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은 민주적인 평화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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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은 민주적인 평화 행위입니다"
  • 배영수
  • 승인 2011.08.17 16: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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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이 만난 사람] 윤학원 인천시립합창단 지휘자


취재 : 배영수 기자

최근 예능에서 활약해 주목을 받고 있는 '국민할매'이자 기타리스트 김태원이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살아 있는 바흐를 만나고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30년 남짓 록 밴드 '부활'을 이끌며 음악적 자존심이 무척 강하다고 알려진 그가 '살아 있는 바흐'라며 극찬하고 있는 이는 바로 그가 지휘를 배우고 있는 윤학원 인천시립합창단 지휘자.
 
'인프라'가 전무하다시피 했던 한국 합창계에서 일찍부터 활동한 백전노장이지만, 노병답지 않게 가장 많은 '개혁'을 이룬 인물도 바로 그였다.
 
똑바로 서서만 부르는 인식이 강했던 합창음악에다 해학적 퍼포먼스 가미는 물론, 곡 중간에 흐느낌 혹은 자지러지는 웃음소리 등을 과감히 넣어 실험음악을 연상케 하는 '아우라'마저 보여준 그이 업적은 최근 '남자의 자격'과 '스타킹' 등 공중파 예능프로에서까지 소개되며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어디 그뿐인가. 그가 이끄는 인천시립합창단은 외국에서도 그 특별함을 알리며 일약 '세계 4대 합창단'에 선정되는 영광까지 거머쥐었다. 젊은 지휘자들보다 더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는 이 노장(1938년생)을 <인천in>이 만났다.
 
"한국 합창운동이 그동안 쇠약했다"고 진단했던 그는 요새 예능 등을 통해 합창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느낌이 들어 흐뭇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특히 한국방송 '남자의 자격'에서 결성된 '청춘합창단'에 나이가 들어 세상에서 소외된 계층이 주연으로 거듭나는 걸 보면서 단순한 음악인이 아닌 인간적 보람까지 느낀다고 했다.
 
사실 그는 TV프로에서 잘 만날 수 없는 명사 중 한 명이다. 그래서 이번 예능프로 출연에도 적지 않은 고민이 있었을 터이다. 

그는 "처음에 그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 지휘자 자리를 맡기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PD는 그에게 "김태원 지휘자 멘토가 되어 달라"는 부탁을 했고, 예능프로 일선에 나서지 않아도 효과가 크다고 생각한 그는 여기에 선뜻 응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많은 국민들이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을 주목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남자의 자격'이 방송되는 동안, 인터넷 연예뉴스는 거의 모두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 이야기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여기엔 인간적 교감도 한 몫을 했다. 요즘 잘 나가는 예능인 김태원이 정신없이 바쁜데도 자신에게 악착같이 배우려는 모습에, 그리고 그가 김태원에게 정성을 다하면서도 자상한 자세로 가르치는데 서로 감동을 받고 있는 것이다. 방송에서도 그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나오는 일은 시청자들도 다 보고 있으니 두 말할 필요가 없겠다.
 
반세기 동안 합창계에서 활동해 왔음에도, 사실 그가 대중에게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정확히 1년 전이었다. 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이 같은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로 구성된 합창단을 이끌었을 때, '한국 합창계 대부'로 언급됐던 일 때문이다. 국내외에서 여러 합창단을 결성해 이끌었고, 특히 지휘를 맡는 동안 14장의 레코드를 발매하기도 했던 선명회 어린이합창단을 통해서는 세계적 유명 음악가들만 선다는 카네기 홀에서도 공연을 했던 그다. 인천시립합창단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활동했던 경력으로 해외에서까지 받았던 수상 실적을 나열하면, 정말 우리나라 합창계에선 '거목'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인생이라고 자부하지만, 내가 특별한 건 아니다"라며 겸손해 한다. 전 국립합창단 지휘자였던 나영수와 코리아 남성합창단 지휘자인 유병무 등 현직 최고령 지휘자가 다 동갑내기라고 밝힌 그는 당대에 같이 활동했던 이들이 선두에서 한국 합창계를 이끌었고, 그것이 한국 합창의 토양으로 됐다고 말한다.


미국 카네기 홀에서 공연하는 인천시립합창단. 당시 예술계에서 화제를 모았다.

그가 부임하기 전까지 지지부진한 활동을 보였던 인천시립합창단 역시 지금은 세계적 위상을 떨치고 있는 '한국의 자랑'으로 올라섰다. '합창'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 '재미 없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은 인천시립합창단 공연에서는 깨질 수밖에 없다. 오는 9월 20일부터 24일까지 열리는 뮤지컬 '모세'를 통해서도 여실히 증명될 터이다. 

그는 "음악은 사회에 내놓는 결과물"이라며 "빠르게 변화하는 이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는가를 음악인들이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실제로 단원들에게도 이에 대한 주문을 많이 하는 편이다. "단원들이 나 때문에 많이 힘들 것"이라며 너털웃음을 짓는 그다.
 
합창 효과는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빛을 발했다. 세계적인 유명 합창제 'ACDA 컨벤션'의 2009년 연주 당시, 인천시립합창단은 무대 첫 곡 만에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 합창제 회장이 "합창제 50년 역사상 첫 곡에 기립박수가 나온 건 처음"이라며 놀라워했다는 후문은 이제 한국 음악계에서도 공공연한 '전설'로 됐다.

이뿐만 아니다. 세계적 아카펠라 그룹 '킹즈 싱어즈' 출신으로 현재 예일대 교수직을 맡고 있는 사이먼 캐링턴은 "요새 여기 음악인들끼리 하는 첫 인사가 '당신 인천시립합창단 연주를 봤느냐'인데, 이는 영미권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증거가 아니겠느냐"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렇듯 세계를 누빔에도 인천시립합창단은 1년에 50회 이상 '찾아가는 연주회'를 통해 소외계층을 위한 공연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 "합창이 이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라고 물었다. 이에 그는 "첫 번째로 무반주로도 가능한 음악이라 악기가 없어도 같이 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고, 두 번째로 "민주적"이라고 했다. 혼자 내지르고 진행하는 독창과 달리, 합창은 다른 사람 소리를 들어가며 불러야 하는 만큼, 그 사람 생각과 정신을 이해하고 협력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평화'라는 말을 했다. 민주적인 자세로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하고 합창에 응하면 그것만큼 평화로운 일도 없다는 얘기다.

그는 "모든 민족이 합창을 하게 되면 평화는 자연스레 찾아올 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인천에서 이러한 분위기가 먼저 시작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인천은 한국에서 기독교가 가장 먼저 들어온 도시입니다. 기독교는 합창음악을 가장 많이 보여주고 있는 종교죠. 저는 그래서 인천이 합창음악에 대한 잠재성을 가진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저와 같은 사람들이 꾸준히 노력해 나중에는 인천이 합창 도시로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동별로 아마추어 합창단도 있고, 유명 합창대회도 열리는, 어딜 가든지 합창음악을 만날 수 있는 평화의 도시로 말입니다."


샌프란시스코 데이비스심포니홀에서 공연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는 인천시립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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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2011-08-18 09:48:32
건강하셔서 더욱 활발한 활동 기대하며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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