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 하늬해변의 녹슨 용치를 감싼 강화 소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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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 하늬해변의 녹슨 용치를 감싼 강화 소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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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9.09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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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선 작가, 설치미술 '무뎌진 기억 : 새김’ 전시
하늬해변에서 9월 13~26일까지 2주간 열려

서해 최북단 백령도 하늬해변에서 한희선 작가의 장소특정미술(설치미술) ‘무뎌진 기억 : 새김’이 9월 13일(화)일부터 26일(월)까지 2주간 전시된다.  

백령도 하늬해변이라는 작품의 위치 그 자체가 작품을 구성하는 주된 요소가 된다. 작품의 구성요소가 자연적 배경을 보충하거나 특정 장소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 의도적으로 계획되고 배치된 장소특정미술(site-specific art)) 작품이다.

멸종위기동물인 점박이물범의 서식지로 잘 알려진 하늬해변에는 아름다운 해안선과 시원한 수평선이 펼쳐있고 바다 건너 북한의 월래도가 손에 잡힐 듯하다.

하늬해변에는 북쪽의 보하이만 번식지와 하늬해변 서식지를 철마다 자유롭게 오가는 점박이물범이 산다. 그러나 남과 북이 경계를 짓고 대적하고 있으며,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냉전시기의 대전차방어 시설인 용치가 정전이 아닌 휴전 중임을 말해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다시마와 굴을 채취하는 주민들의 평화로운 일상과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라고 하기엔 너무 역설적인 현장이다.

설치미술 작가 한희선은 여기서 존재의 흔적과 소멸 과정을 관찰하며 모든 존재들이 서로 관계맺고 있음을 조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무뎌진 기억, 새김’은 백령도 하늬해변이라는 특정한 장소와 강화 소창이라는 지역적 소재를 가지고 서로 연결 지으며 얻어지는 흔적으로 존재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세월을 거스르지 못하고 부서지고 녹슨 수백개의 용치들은 늙은 군인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백령도를 지키는 젊은 군인의 밝고 상기된 표정이다.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둘의 관계는 마치 철이 산화되어 녹이 슬었지만, 제련 과정을 거쳐 다시 철로 환원되는 듯하다.

성글게 짜여진 강화 소창은 낡고 차가운 용치로부터 흐르는 녹을 감싸 안고 그들의 희생과 노고를 위로하며 온 몸에 새긴다.

피고름 같은 녹은, 산화된 용치의 흔적은 소멸이 아닌 환원을 동시(同視)하고, 텅 빈 백지이자 존재를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 같은 소창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서로에게 ‘사이흔적’을 남기게 된다.

무뎌지고 녹슨 용치는 산화된 시간만큼 현재를 지탱하고 평화와 안전으로 환원된 기억해야 할 존재들이며 우리 마음에 새겨야 할 흔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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