 어떤 공무원이 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겠는가? 물론 공무원 비위를 맞추거나 눈치를 보라는 얘기가 아니다. 최소한의 상식이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일정부분 문제가 있음에도 선거라는 정치기제 속에서 그 효용성이 인정되고 있는 엽관제를 심각한 문제가 있는 제도로 만들고 있는 게 우리 정치 현실이다.

무릇 모든 제도의 가치와 유용성은 그를 운용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모든 공직자를 '나가수'처럼 무한경쟁을 통해 선발할 수는 없지만 공정한 게임 룰을 준수하면서 공직자를 선발하는 게 중요하다. 진보의 철학과 가치는 혁신성과 투명성에 있고 이를 훼손하지 않는 것이 진보의 존재 이유다. 그 철학과 가치가 훼손될 때 영혼 없는 진보, 보수적 진보가 된다.

앞으로 3년간 송영길 시장에게 필요한 것은 엽관제 장점과 '나가수' 장점을 활용하여 시정을 운영하도록 하고, 지난 지방선거를 통해 나타난 시민들의 뜻을 겸허히 생각하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