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이 살아가는 땅과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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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이 살아가는 땅과 닮아간다
  • 최원영
  • 승인 2022.08.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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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제66화

 

 

 

오늘은 두 권의 책 속에 담긴 지혜를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상처가 누군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절망으로 상처를 더 키우는 계기가 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상처로 인해 더 큰 성장과 성숙으로 삶을 바꾸는 계기로 삼습니다.

먼저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류시화)에서 저자의 생각을 들어보겠습니다.

“삶이 우리를 밖으로부터 안으로 불러들이는 방법이 상처가 아닐까. 상처 없이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고,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으면 더없이 좋을 거다. 하지만 영혼은 스스로 고난이 필요한 시기를 아는 듯하다. 우리의 삶이 상처보다 크다는 것도.”

“모든 상처에는 목적이 있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가 상처를 치료하는 게 아니라 상처가 우릴 치료하는지도 모른다. 상처는 우리가 어떤 부분을 변화시켜야 하는지 정확히 일러준다. 돌아보면 내가 상처라고 여긴 것이 진정한 나를 찾는 여정과 다르지 않았다. 삶의 그물망 안에서

그 고통의 구간은 축복의 구간과 이어져 있었다.”

“‘매장’과 ‘파종’은 차이가 있다고 믿는다. 생의 한때에는 캄캄한 암흑 속에 ‘매장’되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어둠 속을 전력 질주해도 빛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나 사실 그때 우리는 어둠의 층에 매장된 것이 아니라 ‘파종’된 것이다.

청각과 후각을 키우고 저 밑바닥으로 뿌리를 내려 계절이 되었을 때 꽃을 피우고 삶에 열릴 수 있도록 말이다.

세상이 자신을 매장시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걸 파종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매장이 아닌 파종을 받아들인다면 불행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이 이야기가 아픈 상처로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기를 바랍니다.

고통은 ‘매장’이 아니라 ‘파종’이고, 둘 중의 어떤 선택을 하느냐를 순전히 나의 몫이라고 받아들일 때 보이지 않던 희망이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사람만 그런 게 아닙니다. 자연의 세계도 다르지 않습니다.

《무지개 원리》(차동엽)에는 고급 포도주와 잘생긴 값비싼 소나무가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프랑스산 포도주는 유명하다. 그런데 프랑스 어느 마을에서는 좋은 포도주를 생산하기 위해 포도나무를 심을 때 일부러 좋은 땅에 심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토질이 좋은 땅에 심으면 쉽게 자라서 탐스러운 포도가 열리긴 하지만, 뿌리를 깊이 내리지 않아서 땅거죽의 오염된 물을 흡수하기 때문에 포도의 품질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척박한 땅에 심으면 빨리 자라지는 못해도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려 좋은 물을 흡수하기 때문에 오염되지 않고 품질이 뛰어난 포도를 얻는다.”

“소위 말하는 ‘잘생긴 소나무’들이 자란 땅을 파보면 배수가 어렵고 토양이 매우 거칠다. 말하자면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경우가 많다. 살아남기 어려운 곳에서 자란 소나무가 명품이 되는 거다. 쉽게 이루는 일보다 힘들게 이루는 일이 더 가치가 있음이다. 반대나 저항이 없으면 발전 가능성도 없다. 공기에 저항이 없으면 독수리가 비상할 수 없다. 물에 저항이 없으면 배가 뜰 수 없다. 중력이 없으면 걸을 수 없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는 땅과 닮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농부는 땅을 닮아 정직합니다.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가 곧 나의 ‘땅’입니다. 그리고 훗날 그것은 나의 인격으로 승화됩니다. 슬픔과 아픔, 이 모든 것이 인격의 씨앗입니다. 그리고 그 씨앗이 열매를 맺을 즈음 내가 만든 그 열매는 누군가에게 단비가 되어줍니다. 이것이 삶입니다. 이것이 고통이 주는 놀라운 선물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그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를 소망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는 땅과 닮아간다는 말에서 ‘땅’은 그 사람의 성향이나 가치관 등을 형성하는 토대가 되는 말입니다. 마치 기름을 늘 다루어야 하는 사람의 옷에서 기름 냄새가 나는 것처럼 지금 우리가 늘 마주하고 있는 것들이 곧 나의 성향이나 품성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잠시 짬을 내어 ‘나는 무엇에 관심을 갖고 살아가는가?’ ‘내가 늘 보고 있는 것,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또는 내가 늘 만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를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그런 것들이 ‘나’를 결정짓게 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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