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배추 잘 자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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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배추 잘 자라고 있습니다
  • 전갑남 객원기자
  • 승인 2022.08.29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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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배추도 가을바람을 알아보는 것 같아요."

며칠 사이에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을까? 처서(23) 지나고부터 아침저녁 공기가 선선해졌습니다. 잦은 비로 습도가 높은 열대야에 시달리다 요 며칠 얇은 이불을 끌어당기며 잠을 푹 잤습니다. 바람 속에 가을이 들어 있는 게 분명합니다.

졸지에 가을 기운이 들었겠습니까? 이미 징조는 있었습니다. 말복 지나고부터 새벽잠을 깨우는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으니까요.

이웃집 아저씨가 오셨습니다.

"어라, 이 집 배추는 땅맛을 본 것 같네그려! 언제 모 심었남?"
"한 열흘 되었어요."
"몸살도 않고 잘 자랐네!"
"아니에요. 한 이틀 시들시들 앓다가 깨어난걸요."
 
포트에서 모를 옮겨놨으니 새 땅에 적응하려면 몸살을 앓는 것은 당연지사. 뿌리가 흔들린 어린 모는 따가운 한낮에 목숨이 간당간당하다 해가 누그러지고 밤이슬을 먹으며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리고선 언제 앓았나 싶을 정도로 씩씩합니다. 참 대견합니다.
 
아저씨는 감기 기운이 들어 혹시 코로나에 걸렸나 하고 큰 걱정을 했습니다. 음성 판정이 나와 감기약을 처방을 받아 빨리 회복하였다고 합니다. 배추모가 몸살을 앓고 깨어나 싱싱하게 자라는 것처럼 몸이 가뿐하니 날아갈 것 같다고 말합니다. 더욱이 코로나 안 걸린 게 얼마나 다행이냐면서요.
 
아저씨가 커피 한 잔을 달게 드시며 말씀하십니다.
 
"요 녀석들도 몸살을 앓고 기운 차렸으니 지금부턴 잘 자랄 거야. 바람 속에 가을이 들어 있다는 걸 식물도 용케 안다니까!"
 
말 못 하는 식물도 계절을 알아보는 것은 사람 못지않다고 말을 잇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때맞춰 가을비가 아주 얌전히 내리네요. 배추 자라기에 딱 알맞게요.
 
소중한 새싹들이 예쁘게 잘 자랄 것 같습니다. 사람의 정성과 자연의 도움으로.
 
땅맛을 본 듯 싱싱하게 자라는 배추.
배추모는 적당히 사이를 두고 가꿉니다.
우리는 참외와 소박을 심었던 자리에서 실컷 따먹고 줄기만 거둬낸 뒤, 비닐에 구멍을 뚫고 모를 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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