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만화보다 재미난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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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만화보다 재미난 만화
  • 최종규
  • 승인 2011.08.17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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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우에야마 토치, 《아빠는 요리사 (112)》

 만화책 《아빠는 요리사》는 틀림없이 ‘요리’ 만화입니다. 요리하는 사람들 삶을 차근차근 보여주는 요리 만화입니다. 어느덧 112권이 나온 《아빠는 요리사》인데, 112권을 읽으면서 112권으로 끝날 일이 없겠다고 느낍니다.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가 참 많구나 하고 느낍니다.

 온누리에는 온누리 나라와 겨레와 마을과 살림집만큼 요리 가짓수가 많습니다. 어느 만화책이든 요리책이든 온누리 온갖 요리를 다룰 수 없어요. 이 만화를 그리는 우에야마 토치 님이 숨을 거두어 흙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그린다면, 조금이나마 건드리려 한달 수 있겠지요.

 온누리에는 온갖 요리가 있습니다. 온누리 온갖 요리에는 온갖 이야기가 깃듭니다. 온누리 숱한 사람들이 마련하며 즐기는 온갖 요리는 꼭 한 번만 마련해서 즐기지 않습니다. 열 번 백 번 천 번 다시 만들거나 새로 만들어 즐깁니다. 같은 요리라 하더라도 즐길 때마다 맛과 멋과 느낌과 마음과 사랑과 꿈이 다릅니다. 그러니까, 같은 요리를 다시 하더라도 같은 이야기가 태어나지 않아요. 어떠한 요리 만화라 하더라도 이와 마찬가지인데, 똑같은 요리만 다루면서 100권을 그릴 수 있습니다. 똑같은 요리를 하는 백 사람이나 천 사람 이야기를 가만히 돌아볼 수 있으면, 100권뿐 아니라 200권도 그릴 수 있어요.


- “이 가게는 나폴리 피자 협회의 인정을 받았대요.” “호오, 맛있을 만하네. 그런데 카에데, 그 얼굴은 사랑에 빠졌구나.” (7쪽)
- “우리도 슬슬 가 볼까?” “예.” “남자는 마지막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품으로 돌아가는 거야.” (114쪽)
- “또 할머니가 생각나셨나 봐. 할머니도 대구포 크로켓을 자주 만드셨거든.” (158쪽)


 가슴속으로 피어나는 사랑이 있을 때에 먹는 밥이랑, 가슴속에 슬픔이 가득할 때에 먹는 밥은 다릅니다. 일이 많아 지치거나 고단할 때에 먹는 밥하고, 일이 없어 한갓지거나 힘들 때에 먹는 밥은 다릅니다. 혼자 차려서 먹는 밥과, 아이한테 차리는 밥과, 내 어버이한테 차리는 밥은 달라요.

 한국사람이 날마다 먹는다는 밥 하나를 놓고도, 흰밥으로 할 때하고 누런밥으로 할 때하고 갖은 곡식을 넣을 때하고 콩을 넣을 때하고 감자를 넣을 때하고 옥수수를 넣을 때하고 고구마를 넣을 때하고 쑥을 넣을 때하고, 언제나 다릅니다.

 살림돈이 바닥나는 힘든 나날 먹는 밥이랑, 살림돈이 넉넉할 무렵 먹는 밥은 같지 않습니다. 이웃한테 떡을 돌릴 때라든지, 내가 이웃한테 떡을 돌릴 때는 같을 수 없어요. 내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처음으로 밥을 혼자 차려 내놓을 때에도 똑같은 밥과 반찬을 올렸달지라도 같을 일이 없겠지요.

 요리 만화이기에 요리를 다룹니다. 그렇지만, 요리 만화이기에 요리를 잘 다루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요리 만화는 가장 한복판에 놓는 이야기가 요리가 되어야 한다고 여길는지 모르지만, 가만히 살피면 ‘요리 이야기는 변죽이나 양념이나 고명’이 되고, 가장 한복판에 놓는 이야기는 ‘밥을 차려서 먹는 사람들 살아가는 나날’이 된다고 느껴요.


- “마모루 씨, 축하합니다.” “응? 아, 고마워.” “표, 표정이 아주 근사했어요.” “엇, 내가?” “예, 히토미 씨도.” “그래?” “아이가 태어난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응, 글쎄, 아직 실감이 안 나는데, 세상이 전혀 다르게 느껴져.” “세상이 말인가요?” “응.” “뭐랄까. 모든 것에 의미가 있어. 내가 있는 것, 걷고 있다는 것, 풀이 자라고, 꽃이 피어 있는 것, 벌레가 있고, 새가 날아다니는 것, 산이 있는 것, 노을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 모든 것에 의미가 있다는 걸 알았어. 그게 기뻐.” (28∼31쪽)


 《아빠는 요리사》(학산문화사,2011) 112권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112권째에는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맺은 빛나는 선물인 아기가 태어나는 이야기가 하나 나옵니다. 26∼27쪽에서 아기 아버지가 갓난쟁이를 품에 안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야말로 눈물겨운 대목인데, 아버지가 아기를 안기 앞서 아기를 어머니 곁에 눕힙니다. 일본에서는 아주 마땅히 하는 모습이에요. 한국에서는 웬만한 거의 모든 병원에서 이렇게 안 하는 모습이고요. 한국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병원에서 따로 ‘아기방’에 아기를 가둡니다. 어머니하고 떨어뜨려요. 갓난쟁이는 어머니 뱃속에서 바깥으로 나온 다음 무엇보다도 어머니 따스한 품을 바라는데, 한국 병원에서는 아기가 무엇을 바라고 아기 어머니 몸이 어떠한가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기 아버지가 갓난쟁이를 품에 안으면서 ‘거룩하면서 아름답게 빛나는 얼굴’을 마주하기 너무 힘듭니다.


- “맛있어. 많이 먹지는 못해도 이 맛, 잊지 못할 거야.” (179쪽)


 삶에 따라 이야기가 있습니다. 삶에 따라 사랑이 있습니다. 삶에 따라 사람들 어우러지는 나날이 달라지고, 서로 즐기는 밥이 나뉘겠지요.

 틀에 박힌 삶이 될 때에는 틀에 박힌 이야기에 머뭅니다. 틀에 매이지 않는 홀가분한 삶이라면 틀에 매이지 않는 홀가분한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몇 달째에는 무얼 시키고 몇 해째에는 무얼 가르치고 하는 틀에 따라 아이를 ‘다루면(관리하면)’ 아이는 제 목숨결대로 꽃피우기보다는 시들시들 길들어지고 맙니다. 길들어지는 삶이더라도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있을 테지만, 빛나면서 고운 이야기로 거듭나지 못해요.


- “요새는 남자도 도시락 정도는 만들 줄 알아야죠.” “나도 가끔 도시락을 싸오지만 이렇게 정성스럽게 만들지는 못해.” “응, 남은 반찬이나 냉동식품으로 대충 후다닥 싸오지.” (187쪽)


 가만히 살피면, “요새는 남자도 도시락쯤은 만들 줄 알아야” 하지 않습니다. 요새는 ‘오롯한 어른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이라면 도시락이든 밥이든 생일잔치상이든 얼마든지 넉넉히 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가 태어난 다음 미역국을 날마다 끊임없이 끓여서 아이 어머니한테 내밀 수 있어야 하고, 남다른 밥차림에 앞서 날마다 사랑스레 받아들일 밥차림이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어야 해요.

 사랑이 있을 때에 재미난 이야기이고, 사랑이 있어야 재미난 삶이며, 사랑이 있기에 재미나게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맛나게 즐기는 밥입니다. 만화책 《아빠는 요리사》 112권은 ‘요리’ 만화에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 아빠는 요리사 112 (우에야마 토치 글·그림,설은미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11.5.25./4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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