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항필 / 감정평가사
지난 여름 문재인 전 대통령은 SNS를 통해 현 정부 인사들에게도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으로 소개한 <지정학의 힘>은 윤석열 대통령과 서울대 법대 동기인 김동기 변호사가 쓴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세계 최강의 해양 세력(Sea Power)인 미국, 대륙 세력(Land Power)인 러시아,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림 지역(Rim-Land)의 강자로서 중국에 대해 정리하며 한반도는 시파워와 랜드파워의 힘이 충돌하는 최전선에 위치한 운명으로 슈퍼파워간 복잡한 이해관계로 한반도의 통일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며, 우리의 현실을 더 큰 시각에서 전략적으로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태평양 너머 칠레의 지진이 “불의 고리”를 이루고 있는 동아시아 화산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판구조론을 모른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과 같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을 둘러싼 양안관계의 긴장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세계정치의 지정학적 힘에 대한 이해없이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지정학의 힘>은 세계정치에 대한 판구조론적인 시각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다. 국가의 미래에 대한 지정학적 관점이 중요한 만큼, 도시의 미래를 위해서도 지정학적 관점은 중요하다. 하물며 1필지의 부동산을 매입할 때도 가장 우선적인 고려 대상이 “위치”적 요인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과 강한 공명성을 가지고 있는 인천이라, 인천인(仁川人)으로서 인천의 지정학적 지향점을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인천은 백제시대부터 인천의 능허대를 통해 중국과 교류해 왔고, 덕적도와 옹진반도를 거쳐 중국 산동으로 이어지는 항로의 출발점이었다. 대외무역에 개방적이었던 고려왕조가 개성으로 도읍하면서 인천의 해상교통 거점의 역할은 더욱 강화되었고, 개성에 이르는 수로 입구에 있는 강화·교동 등은 대외교통의 거점으로 개발되어, 이를 군사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수도 개성의 남방지역을 방어할 안남도호부를 부평에 설치했다. 당시 안남도호부에는 시흥·양천·통진· 김포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렇게 인천은 고려왕조 기간에 날로 번성하여, 숙종 때 경원군(慶源郡)이 되고, 이어 인종 때는 인주(仁州)로, 고려말에는 ‘칠대 어향(七代御鄕 : 7대 왕에 걸쳐 왕비를 배출한 고향)’이라 하여 경원부(慶源府)로까지 격상되었고, 강화는 몽골 침입 때 피난 수도로서 고려시대 인천의 위상은 높았었다.
그러나,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내건 조선은 대내적으로는 자급 자족적인 토지경제와 “사농공상”으로 대표되는 공상(工商) 천시 정책을 펼치고, 대외적으로는 중국 명나라와 같이 해금책(海禁策)을 펼치면서, 인천은 태조 때 “경원부”에서 인주(仁州)로, 태종 때는 인천군(1413년)으로 강등되었고, 황해를 통한 해상통상은 전면 금지되어, 대외무역으로 번성하던 인천은 그 후 지리적 이점을 상실하면서 개항 이전까지 평범한 농·어촌으로 변모되어 갔다. 인천이라는 행정명은 인주(仁州)에서 ‘인(仁)’자와, 지방행정 구역의 이름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산(山)이나 천(川)을 붙이도록 한 조선시대 행정구역명 원칙에 따라 ‘천(川)’자가 합해져 탄생한 것이라 한다.
고려 시기 500여 년 동안, 수도 개성에 이은 제2의 도시로서 경원부까지 성장하던 인천은 개항 전까지 근 500년간 평범한 어촌마을로 쇠락해 갔지만, 1882년 제물포조약에 따른 개항은 다시 한번 인천의 지리적 강점을 일깨웠다. 개항 이후 인천은, 최초로 서양식 대불호텔(大佛 hotel)이 건립되었고, 1888년에는 한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인 만국공원(현 자유공원)이, 1897년에는 한국 최초의 경인선 철도가 부설되어, 수많은 외국인이 들어오는 관문이 되었다. 그간 평양을 거쳐 의주를 통해 중국으로 연결되던 대외교류 루트가, 인천항과 경인철도를 통해 근대문물과 만나는 통상루트가 형성되면서, 인천은 대한제국이 서구와 만나는 통로이자, 대한제국의 근대국가 건설 의지가 표현된 국제도시로서 변모해 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1910년 한국이 일본에 강점된 이후, 일본과 직접 연결되는 부산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경부선과 경의선으로 연결되는, 일제의 침략 축을 중심으로 개발되면서 인천의 위상은 다시 약화하여, “월미도”로 기억되는 서울의 위락지로, 일제의 대륙 침략기에는 쌀 수탈 항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지정학적 관점에서 인천의 역사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과 함께해왔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면 인천 앞바다는 전쟁터가 되었다. 대부도 인근 풍도 앞바다에서 시작된 청일전쟁과 인천항과 뤼순에 대한 기습으로 시작된 러일전쟁, 인천상륙작전, 남북 긴장 시기의 연평해전등이 이를 보여준다. 반면, 지정학적 기회가 커지면 고려시대 인천지역의 부흥과 개항기 인천의 발전, 1990년 이후 대중무역 발전에 따른 인천의 성장 등이 보여주듯 발전과 번영의 동력으로 작용해 왔다. 지정학적으로 한반도는 “불의 고리” 위에 위치하고, 인천은 그 “불의 고리” 위에 화산임을 인천의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인천의 지정학적 지향점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지점이다
소연방 해체 이후 30년간 공들여온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의 지정학적 리스크 관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파탄이 났다. 그 후유증과 상처는 깊을 것이다. 에너지는 러시아에, 대외무역은 중국에 힘을 실어 왔던 서유럽의 진퇴양난은 앞으로 서유럽에 어려운 정치, 경제적인 짐이 될 것이다. 이미 유럽의 화산은 터져버린 화산이다. 이러한 지각변동의 기운은 동아시아 지각판에도 응축되고 있다. 대만에서 터질 것인가? 한반도에서 터질 것인가? 서유럽과 공통의 난제를 앞에 두고 윤석렬 정부에게 책 읽기를 권유한 문재인 전 대통령의 답답한 심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러나 미·중 패권경쟁의 지각변동이 시작되는 동안 우리를 비롯한 중견국가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 답답함의 근원은 강대국적 상상력이 결여된 “소국주의적 소심함”이다. 지정학적 힘이 강대국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의 전략적 상상력으로 주도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습성화된 “소국주의의 소심함”이 먼저 극복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