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좋은데, 공짜의 끝은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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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좋은데, 공짜의 끝은 어딘가?
  • 하석용
  • 승인 2011.08.10 17: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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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하석용 / 공존회의 대표 · 경제학 박사


대한민국 국민은 역시 복 터진 국민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이 나라에서 가장 큰 양쪽 정당이 서로 앞을 다투어 모두 거저 주겠다고 하지 않는가. 이제 어느 쪽이 나라 살림을 맡게 되더라도 국민들은 무조건 두 다리를 쭉 펴고 잠을 잘 수 있을 모양이다. 일자리 걱정을 해주더니 노년 걱정도 해주고, 공짜 의료도 생각해 보겠다더니 집까지 반값으로 깎아주고, 자식들 밥을 거저 먹여주더니 이제는 대학 등록금 걱정에다 아이도 낳기만 하면 나라가 거저 길러 주겠다고 하니, 이렇게 고마운 나라가 어디에 따로 있겠는가. 거기에다 세금까지 올리지 않겠다는 데야 더 무엇을 바라랴.

그런데 이렇게 말을 하고 나서도 무언가 찜찜하게 미혹함이 남는 건 또 무슨 일일까. 원래 화려한 약속은 야비한 배반을 숨기기 쉽고, 복에 겨운 백일몽은 그보다 더 큰 허무를 예비하게 마련이라는 걸 약삭빠르게 감지하는 탓일까. 아마도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격조 높은 경제학의 화두 따위를 기억하기 때문은 아닐 터이다. 필경 "이놈아, 인간이 그 따위로 공짜만 밝혀서는 사람되기는 틀린 것이여. 인간이 될라믄 일을 해야지! 일을!"이라고 동네 건달들을 채찍질하던 우리 "영감님"들 말씀에 길들어 있는 탓일 것이다.

그렇다. 나는 공짜에 낯설다. 어쩌다 공짜 비슷한 사건이라도 생기면 차라리 불안하다. 꼭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우리 민족은 대체로 그렇게 살고 길들어 왔다는 생각이다. 물론 살다보면 이렇게 저렇게 공짜가 더러 생기게도 마련이지만, 그런 우연조차도 무엇인가 세상에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아직 주변에서 적지 않게 만나고 있다. 물론 그 반대로 공짜의 즐거움에 날로 길들어가거나 이미 무감각에 빠져가는 사람들도 동시에 확인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언이폐지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 공짜라는 건 공짜가 아닌 것보다는 많은 문제를 갖는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내게 공짜인 것은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부담이 되게 마련이라는 걸 무슨 수로 부인한다는 말인가. 내가 이유 없이 즐거울 때 누군가는 이유 없이 힘들어 해야 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배 터지게 많이 갖고 있어서 쓰지도 못하고 썩어나갈 재산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일지매를 통해 빼앗아 쓴다는 짓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아무래도 내 영혼이 그로부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일도 아니려니와, 내 나라가 일지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없다.

인간들이 집단을 이루어 살다 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모든 분야에서 우월한 집단과 다소 뒤처지는 집단이 형성되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모든 인간은 스스로 우월하기를 희망하고, 실제로 그럴 수 없을지라도 그러한 우월한 위치에 따르는 이익과 안전만은 똑같이 누리기를 원한다. 비록 향유하는 행복의 양적인 크기가 다르다 하더라도 질적으로는 동일한 삶을 살기를 원하고 이것을 인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를 모를 정치인은 없다. 모두 그렇게 해준다고만 하면 표를 얻는데 더없이 좋다는 걸 모르는 정치인은 바보다.

그와 같이 삼척동자도 다 알 일을 두고 네가 먼저니 내 것을 베꼈느니 해서 서로 다투는, 왕년의 이 나라에서 손꼽히던 수재들 모습이 보기에 민망하다. 세상의 어느 정치인이라도 그렇게 하면 쉽다는 걸 몰라서 안 하는 것이겠는가. 문제는 그 공짜의 끝은 어딘가라는 게 문제가 아닌가. 이미 최저생계비 수령을 두고 이 땅에서 벌어지는 부조리를 보고 무상 보육이 어떤 가치관과 혹시라도 가정 파괴를 가져오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라도 해 보았는가. 

공짜는 반드시 타성을 낳게 마련이고 많은 인간적인 미덕을 파괴하는 이면을 갖고 있다. 혹시라도 이 나라의 오늘을 만들어낸 근로와 절약의 미덕과 인생에 대한 자기책임의식이 해체될 때, 이 나라 지도부는 어떤 대안을 준비하고 있는가. 국가마다 Big Society(영국 캐머런 내각의 '큰 사회' 프로젝트)가 어떻고 해서 이 문제에 어렵게 접근하는 이유를 이 나라 영재들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달통해서 나오는 이야기가 이것이란 말인가.

이제 공정과 공평이 어떻고…. 재정문제 따위 길게 얘기하고 싶지도 않다. 당신들과 어차피 통하지도 않을 논리적인 쟁론을 펴고 싶지도 않다. 다만 말해 달라. 당신들이 생각하는 공짜의 끝은 무엇인가. 거기에는 만인의 행복이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만인의 공멸인가. 그도 저도 아니면, 그냥 가는 데까지 가보자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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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가 아니다 2011-08-12 14:11:30
무분별하다고 말하지만 꼭 필요한 것이라면 과감히 실행해야한다.
재원마련대책을 세우지 않기 때문에 공짜라고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하는 복지정책이 어째서 공짜란 말인가?
부자감세를 철회하고 미래세대를 위해 증세를 해서라도 시행할 것은 시행해야한다.
복지정책은 미래에 발생할 수도 있는 위험사회의 위험도를 줄이고 심화되는 빈부격차를 줄이면서 모두가 함께 살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이다.
공존회의 대표라는데 어떤 공존을 말하는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가만보니 2011-08-09 09:31:24
공짜는 없습니다. 맞습니다. 인간사는 무언가 받으면 그만큼의 댓가를 치르던지,받은 것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않고 가슴에 간직하던지, 뱉어내지 않은 두려움으로 긴장을 하던가, 그런 일상이 익숙해지던가...사람이면 그러기 마련입니다. 가진자와 없는자의 간극이 너무 크지 않고, 더불어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정부가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입니다. 다만 하석용님은 그 해결책을 지면을 통해 낱낱이 표현하지 않았음을 글을 읽으며 느꼈습니다. 정책의 문제들을 직구로 던져주는 님은 가끔 제 가슴을 시원하게도 합니다.

지나가다 2011-08-09 08:24:47
무분별한 복지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권을 걱정스러워 하는 것은 공감이 갑니다. 하지만 '공짜'라는 표현은 언어도단이네요. 더군다나 '공짜'의 예로 들고 있는 항목을 보면 필자가 경제학자가 맞는지 살짝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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