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 같은 밤, 초승 자월에 전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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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 같은 밤, 초승 자월에 전율하다
  • 이상구 시민기자
  • 승인 2022.12.05 2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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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섬, 도도하게 즐기기]
(2) 자월도 1박(하)
인천시와 옹진군, 인천관광공사는 지난해부터 ‘인천 섬 도도하게 살아보기‘('도도하게')라는 관광상품을 개발, 운영하고 있다. 인천에 소재한 7개의 섬에서 최소 하루(연평도, 자월도)부터 4박5일(백령‧대청도)까지 머물며 그곳의 자연과 문화를 만끽하는 체험형 관광상품이다. '도도하게'의 올해 마지막 프로그램이 지난 11월 26일 자월도에서 열렸다. '자월도 1박'(하)편을 이상구 인천in 시민기자가 연재한다.

 

17시, 저녁 식사가 예정된 펜션으로 여행객들이 모였다. 바닷가에 바짝 붙어 있는 펜션이었다. ‘노을빛’이란 이름이 말해주듯 특히 저녁 어스름 때의 풍경이 장관이라고 했다. 오후 5시가 넘으면서 해가 급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이곳의 태양은 바다 속이 아니라 섬과 섬 사이로 내려앉았다. 승봉도와 대이작도 사이쯤 돼 보였다. 

노을 지는 순간의 풍경은 황홀하게 아름다웠다. 바닷물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섬들이 불타오르는 듯했다. 넘어가는 태양이 너무 빨리 사라져 아쉬울 정도였다. 함께 온 친구와 가족들끼리 그 풍경을 배경으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여기저기서 탄성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 사이에서 그 멋진 장면을 홀로 바라보고 앉은 기자의 처지가 문득 처량해 보였다.

자월도 석양. 임연희 제공
자월도 석양. 임연희 제공
자월도 석양을 배경으로 한 컷
자월도 석양을 배경으로 한 컷

17시 50분. 드디어 만찬의 시작이다. 주 메뉴는 목살 바비큐. 각자에게 라면 1봉과 즉석밥 한 개 씩 주어진다. 다채로운 쌈 채소와 쌈장, 김치 등은 기본으로 제공된다. 여행자들은 저마다의 가방에서 비장의 무기들을 꺼냈다. 김장 김치 한포기를 내놓는 분도 있었고. 분위기 있는 와인의 코르크 마개를 따는 이도 있었다. 고기 맛은 두 말 할 필요가 없었다. 연하고 부드러운데다가 천연 숯 향이 덧입혀져 씹는 맛부터 달랐다.

시원하고 청량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즐기는 만찬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최고의 한 끼였다. 자욱한 연기 사이로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유쾌한 건배사가 끊이질 않았다. 한창 흥이 오를 즈음 특별공연까지 열렸다. 펜션 사장님들의 멋들어진 섹소폰 듀엣 연주였다. 빨갛고 파란 반짝이 자켓과 페도라까지 갖춰입은 멋쟁이 공연단이었다.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해변에서의 만찬. 돼지목살 비베큐 파티, 권상호 제공
자월 브라더스 공연 모습
자월 브라더스 공연 모습

18시 55분. 만찬장의 열기를 피해 해변으로 나섰다. 아, 그 때 눈앞에 펼쳐진 그 광경, 하마터면 그 멋진 순간을 놓칠 뻔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에 난생 처음 보는 달이 떠 있었던 거다. ‘난생 처음’이라는 말이 과장처럼 들릴지 몰라도 그건 엄연한 사실(fact)이었다. 

그 달은 초승달이었지만 늘 보던 그것과는 달랐다. 달은 일단 가늘고 길었다. 초승달이 저렇게 길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 가는 달이 수평선에 바짝 붙어 있었다. 게다가 오렌지 빛 보다는 붉고 자줏빛보다는 옅은, 마치 불꽃과 같은 색이었다. 이 섬의 이름이 괜히 자월도가 아니었다. 성능 떨어지는 싸구려 카메라를 그 순간처럼 원망해본 적이 없었다.

자월도의 밤풍경(권상호 제공)
자월 밤 하늘에 뜬 초승달. 뭍에서 보는 것보다 가늘고 길고, 붉고 신비롭다

 

20시, 이젠 이른 취침시간이다. 그때까지 머릿속엔 온통 자월 밤하늘에 떠 있던 붉은 색 달의 충격이 남아 있었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누웠다. 침대 위보다 그냥 보일러를 켠 방바닥이 더 따뜻하고 안락했다. 기분 좋은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언제 들었는지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 8시. 모닝콜이 요란하다. 강재모 사장이 직접 방문을 두드리고 다닌다. 부지런한 여행객들은 그렇게 누가 깨우지 않아도 벌써 바닷가 산책까지 다녀온 모양이다. 펜션 뒷산에 다녀온 분들도 있었다. 자동차를 타고 식당으로 이동했다. 조찬장도 어제와 같은 미란네 식당이다. 우거지 된장국과 10가지 밑반찬이 나왔다. 보드라운 두부 부침과 새콤한 소라무침이 인기였다. 고등어 튀김도 탄 자국 없이 고루 잘 익어 고소했다.

지난 30년 년 간 아침을 전혀 먹지 않았던 기자는 마른 김에 싼 밥을 양념장에 찍어 먹는 맛에 그만 반해버렸다. 공깃밥 추가를 외치고 싶었던 걸 억지로 참았다. 따져보니 오늘 아침 식단엔 어제 먹었던 반찬과 겹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이 식당의 이름이자, 주인장인 강미란 사장의 세심한 배려와 놀라운 손맛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식당을 나서는 모든 여행자들이 소리 높여 미란 사장님을 찬양했다.

이제 마지막 공식일정이다. 어제 오늘 다녔던 여행코스의 스템프를 검사 받고 설문조사에 응하는 순서다. 빠지지 않고 코스를 다 다녀오고 마지막 설문조사까지 성실하게 제출한 참가자들에겐 검은콩 한 봉투와 온누리 상품권을 경품으로 준다. 한 장도 아니고 무려 두 장이다. 51,500원 내고 여행 와서 실컷 놀고 실컷 먹고 현금 같은 상품권과 귀한 선물까지 받은 셈이다. 이런 수지맞는 여행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여행객들은 각자의 손에 들린 선물보따리와 이틀 동안 수고를 아끼지 않은 스테프들을 번갈아 쳐다본다. 이러고도 남는 게 있냐는 눈치다. 기자도 같은 심정이었다.

모든 공식일정에 성실히 참가하고 설문조사까지 마치면 응분의 상품권을 준다. 공짜로 여행온 거나 진배없다
호피무늬 김수현, 이정애 부부. 무모님 모시고 꼭 다시 오고 싶다는 극찬을 남겼다

김수현(32), 이정애(31) 부부는 자월도 여행의 최연소 참가자들이었다. 검정색 호피무늬 커플룩을 차려입고 내내 꼭 붙어 다니며 정다운 모습을 연출했던 이 젊은 부부는 단 한 마디로 이번 여행을 평가한다. “날 따뜻해지면 부모님 모시고 다시 오고 싶어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오고 싶다는 말보다 더 한 칭찬이 뭐가 있을까.

그 말을 듣는 기자의 코끝이 찡해졌다. 집에 계신 모친 생각이 문득 들어서였다. 당신을 위해 가판대에서 우럭 건작 몇 마리를 사들었다. 연로하신 주인 어른은 단 돈 만원만 달라셨다. 원래 세 마리라 하셨는데, 에따 하며 한 마리를 더 넣으신다. 섬은 그렇게 끝까지 인심을 잃지 않았다.

자월은 평화로웠고 고즈넉했다. 서두르거나 뛰 필요가 없었다. 여유와 한가로음이 넘치는 섬이었다. 쉼과 치유의 낙원이었다. 그리고 그 섬에는 ‘사람’과 ‘사랑’이 있었다.

인천 섬 도도하게 살아보기는 이 날을 마지막으로 올 시즌을 마무리 했다. 미처 참가하지 못한 분들의 문의가 빗발쳤다고 한다. 시와 공사는 내년엔 한층 더 덩치를 키워 시장에 내놓을 거라 했다. 

인천관광공사의 김성우 섬발전지원센터장은 “내년엔 예산을 두 배로 증액시키고 횟수도 35회로 늘릴 계획”이라면서 “이러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인천 섬의 진가가 널리 알려지고 더 많은 관광객들이 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각오를 밝혔다. 솔직한 심정으론 인천 섬의 숨겨진 비밀은 그냥 혼자만 알고 싶었다. 어림없는 소리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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