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아름다움, 계곡 암반 위 초간정(草澗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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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아름다움, 계곡 암반 위 초간정(草澗亭)
  • 허회숙 객원기자
  • 승인 2022.11.06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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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목사 권문해 1582년 낙향해 예천에 지은 별채 정자
국가 명승 지정... 종손 거주하며 민박체험 관리

가을의 초엽인 지난 10월 1일 예천군 용문면 경천로 874에 소재하고 있는 초간정(草澗亭)을 찾았다.

글과 TV를 통해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가볼 기회가 없었던 곳이다. 초간정(草澗亭)은 예천군 용문면 원류마을 앞 금곡천 계곡 암반위에 지어진 정자다.

초간 권문해(草澗 權文海, 1534~1591)가 그의 나이 49세인 1582년에 공주목사를 그만 두고 낙향하여 지은 별채 정자다.

용문사 아래 매봉과 국사봉 사이로 예천읍으로 흐르는 금곡천변에 세워졌는데, 처음에는 작은 초가집으로 지어 초간정사(草澗亭舍)라고 불렀다.

태극 형상의 S자로 굽이쳐 흐르는 계류 옆 암반위에 막돌로 기단을 쌓고 절묘하게 지은 건축물이다.

이 정자는 권문해가 풍류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재의 용도로 지은 것이었다. 현재 경상북도 문화재 제 143호이며 국가 명승으로 지정되어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정자의 입구에서 보면 정면 2칸은 방이고 물이 흐르는 계류 쪽은 ‘ㄱ’ 자형으로 마루를 놓고 난간을 둘렀다.

이 정자는 금곡천에서 소나무 우거진 정자를 바라볼 때와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계류를 흐르는 물줄기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다르고, 또한 초간정의 마루에 앉아서 바라보는 정자 밖의 풍경이 전혀 달라 기묘한 아름다움을 지닌 정자라고 칭송되고 있다.

권문해는 이곳에서 3월에서 6월까지 한 달에 2~4회씩 손님을 맞이하거나 강회를 가지면서 소일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불에 탔던 것을 17세기에 다시 세웠다. 그때 석조헌(夕釣軒)과 화수헌, 그리고 백승각 등의 건물을 함께 세웠으나 다시 무너진 것을 1870년에 연이어 중수하여 권문해의 유고를 보관하는 전각으로 만들었다.

건물 정면에는 초간정사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반대편에 초간정, 석조헌이란 현판이 각각 걸려있다.

석조헌(夕釣軒)은 ‘저녁 무렵 툇마루에 앉아 낚시를 즐긴다’라는 뜻으로 옛날 이 정자에서 낚시를 자주 즐겼던듯하다.

권문해는 당시의 선비들이 중국의 역사에는 해박하면서 우리나라 역사에는 무지한 것을 안타깝게 여겨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이라 부르는 〈대동운부군옥〉을 편찬하였는데 이 책의 대부분은 이 초간정에서 집필되었다.

전 20권으로 되어있는 〈대동운부군옥〉은 보물 제 828호로 지정되어 있다.

권문해의 아들 권별은 이곳 초간정에서 〈해동잡록〉을 저술하였다.

그런 연유로 영남지역의 수많은 문인들이 초간정의 기운을 받기 위하여 이곳을 다녀갔고, 이 초간정 부근을 100번 돌면 문과에 급제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하였다.

계곡의 물은 지난 여름 가뭄의 흔적이 역력하여 소를 이루며 굽이쳐 흘렀다는 계류의 양도 많이 줄었다.

주변의 풀들도 시들고 메말라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그래도 민박 프래카드를 내걸고 있는 집에 권씨 문중의 종손이 거주하며 이곳을 관리하고 있어 집 주변 마당도 소나무 숲도 잘 정돈되어 있다.

꼭 닫힌 초간정의 대문을 살짝 밀어보니 소리도 없이 쓰윽 열린다. 신발을 벗고 대청마루에 올라 난간 아래 계곡을 내려다본다. 이끼 낀 계곡의 바위들과 우거진 나무들 밑으로 가뭄에 줄었어도 아직 꽤 깊은 계류가 흐른다.

난간에 팔을 두르고 앉아 정자 맞은편 기암괴석을 바라보며 잠시 속세를 떠난 기분을 맛본다. 대청마루에 누워 낮잠 한숨 자고 싶어지는 마음을 누르며 반대편 마당 건너 보이는 대문 쪽을 보니 언젠가 한번 이곳에 앉아 있었던 듯 익숙하고 정겨운 기분이다.

너무 오래 있었다는 일행의 독촉에 밀려 초간정 밖 소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깊숙이 안쪽으로 들어가니 소슬한 바람에 솔향기와 꽃내음이 향기롭다.

초간정 원림 안쪽 깊숙한 곳에 작은 출렁다리가 나타난다. 인적도 없는 이 숲속에 언제 적에 이 출렁다리가 놓인 걸까? 이 출렁다리를 건너는 것이 안전하기는 할까? 이 다리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약간의 두려움과 멈칫거림 끝에 조심조심 출렁다리를 건넌다. 다리 끝에 자동차가 다니는 대로가 나타난다. 아마도 도보로 빙 돌아가는 길을 빨리 가려고 어느 시절엔가 만들었나 보다. 지나 다니는 사람이 적다 보니 녹이 들고 삐걱거려 곧 무너질 듯이 보이지만 아직 꽤 튼튼한 모양새다. 어른도 아이도 재미나게 오갈 수 있는 출렁다리다.

이곳 초간정에서 민박을 하면서 새벽별도 보고 늦은 밤의 어두움도 경험하면서 느림의 하루를 보내고 싶다.

언젠가 한번은 이곳의 기묘한 아름다움에 젖으며 시간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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