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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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 윤세민
  • 승인 2022.09.14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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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민 교수의 자기계발 칼럼 - ‘소통과 대화’]
(3) 자신에 대한 이해
윤세민 경인여대 영상방송학과 교수의 컬럼 '소통과 대화'를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일상에서 늘 중요하다고 강조되는 '소통'과 '대화'에 대해 제대로 알고 또한 실제 삶에 적용하여 성공과 행복의 길을 열고자 합니다. 윤세민 교수는 언론학 박사이자 커뮤니케이션 전공 연구자로서 대학과 대학원에서 ‘소통’과 ‘대화’ 관련 강의와 연구를 20년 넘게 해오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좌상. 인류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여전히 경고한다. -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 좌상. 인류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여전히 경고한다. - “너 자신을 알라!”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물음에 쉽게 답할 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나’에 대한 또 ‘인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지만, 사실 가장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철학자, 심리학자를 위시해 유전학자, 인류학자 등 많은 학자들이 개념화해 오긴 했지만, 여전히 명료한 해답은 없다.

세계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장발장이 주인공인 소설 <레미제라블>을 통해서 인간이 치러야할 싸움을 세 가지로 묘사하고 있다. 즉, 자연과의 싸움, 인간간의 싸움, 자신과의 싸움이다. 이 중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자신과의 싸움이라 했다. 그 이유는 인간은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류의 대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이미 2,500년 전부터 “너 자신을 알라!”고 경고한 이래 철학자들의 한결같은 견해이기도 하다.

‘나’를 지칭하는 영어 일인칭 대명사의 주격 ‘I’와 목적격 ‘Me’는 엄밀히 말해 동일한 ‘나’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I’는 내가 생각하는 ‘나’이지만, ‘Me’는 남이 생각하는 ‘나’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문호 고 이어령 교수가 쓴 에세이 <아들이여 이 산하를>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 긴 수염이 가슴을 덮는 노인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 노인은 길을 걷다가 어린아이를 만나게 된다. 아이는 이렇게 물었다. “할아버지는 주무실 때 그 긴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주무십니까, 꺼내놓고 주무십니까?” 노인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긴 수염을 10년이나 길러 왔고 수천 번 이불을 덮고 잤었지만, 그 수염을 어떻게 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래서 노인은 오늘 밤 자보고 내일 아침에 알려주겠다고 대답한다. 그날 밤 노인은 수염을 이불 속에 넣고 자려다가 갑갑한 것이 옛날엔 꼭 바깥에 내놓고 잔 것 같았다. 그래서 수염을 내놓고 잠을 자려고 해본다. 이번엔 허전한 것이 옛날엔 이불 속에 넣고 잔 것 같았다. 밤새도록 그 노인은 이불 속에 수염을 넣었다 꺼냈다 하면서 한숨도 못 잤다. 다음 날 아침 어린아이를 만났을 때에도 끝내 노인은 수염을 어떻게 하고 잤는지를 말해 주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노인처럼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자기의 수염이지만 그 수염을 의식하지 못한 채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기계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젊었을 때 알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인생의 세월이 깊어질수록 내가 누구인지를 더 분명히 알고,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린 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 “나는 누구인가?”

진정 나는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가? 나는 정말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가?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내가 진짜 내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진짜 나는 누구인가?

여전히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은 난제 중에 난제이다.

 

나, 자기, 자아

일반적으로 ‘나’(자기-The Self)는 인격의 핵심 부분을 가리키는 심리학적 개념이다. 이것은 다양한 구성 요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유전적 요소와 환경적 영향 사이의 상호 작용을 통해 하나의 응집력을 지닌 형태를 갖는 것으로 간주된다.

아울러 이 ‘나’는 ‘자아’(自我, Ego)로도 통칭된다. 자아는 생각, 감정 등을 통해 외부와 접촉하는 행동의 주체로서의 ‘나 자신’을 말한다. 우리 일상의 모든 경험(감각, 사고, 행동 등)의 밑바닥에 있는 모든 경험을 통일하여 모든 경험을 하고 있는 바로 그 당사자라고 생각되는 ‘의심할 수 없는 자신’을 말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심신은 늘 성장하고 변화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스스로를 늘 같은 자신으로 생각하고 타인과 구별한다. 이 ‘동일하다고 의식한 자기’를 자아라고 한다.

철학자 칸트는 본능과 욕망에 의해 살고 있는 경험적인 자아 이외에 도덕적으로 살려는 자신(양심)을 신적(神的)인 인간의 본질로 생각하여 ‘본래적인 자기’라고 불렀다. 정신분석학자인 칼 융은 원형으로서의 자기(self)와 대응되는 다른 자아를 언급하기도 했다.

발달 심리학에서는 ‘외부환경과의 상호작용과정에서 획득하게 되는 자신에 대한 이해’를 자아로 정의한다. 정서적인 자아는 생후 15개월을 전후해서 지속적으로 발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인지 심리학에서는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을 인지할 수 있다든지 부끄러움을 경험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자아의 초기 발달뿐만 아니라, 남성 또는 여성으로서의 자아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아정체감 등 자아는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성인기 이후 등 계속해서 변화하고 발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자기개념 - “나는 어떤 사람”

위에서 언급한 ‘나’에 대한 여러 사전적, 학문적 풀이를 기초로 형성된 개념이 바로 ‘자기개념’(self-concept)이다. 이 자기개념은 “나는 어떤 사람”이라는 자기인식이다. 즉, 인식대상으로서의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그 총체가 자기개념인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개념을 형성해 가는 과정은 자신이 타인의 인상을 형성해 가는 것과 유사하다.

자기자각이론(self-perception theory)에 따르면, 자신의 외현적 행동을 보며 스스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외현이 아닌 자신의 내적인 생각과 감정 등에 기초해 자신을 판단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타인들과의 지속적인 비교를 통해서 자기개념을 형성해 가기도 한다. 사회비교이론(social comparison theory)에 의하면, 개인이 지니고 있는 자기개념들은 타인들과의 지속적인 비교와 반응의 결과로 구성된 생각의 총체이다.

이렇게 생겨지는 자기개념은 일반적으로 신체나 외모에서 기인하는 신체적 자기, 사회적 영향 아래 기인하는 사회적 자기, 내적인 감정과 정서에서 기인하는 정서적 자기, 이성과 지적 능력에 기인하는 지적인 자기 등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이 자기개념은 그것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에 따라서 한 인간의 정체성과 그 삶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

부정적 자기개념과 긍정적 자기개념, 그리고 부정적 자기개념을 긍정적 자기개념으로 바꾸는 길에 대해선 다음 회에 이어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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