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 아침 들길 산책. 논에 벼가 많이 자랐습니다. 출렁이는 녹색 물결에 벼 모가지가 올라오면서 막 벼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논 물꼬를 돌보는 동네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녹색의 벼 논에 삐죽삐죽 고개를 쳐들고 하얀 꽃이 피었습니다. 아저씨는 벗풀 잎사귀가 예전 호롱불을 올려놓았던 등잔걸이와 비슷하지 않냐고 합니다. 그래서 벗풀을 '등잔걸이'라 부른다고 말합니다. 듣고 보니 그럴듯한 별칭입니다.
벗풀은 여러해살이풀로 알려졌습니다. 논이나 연못, 도랑 등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자웅동주(雌雄同株), 즉 암수한그루로 수꽃 아래에 암꽃이 위치합니다. 모두 지름이 1cm가 안 되는 3장의 둥근 흰색의 꽃잎을 가지고 있습니다.
논에 벗풀이 자라면 농부 손에 뽑혀나가는 잡초입니다. 불청객인 셈이지요. 뿌리째 뽑지 않으면 내년에 다시 올라오는 생명력이 강한 풀입니다.
농부의 눈총을 받는 벗풀이지만, 말린 벗풀을 달여 복용하면 간에 이롭고 뱀에 물렸거나 종기가 난 곳에 생풀을 찧어 붙이면 효과가 좋다고 합니다.
아저씨는 몇 년 전 오토바이를 타다 다리를 다쳐 걷는 게 예전만 못하십니다. 팔순을 넘기신 노인이 이젠 농사를 짓는 것도 힘에 부친다 합니다.



벼꽃이 막 패기 시작하고 녹색의 논에 듬성듬성 하얗게 핀 벗풀이 이색적입니다. 거기다 긴 목을 빼고 먹이 사냥을 하는 백로와 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그래요? 재고가 쌓이고 쌀 소비가 줄어서 그런대요."
구릿빛 아저씨의 얼굴이 어두워집니다. 애써 농사지어 제값을 못 받을 것 같다면서요.
"나 한창 일할 땐 말이야. 일 년에 1인당 평균 쌀 120kg, 그러니까 가마 반을 먹는다고 했어. 지금은 한 가마에도 훨씬 못 미치는 57kg을 소비한다고 하찮아. 이러니 풍년이 들면 재고가 쌓이고 쌀값이 오르기는커녕 떨어지지. 배부른 세상이야! 농사가 정말 힘들어!"

아저씨 말을 듣고 보니 팍팍한 농촌 현실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예전 같으면 쌀 한 톨 더 먹겠다고 논에 난 피며 잡풀 같은 것을 죄다 뽑았습니다. 요즘은 논에 핀 벗풀도 그냥 놔두고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토바이 시동을 걸며 아저씨가 운동 잘하라면서 한마디 하십니다.
"그나저나 용케 우리 동네는 비 피해 없이 잘 지나갔어. 그래도 쌀값이 어찌 되건 풍년은 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