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히만이 '나는 죄가 없다'고 말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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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히만이 '나는 죄가 없다'고 말한 이유
  • 안태엽
  • 승인 2022.11.0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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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안태엽 / 자유기고가

1939년 히틀러는 체코에서 독일어를 쓰는 지역을 합방하고 전쟁을 계획했다. 그러면서 공식적으로는 모든 전쟁을 유대인 탓으로 돌렸다. 전 유럽에서 유대인들을 조직적으로 죽이는 것이 실행에 옮겨졌고 이때부터 인간 도살 작업은 시작됐다. 유대인 수용소 아우슈비츠를 비롯해 쉴로센브르크, 작센하우젠, 베르겐벨젠, 노르트 하우젠, 등지에서 군비 절감을 위해 가스실로 보내진 유대인 500만 명은 처참하게 죽어갔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히틀러의 고위급 장교로 유대인들을 수용소로 이송하는 총책임자였다. 그는 유대인을 여러 수용소로 나누어 독가스실로 보내 대량 학살하였다. 전 세계 사람들은 그를 악마나 괴물로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그는 우리와 같이 평범하게 생긴 도덕적인 인물이었다. 전후 8개월의 긴 재판 과정은 전 세계로 생중계되었고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뉴욕 특파원 자격으로 재판 과정을 취재했다..

학살 된 유대인들
학살 된 유대인들

법정에서 아이히만은 “나는 칸트의 규정대로 살았고 잘못한 것이 있다면 단지 법을 따르고 지시와 명령에 충실히 복종했을 뿐, 나는 죄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 당신들은 법이 명령하는 것을 따르지 않겠냐”고 되묻기까지 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유죄인 이유로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으로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 것이 유죄인 이유”라고 말한다.

아아히만의 항변은 ‘법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인지 사람이 법을 위해서 있는 것인지’ 헷갈리게 한다. 히틀러는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을 관리하는 정부는 얼마나 행운인가!”라는 말을 했다. 우리는 어느 때 아이히만처럼 될까? 아무 생각 없이 상황에 따라 살며 생각하지 않을 때, 주어진 일에만 연연하며 사유하지 않을 때 아이히만처럼 엄청난 범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이히만
아이히만

이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그 당시 독일의 다수 국민들도 자기 집 앞마당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았고 알려 하지도 않았다. 알려면 얼마든지 알 수 있었지만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았고 모르는 사람은 질문하지 않았으며 질문한 사람에게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치당에 입당하여 좋은 직장에 월급이 보장되는 화이트칼라들과 일한다는 것에 자랑스러워했다.

선전, 선동의 대가인 괴벨스 속기사였던 ‘브룬힐테 폼젤’도 아이히만과 다를 게 없었다. “나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그러니 잘못한 게 없지요. 죄는 누군가에게 나쁜 짓을 한 것인데 나는 남에게 해롭게 한 적이 없다”고 폼젤은 말했다. 그러나 침묵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방조자였고 히틀러에 조력자 역할을 한 셈이었다. 아무런 의문 없이 믿고 복종한 평범한 사람들의 침묵, 묵인과 방관으로 ‘고의적 태만’이 악을 불러왔다고 수용소 생존자인 ‘프리모 레비’는 말했다. 결국 정치적 무관심은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갈까? 히틀러는 “거대한 거짓말일수록 사람들은 잘 믿는다”고 말했다.

위선과 거짓으로 얼룩진 우리 국정을 무력하게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하는지. 사람들은 그들에게 무수히 당하면서도 생각한다고 말할까. 유, 무식은 책가방 줄이 긴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의지를 잃는 순간 누구나 악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80년전 독일이 여실히 보여 준다.

군중 속에서 거대한 여론에 대해 타성에 젖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고의적 태만’으로 다른 이에게 피해가 될 줄 알면서 폼젤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건 아닌지? 정치인의 이슈가 터질 때마다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고민하기보다는 편향된 언론을 따라가며 자신의 소속감과 안도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독일 국민들도 많은 것을 알려 하지 않았다. 알게 되면 마음에 부담이 될 것 같아 외면했다. 

히틀러의 전체주의 성향이 사라졌으면 전체주의가 사라진 것일까? 길 잃은 정치, 극도의 양극화와 불평등, 수많은 차별과 관계들의 분열, 이처럼 사회가 혼란스럽고 먹고살기 힘들 때 다수가 갈망하는 것을 해결해 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우리도 독일 국민들처럼 모든 것에 동조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히틀러 취임 직후 국민들은 그에게 희망을 품었다. 

“1939년 나치 시대와 지금의 우리 시대는 많은 부분 닮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학자가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우리가 더 현명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려면 자신의 무의식 속에 있는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 행동하는 국민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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