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방의 공익근무요원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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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방의 공익근무요원과 나
  • 유은하
  • 승인 2011.08.09 17: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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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유은하 / 화도마리공부방


2년 전에 공익근무요원이 파견되었다. 여선생만 있던 공부방에 처음으로 남자가 근무하게 되었다. 교사나 아이들의 반응은 폭발적일 만큼 뜨거웠다. 젊은 청년이 아이들과 놀아주니 체력이 달리던 연로한 여선생들은 '공익'을 사랑하였다.

'공익'의 이름은 박승용이다. 처음엔 출퇴근 시간도 잘 지키고 시키는 일도 열심히 하였다. 그런데 이 기간이 3개월에 불과했다. 3개월이 지나자 슬슬 출근이 늦고 안 나오기도 하고 시키는 일도 잘 하지 않았다. "다른 근무처에서 일하는 '공익'은 컴퓨터 게임도 마음대로 하고 자유시간도 많다"면서 자신도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갈등이 싹트고 나와 '공익'과의 관계는 점점 파국으로 치달았다. 상대를 통제하기 위한 크고작은 전투를 치르는 전쟁은 5개월이나 지속되었다.

우리 '공익'의 전직은 '학교짱'이다. 강화도에서 잘 나가는(?) 친구들에게 이름 석자만 대면 모두 알아주는 '전설적인 악당'이다. 자기 세계에서 대장노릇만 하다 보니 업무를 지시하면 본인이 하고 싶은 일들만 했고, 공보다는 사를 우선시 했다. 정말 아플 때만 써야 하는 병가 35일을 모두 사용했는데, 주로 밤새 술을 먹고 아침에 '장렬히 전사'했을 때 활용했다. 의무는 등한시하고 권리만 챙기는 '공익'을 보며 내 주름살은 늘어만 갔다.

한 '포스'를 하는 '공익'을 아무도 꺾지 못했지만, 어느 날부턴가 '공익'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웬일인가 하고 살펴보았더니 우리 '공익'이 뜨거운 연애를 하면서 태도변화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여자친구가 술을 먹지 말 것을 권유했더니 그리했고, 싸우지 말라고 하니 싸우지 않았고, 출퇴근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니 그렇게 했다. (오! 사랑의 위대한 힘이여.) 자신이 해야 할 일도 군말 없이 해내는 이변을 보였다. 참으로 놀라왔다. 점차 '공익'에게 애정을 갖게 되었고 '공익'의 여자친구까지 신뢰하게 되었다. 사람이 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만이 사람을 변화시킨다.

8월 23일은 우리 '공익'의 제대 날짜다. 한때는 '웬수' 같아서 빨리 제대하기를 손꼽아 기다린 적도 있었는데, 막상 그 날이 다가오니 섭섭한 마음 그지 없다. 공부방 청소년 아이들이 센(?) 아이들에게 맞거나 위협을 당하면 나서서 해결해주었고, 아이들이 주먹세계로 나가지 않도록 상담해주고, 체육활동을 통해서 아이들과 끈끈한 정을 쌓아두었다. 화도마리 공부방 아이들은 강화도에서 어디를 가도 항상 든든한 '백'이 있어서 학교 생활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점차 어른을 알아보고 예의를 갖추려 노력하고, 공부방 아이들을 따뜻하게 감싸는 '공익'을 보면서 어느덧 내가 우리 '공익'을 아들처럼 아낀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익이 여자친구에게 집착하고 소유물처럼 대상화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집착하는 마음을 갖게 되니 그들의 연애가 좌충우돌하고 있다. 지난 50년 세월을 겪은 인생 선배로서 나는 공익에게 조언을 하고 싶다.

사랑이 항상 자작나무 불꽃처럼 타오르는 건 아니다. 써서 없어지는 소모품처럼 그 불꽃이 사그러들 때가 있다. 그 때가 되면 서로 몸을 태워서라도 그 불꽃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 주어진 순간순간을 늘 아끼며 사랑해야 한다. 늘상 갖는 마음과 언어가 주문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주문은 바라는대로 되어달라고 비는 소리다. 모든 소리는 파동을 지니고 있고 담겨 있는 에너지가 함께 전달되는데, 생명체와 사물이 이에 감응하면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면 최초 소리에 담긴 바람대로 이루어진다.

네가 상대를 미워하면 나쁜 에너지가 그대로 전달되어 싸우게 된다. 네가 상대를 아끼고 존중하면 사랑의 에너지가 증폭되어 언제나 행복할 터이다.

사람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다 주문이다. 소리는 그 자체로 뜻을 가지고 있다. 소리를 내는 사람의 에너지가 그 뜻에 실리기 때문이다. 소리를 내는 사람이 갖고 있는 에너지에는 제각각 차이가 있다. 소리를 내는 사람의 에너지만큼 전달된다. 그리고 받아들이는 사람의 에너지만큼 공명(共鳴)한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에는 바로 이러한 이치가 담겨 있다. 

항상 좋은 말과 긍정적인 말만 하여라. 그러면 그 말처럼 다 이루어질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주문의 영향을 가장 잘 받는 게 자기 자신이라는 점이다. 자기 속에서 나오는 말과 소리는 자신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되고, 가장 강력하게 공명한다. 자신을 바르게 하려면,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자신의 머리에서 생기는 생각을 바르게 하면 된다.

공익을 생각하면서 나는 주문처럼 기도를 한다.

"우리 '공익' 승용이 철들게 하시고, 습관된 나와는 별도로 '본래 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소서. 저 하늘에 떠 있는 태양처럼, 그대 안에도 눈부시게 빛나는 '본래 나'가 있음을 알게 하시고, 그것을 찾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로 여길 수 있게 하소서."

"우리 '공익' 승용이가 세상의 모든 여자가 다 자기 거라고 여기지 않게 하시고, 얼굴 예쁘고 몸매 잘 빠진 사람만 최고의 여자가 아님을 알게 하시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진 여인이 최고의 여인임을 알게 하소서."

"복학한 후에는 공부 열심히 하여 꼭 대학을 졸업하게 하시고,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으니 지금처럼 펑펑 돈  쓰지 말게 하시고, 전설적인 싸움 짱에서 세상에 아름다운 이름을 빛내는 광(光)짱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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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모 2011-08-30 08:25:29
이해인 수녀님의 십대들을 위한 기도를 교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기도라 생각하고 지냈는데 이 기도는 20대를 위한 기도로 중년의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울트라급 기도입니다. 유은하선생님 짱!

wkdgPtns 2011-08-08 09:12:54
유은하님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될것 같은 진솔한 글입니다^^기도 참, 현실적이여서....미소짓게합니다. 이땅의 모든 아들들에게도 이 기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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