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그림책과 '교훈 어린' 어린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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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는' 그림책과 '교훈 어린' 어린이책
  • 최종규
  • 승인 2011.08.0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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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리야 나나·토미야스 요우코, 《도깨비를 혼내버린 꼬마요정》


 모든 책은 가르치는 책입니다. 모든 책은 배우는 책입니다. 어떠한 책을 읽더라도 가르침을 느낍니다. 어떠한 책을 읽히더라도 배울 수 있다고 깨닫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알쏭달쏭하지만, 학교나 집안이나 사회에서는 어린이가 읽는 책이나 옛이야기를 다루면서 ‘교훈-교훈적-교훈성’ 들을 읊곤 합니다. 어린이책에 ‘교훈이 있어야’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말이 많습니다. 어린이책에는 ‘교훈보다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책이든 ‘가르침’이 없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어느 책이든 ‘재미’ 또한 없을 수 없습니다. 모든 책에는 다 다른 가르침이 담기고 다 다른 재미가 깃듭니다. 그저, 모든 사람이 ‘모든 다른 책이 깃든 가르침과 재미’가 어떠한가를 ‘모두 다르게 살피거나 받아들여 삭일’ 줄 모를 뿐입니다.

 더 나은 가르침이란 없습니다. 더 나은 재미 또한 없습니다. 덜 떨어진 가르침이란 없습니다. 모자라거나 아쉬운 재미 또한 없습니다.

 심심하거나 밋밋한 맛이 좋은 맛일 때가 있습니다. 달콤하거나 달달해야 좋은 맛이지 않습니다. 멧자락에서 자라는 벚나무한테서 얻은 굵거나 작은 버찌를 아이랑 따서 오물오물 씹어 먹습니다. 버찌 맛은 달면서 시다가 떫습니다. 멧버찌는 이런 맛이네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보리둑을 따서 먹을 때에도 보리둑은 또 보리둑대로 달근하다가 똘또름하다가 텁텁하면서 시원합니다. 앵두는 앵두대로 앵두 맛이고, 살구는 살구대로 살구 맛이며, 오이는 오이대로 오이 맛입니다.

 오이를 달근하게 한다면 오이가 아닙니다. 수박을 달다가 시게 한다면 수박이 아닙니다. 멧딸기는 멧딸기 맛이 있습니다. 두릅은 두릅 맛이 있어요. 며느리밑씻개나 씀바귀는 며느리밑씻개나 씀바귀 맛입니다. 쑥은 쑥다운 맛이요, 보리와 밀과 수수와 벼는 보리와 밀과 수수와 벼다운 맛이에요.

 다 다른 목숨은 다 다른 맛을 혀한테 베풀며 내 몸으로 들어와서 씩씩하고 맑은 기운이 나도록 돕습니다. 똑같은 푸성귀는 없고, 똑같은 고기 또한 없으며, 똑같은 밥이란 없습니다.

 똑같은 사람이 없기에 똑같은 책이 없습니다. 똑같은 책이 없기 때문에 똑같은 가르침이나 재미가 있을 수 없어요. 다 다른 책에는 다 다른 가르침이 다 다른 재미라는 옷(맛)을 걸치면서 녹아듭니다. 책읽기란, 다 다른 사람들 다 다른 삶결과 삶맛과 삶멋을 곱게 받아들이는 일이에요. 어린이문학이든 어른문학이든, 그림책이든 사진책이든, 동화책이든 소설책이든, 다를 구석이 없습니다. 가르침이 없다면 거짓이거나 엉터리이고, 재미가 없다면 나 스스로 잘못 읽었거나 엉뚱하게 읽은 셈입니다.


.. 북쪽의 깊은 산꼭대기에 삼나무 세 그루가 있고, 그 아랫쪽에 작은 집이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꼬마 요정 비비와 엄마 요정이 살고 있었습니다 … 마침, 도깨비는 무척 배가 고팠습니다. 바로 눈앞에 나타난 아이가 너무 맛있게 보여서, 커다란 냄비에 넣고 끓여서 잡아먹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도깨비는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꼬마 아가씨, 잠깐 우리 집에 놀러가지 않을래?” “예, 좋아요.” ..  (1, 4쪽)


 그러나 때때로 얄궂은 책이 있어요. 가르침도 재미도 없이 만들어 내놓는 책이 있어요. 이와 같은 책은 돈바라기 책입니다. 책을 팔아 돈만 벌어들이면 된다는 매무새로 만든 책이기에 가르침이건 재미이건 없기 일쑤입니다. 또는, 가르침만 너무 도드라지도록 하거나 재미만 크게 돋보이도록 하고 맙니다.

 제대로 된 책이라면 가르침이나 재미가 눈에 뜨이도록 하지 않습니다. 맛으로 먹는 밥이 아니라, 맛을 느끼면서 먹는 밥입니다. 가르침이나 재미로 읽는 책이 아니라, 가르침이나 재미를 느끼면서 읽는 책입니다. 둘 가운데 어느 하나를 앞세운다면, 이러한 책은 처음부터 책다움이 없는 셈이요, 책다움 아닌 돈바라기에 휩쓸렸다는 뜻입니다.

 이리하여, 아이한테 책을 읽히려는 어버이는, 어버이로서 ‘어른이 즐기는 책’부터 옳고 바르며 아름다이 ‘가르침과 재미’를 누리거나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어른끼리 먼저 헤아려야 해요. 가르침이나 재미 한 가지만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책이 얼마나 도움이 되거나 재미가 있는가 느껴야 해요.

 책은 왜 읽을까요. 책은 왜 읽힐까요. 책은 왜 쓸까요. 책은 왜 만들까요.

 아이한테든 어른한테든 굳이 책이 없어도 됩니다. 책을 곁에 두지 않더라도 내 삶을 어여삐 여겨 사랑하는 나날이면 즐겁습니다. 내 삶을 알뜰히 아끼면서 내 이웃 삶 또한 살뜰히 보듬을 수 있으면 기쁩니다. 숲을 사랑하고 흙을 돌보며 바람과 햇살과 구름과 별을 너른 가슴으로 껴안을 수 있으면 예쁩니다. 책이란 곧 햇살이요, 바람이거나, 물이고, 흙인 한편, 목숨입니다.


.. ‘억, 힘이 센 아이로구나!’ 비비는 씩씩하게 소나무를 메고, 놀란 도깨비 앞으로 와서 금방 땔감을 산더미처럼 만들어 놓았습니다. 도깨비는 나무에 불을 지피면서 비비를 힐끗 보았어요 … 마침내 냄비 안의 물이 펄펄 끓었습니다. “자, 이제 물이 끓었으니 목욕을 하시죠, 꼬마 아가씨.” 도깨비가 말하자, 비비는 엄마가 하신 말씀을 생각해 냈습니다. “친절한 사람에게는 언제나 예의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그래서 비비는 공손하게 말했습니다. “먼저 하세요.” 그리고 비비는, 도깨비를 번쩍 들어 올려 냄비 안으로 ‘풍덩’ 집어던졌습니다 ..  (10, 21∼22쪽)


 그림책 《도깨비를 혼내버린 꼬마요정》(한림출판사,2000)을 읽습니다. 아버지가 먼저 읽고 아이랑 함께 읽습니다. 《도깨비를 혼내버린 꼬마요정》은 그림결이 몹시 귀여우면서 줄거리와 생각밭과 마음씨가 한결같이 아리땁습니다. 그림결만 앙증맞다든지, 줄거리만 가르침에 젖었다든지, 얼거리만 재미나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골고루 사랑스레 어우러집니다. 즐거이 읽으면서 예쁘게 바라볼 수 있고, 신나게 넘기면서 활짝 웃을 수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서 아름다운 삶과 꿈과 땀을 돌아봅니다. 멧골짜기에서 어머니하고 흙을 일구면서 보듬는 나날을 누리는 꼬마요정 비비는 하루하루 얼마나 새삼스러우면서 맑고 밝을까 되새깁니다. 내 몸에 고맙게 들어와 고맙게 기운을 북돋우는 밥 한 그릇처럼 착하고 참다이 살아가기에, 꼬마요정도 엄마요정도 착하고 참다이 이웃을 사귀면서 숲을 아낄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 도깨비를 메고 온 비비를 보고 엄마 요정이 말했습니다. “비비야, 누구시니?” “예, 손님이에요. 목욕물이 너무 뜨거워서 엉덩이를 데었어요.” 엄마 요정은 도깨비 엉덩이에 약을 골고루 발라 주었습니다. 그리고 엄마 요정은 비비와 도깨비를 위해 참깨, 버섯, 산나물을 섞어 특별한 주먹밥을 많이 만들어 주었습니다 ..  (28∼31쪽)


 요정이 되든 도깨비가 되든 뭐가 되든, 숲에서 살아가는 까닭이 있습니다. 나무하고 벗삼고 풀이랑 꽃이랑 동무하는 까닭이 있습니다. 흙을 맨발로 밟고 흙을 맨손으로 비비면서 지내는 까닭이 있습니다.

 꼬마요정한테든 엄마요정한테든 자가용이나 빨래기계나 냉장고나 텔레비전이나 아파트나 주식이나 높은 연봉 일자리 따위란 부질없습니다. 은행계좌에 숫자들이 빼곡하기 때문에 꼬마요정과 엄마요정이 착하게 살아가지 않습니다. 이름난 대학교를 빼어난 성적으로 마쳤대서 꼬마요정과 엄마요정이 ‘우락부락하게 생긴 도깨비’를 아무렇지 않게 ‘좋은 손님으로 여겨 맞아들이’지 않습니다.

 더 멋진 나무가 없습니다. 더 예쁜 꽃이 없습니다. 더 쓸모있는 풀이 없습니다. 나무이면 다 나무이고, 꽃이면 다 꽃이며, 풀이면 다 풀이에요. 질경이라서 숲길을 걸으며 안 밟고 망초라서 숲길을 거닐 때에 질근질근 밟아도 되지 않습니다. 강아지풀이라서 줄기를 똑 끊어서 놀고, 은방울꽃이라 그저 눈으로 바라보기만 해야 하지 않습니다. 모든 풀꽃은 하나같이 예쁜 목숨입니다. 모든 목숨은 저마다 빛나는 삶입니다. 꼬마요정도 도깨비도 어머니가 너른 사랑과 깊은 믿음으로 오래오래 뱃속에서 돌보며 기쁘게 낳은 목숨이에요.

 사랑을 받으며 사랑을 먹을 꼬마요정이자 도깨비입니다. 꾸지람을 들어야 할 때에는 꾸지람을 들어야 할 테지만, 살가이 손 맞잡으며 즐거이 어깨동무할 도깨비이고 꼬마요정입니다.

 꼬마요정은 도깨비를 꾸짖지 않았습니다. 도깨비는 처음부터 꿍꿍이가 있었으나, 꼬마요정이나 엄마요정은 아무런 꿍꿍이도 눈속임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바보나 멍청이가 아닙니다. 도깨비이든 윷깨비이든 이웃이나 동무나 손님으로 여길 뿐입니다.

 힘이 세대서 누구를 괴롭혀도 되지 않습니다. 돈이 많대서 누구를 부려먹어도 되지 않습니다. 이름이 높대서 누구를 깎아내려도 되지 않습니다. 얼굴이 예쁘대서 자랑하고 다녀도 되지 않습니다. 책을 많이 읽었대서 콧대를 높여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교사라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새로 배우면서 바지런히 땀흘리는 교사가 아니라면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합니다. 어버이 자리에 있기에 아이들을 보살피거나 키울 수 없습니다. 나이나 호적에 따라 어버이가 아닌, 삶과 사랑에 따라 사람다운 어버이여야 비로소 아이들을 보살피거나 키웁니다.

 어린이책은 누구라도 가르칩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와 어른을 가르칩니다. 어른책도 어른을 가르칩니다. 이야기책이든 문학책이든 그림책이든 시책이든 모두모두 사람들을 가르칩니다. 가르침이란 내 삶을 다시 보고 이웃 삶을 새로 본다는 뜻입니다. 배움이란 내 삶을 이웃이랑 예쁘게 나누고, 이웃 삶을 내 삶으로 곱게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재미란 착하거나 참다운 길을 씩씩하게 걷는다는 뜻이고, 가르침과 재미가 어우러질 때에 바야흐로 사랑이 꽃핍니다.

― 도깨비를 혼내버린 꼬마요정 (후리야 나나 그림,토미야스 요우코 글,이영준 옮김,한림출판사 펴냄,2000.4.3./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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