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떠난 도시공간, 영상에 담는 윤리적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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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떠난 도시공간, 영상에 담는 윤리적 갈등
  • 공지선
  • 승인 2022.11.30 1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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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설계하는 인천 문화]
〈청년이 기획하고 운영하는 인천의 시각예술 공간〉
① Shhh(쉬)의 정재경 작가 - 공지선 / 시각예술작가, 파이프챔버 대표

입술 살짝 오므리고 숨을 내뱉자면 은연중에 따라오는 소리가 있다. `쉬-` 바람을 동반하는 이 소리는 비밀을 약속하기도, 아이들의 소변을 지칭하기도 한다. 음절에 가까운 이 단어는 단순한 감탄사가 아닌 수많은 의미를 은유하는데, 이 짧은 파열음이 공간이 되어 물리적으로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어쩌면 그 시도에 있어서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인천 중구에 자리 잡은 shh(쉬)는 시간 예술 연구와 창작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신생 공간이다. 독특한 각도로 휘어진 계단을 올라 내부가 은은하게 비추는 가벼운 나무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면 두 개의 공간이 각각의 이야기를 머금은 채 쉴 새 없이 시간을 자아내는데, 커다란 스크린과 그 위에 쏟아지는 빛 들의 다채로운 움직임 속에서 새로운 발화점들을 읽어낼 수 있었다. 지난 월요일 오전, 오래된 구도심에서 새로운 불꽃을 열심히 빚어가는 정재경 작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공지선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정재경 ; 안녕하십니까, 정재경입니다. 최근 도시에서 야기되는 윤리적 문제 들을 관찰하고 이를 영상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정재경 프로필-사진 크레디트-정지필 

공 = 작업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실 수 있나요? 서울에서 활발히 활동을 해오신 거로 아는데 인천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정 = 서울에서는 서초구 내곡동 헌인마을에서 작업을 해왔어요. 헌인마을은 300가구 정도 되는 규모가 큰 가구 제조와 판매 단지였는데, 2000년대 재개발을 둘러싼 마을 주민 간 이해관계가 서로 뒤엉키면서 폐허처럼 된 장소입니다. 10여년 전에는 이 이슈가 굉장한 문제였어요. 당시 신문을 보면 부도 사태와 더불어 양산된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가 빼곡히 지면을 채웠으니까요. 이후 10년 정도가 지나니 관심도 사그라지고 시간이 멈춘 것처럼 방치되어 소외 지역이 되어버렸죠. 2018년에 현장에 폐 식당을 프로젝트 공간으로 꾸리기도 하고, 3년 정도 연구하며 작업을 지속해왔어요. 시간은 흘렀지만, 여전히 내부에선 수많은 이해관계가 들끓고 있었어요. 주로 가구공장이 많은 단지였는데 그들이 빠져나가는 상황이 되니 경제적 문제를 비롯한 복합적 이해관계 때문에 기르던 애완견을 유기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이 이제 들개가 되고, 지역에 잔존하니 새로운 문제가 생겨났어요. 그들에게 화풀이하는 사람, 혹은 이들을 돌보는 사람들 이런 작은관계들로부터 이종 공동체가 대면한 윤리적 갈등을 영상으로 담아냈습니다.

그 이후 인천의 구도심에 오게 되면서 인구와 경제 중심이 신도시나 국제 도시로 빠져나가고고 쇠퇴해 가는 현상을 목격했어요. 지역을 잘 아는 공인중개사와 함께 빈 집들을 탐방하며 ‘도깨비 터’라는데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도깨비 터’는 논리가 안 맞는다거나 이상한 현상이 생기는 공간을 의미하는데, 대부분은 그 안에 비극을 내포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IMF 때 경제적인 비관으로 한 가족이 생을 마감한 경우라던가 하는 이야기요. 이렇게 사람들이 꺼리는 공간을 중심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영세 임대업자와 삶의 영위를 위해 이를 은폐하려는 중개업자들 그리고 경제적 상황상 시세보다 싼 금액에 공간을 구해야 하는 사람들. 각자의 이해관계를 위해 공간이 가졌던 역사를 은폐하고 발화되지 않게 하려는, 이런 이야기 들을 시작했어요.

정재경-인천 작업-Metal Pine Tree
정재경-인천 작업-Metal Pine Tree

사실 인천이라는 곳이 가진 이미지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마계 인천’ 같은 이미지와 제가 가진 이미지가 그렇게 다르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작업 과정을 거치고 일상 공간을 경험하면서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죠. 예상치 못하게 되게 좋은 부분도 있었고 예상치 못하게 되게 험난한 부분도 있었고요. 그래서 인천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작년에는 이곳의 대규모 재개발 지구는 금송지구에 관심을 두고 여기를 한번 지켜봐야겠다 싶어 겸사겸사 들어왔어요. 본격적으로 터를 옮기고 쉬(shhh)도 시작하게 되었어요. 뭐가 좀 이렇게 상황이 딱딱 맞아떨어졌네요. (웃음)

 

공 = 공간 shhh(쉬)를 운영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공간이 작가님께 작업적으로 끼치는 영향이 있을까요?

정 = 예전부터 공간을 운영해야지 하는 생각이 있지는 않았어요. 근데 인천문화재단의 <점점점> 사업이 계기가 되었죠. 개인 창작자로서는 자기 자신의 생각에 갇히는 경우가 있잖아요. 동료 작가 들과 그룹전을 해도 같은 필드에 있을 뿐 서로의 작업을 볼 경우는 거의 없었거든요. 그런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함께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더욱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어요. 아티스트토크나 기타 워크숍을 진행하게 되면 작가의 작업관을 이해하기 위해 더욱더 면밀히 살펴보기도 하고요. 이런 기회 들이 제가 가진 관심이 뭔지 좌표를 더 잘 이해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그곳에서 주는 예상치 못한 대화들이 서로 간의 창작을 더욱더 풍족하게 해주는 것 같고요. 동료 작가 들과 고민을 나눈다는 심리적인 안정감과 소문난 맛집의 비밀을 옆에서 가까이 보는 재미도 있어요.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분들은 작업의 계기가 어떻게 되고 어떤 과정으로 풀어내고 나와는 다르게 또 이렇게도 갈 수 있구나! 이런 것들이 되게 만족감을 주는 것 같아요.

 

공 = 쉬는 많은 예술 장르 중에 영상 예술을 중점으로 연구하고 창작하는 공간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간을 구성하실 때 중점적으로 생각해 두었던 지점이나 꼭 실현해야겠다고 다짐한 부분이 있을까요?

정 = 저도 영상 작업을 하고 있고 관심도 바로 그 지점에 있어서 공간을 운영하더라도 내가 관심 있고 알고 있는 분야를 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 공간들 안에 내가 이 포지션을 해야지 라는 전략적인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요. 내가 관심이 있고 호기심을 느끼는 매체가 영상인데 그렇다면 다른 분들은 어떻게 풀어내는지가 궁금하기도 했고요. 그 과정에서 생각보다 공간이 많지 않다는걸 알게 된 거죠. 예를 들어, 저의 작업이 주류가 아닌 흑백 톤의 영상이 많은데, 이걸 CGV에서는 못 틀잖아요. 넷플릭스에서 받아주는 것도 아니고. 미술관에서는 수용을 해주지만 미술관은 전시 중심이다 보니 이런 시간성을 가지고 있는 예술들이 전시 형태에서 제약되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5분 안에 끝을 내야 한다던가 이야기 들을 인상적인 것에서 끝나게 한다거나 작가들이 가진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간혹 호흡을 길게 풀어낼 작품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보여줄 만한 공간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열심히 만든 것들을 누군가가 오셔서 열심히 볼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곳까지 왔으면 정말 관심이 있는 거거든요. 그런 만남의 순간들, 사회의 공간들이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쉬공간사진-사진크레디트-오석근
쉬공간사진-사진크레디트-오석근

공 = 최근 활동을 보시면 단순히 전시 외에 작가와의 대화나 워크숍 등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계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진행 중인 연구 창작 프로그램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릴게요.

정 = 우선, 시간성을 가진 예술에 중심 무게를 두고 자유롭게 확장이 되어가는 것에는 제한을 두지 않았어요. 예를 들어 영상을 중심으로 퍼포먼스나 설치 작업을 통해 매체를 확장해 가며 무게 중심의 추를 옮겨낸다거나, 한 시기에 소진되거나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지는 과거의 작품들을 다시 발굴해서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던가. 아예 영화감독처럼 영상이나 시간 매체 자체가 본인 표현의 중심인 작가님들의 작품도 여기에서 전시형 스크리닝으로 진행했었고요. 매체가 대부분 디지털로 작업을 하지만 디지털 매체 이전에 화학적인 방법으로 이미지를 생산하던 방식의 필름 창작 워크숍도 진행되었고요. 어찌 됐건 시간 예술을 둘러싸서 좀 더 다양한 접근 경로를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공 = 공간을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우신 지점이 무엇인가요?

정 = 저의 주된 아이덴티티인 창작자의 입장에서 영상 작업을 공유할 수 있는 채널이 적다는 것과 다른 작가 들과의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는 욕망에서 시작했는데 공간을 운영하는 건 사실 현실적인 문제잖아요. 재단 지원금 없이 월세나 운영비 등의 문제와 또 이를 운영하기 위해 창작을 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점이 가장 어려워요. 창작 욕구는 팽창해가는데 물리적인 시간은 상대적으로 줄 수밖에 없으니까요. 반면에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다양한 창작자 분들과 대화를 좀 더 풍성하게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주는 만족감이 이 지점을 상쇄하는 것 같아요.

공간 설립 초기에는 운영에 대해 좀 더 캐주얼하게 생각했던 경향이 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재단의 보살핌을 받고 있으니 현실적인 문제가 체감되지는 않았던 것도 있었고요. 근데 이제 그런 도움이 없는 상태가 되고 이러한 문제에 직면하면서 본질적으로 이 공간을 왜 운영해야 하지 라는 질문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그런지 지원 사업 기간보다 현재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훨씬 많아요. 아직은 공간 운영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아니다 보니 시행착오가 되게 많아요. 향 후 작업을 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 운영 사이 밸런스를 유지하며 이 공간을 지속하고 싶어요.

쉬-전시 이미지-리아 리잘디
쉬-전시 이미지-리아 리잘디

공 = 정말 기대가 됩니다. 쉬의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정 = 공식적으로 쉬는 2021년에 오픈을 했지만 사실 연말부터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1년 조금 넘은 거예요. 최소 2년 정도는 더 운영할 계획이고요. 희망은 10년 이상 장기적으로 공간을 지속하고 싶습니다.

 

공 = 공간을 운영하는 운영자로서, 지역에서 창작을 하는 예술인으로서 인천의 문화예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시나요?

정 = 인천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알아가고 있는 단계라 뭐라고 말하기 섣부른 것 같아요. 새내기로서 저의 인상을 말씀드리자면, 무언가 새로운 일이 발화할 수 있는 영향이 잠재되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원도심은 그 지역 안에 쌓여있는 문화나 기억들이 있기 때문에 그 지점에서 오는 풍부함이 공간에서 많이 보여요. 단순히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 아닌 일상에서 생활을 하다 보면 신도시에서 볼 수 없는, 동네가 축적해온 과정에서 오는 만족도가 있어요. 제가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 중 주로 원도심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비촌’이라는 프로젝트가 있어요.

올해에 이를 수행하기 위해 목포나 군산을 다니게 됐는데요. 항구도시다 보니 인천과 역사가 비슷한 점이 있더라고요. 항구였고, 중요한 거점이었고, 수탈의 아픔이 있다든지, 근대화 과정에 남아있는 흔적이 상당히 비슷했어요. 지역의 시작이었다가 경제나 정치, 문화의 중심이 다른 도시로 이동하면서 지역 공동화가 생기고 있었는데, 그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시는 작가님들이나 개인 사업을 하는 분들을 만났는데 공통된 감정이 ‘내가 무언가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자긍심이 있는 것이었어요. 물론 서울이나 다른 큰 도시 안에서도 그런 게 있을 텐데, 사람들이 떠나간 장소에서 오히려 무언가 새로운걸 시도하기가 용이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인천 원도심도 그런 맥락에서 그런 잠재력이 있는 것 같아요. 한마디로, 매력적이다.

 

공 = 마지막으로 동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정 = 성과가 대단한 예술을 한다, 이런 게 아니라 예술가로서 살아남는 게 가장 큰 미션이라고 생각해요. 창작자들에게도,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들에게도 앞으로 살아남아서 좋은 날 들을 많이 바라볼 수 있는, 생존 자체가 즐거운 일이었음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쉬-전시 이미지1-허니듀
쉬-전시 이미지-허니듀

 

* 공간 shhh

shhh (쉬)는 시간 예술 연구와 창작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공간이다. 공간명 '쉬-'는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 비밀을 나타내는 낮은 마찰음, 또는 아이들 오줌 누기를 도와줄 때 내는 의성어로 종종 읽히기도 하지만, 특별히 확정된 의미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이 명확한 뜻과 형태를 지니지 않지만 예기치 않은 마찰에 의해 파열된 음으로 일시적으로만 드러나는 shhh- 소리의 속성은 공간이 지향하는 성격을 잘 대변한다. 공간은 아직 알 수 없는, 그러나 호기심을 느끼게 하는 무엇인가를 맴돌며 바람같고, 비밀스럽고, 미성숙한 사건이 잠시 파열되길 기대하는 장소이다.

 

* 정재경

정재경은 도시 일상 속 윤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명백하게 판단 내리기 어려운 지점을 추적하고, 이를 무빙 이미지와 아카이브 형식 안에서 탐구한다. 최근 《코스모그라피아》 (서울로미디어캔버스, 서울, 2019), 《어느 장면》 (신촌극장, 2021) 개인전을 진행하였다. 2021년 서울시-문체부 공공예술프로젝트 《리플렉트 프로젝트 Reflect Project》(동대문구, 2021-2024)를 총감독했다. 참여 전시로는 《23회 브르노 국제디자인비엔날레》(모라비안 뮤지엄, 체코 2008), 《Public Space? Lost & Found》(MIT 미디어 랩, 미국, 2014),《미술원, 우리와 우리 사이》(국립현대미술관 청주, 2021), 《경계와 신호》(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2021) 등이 있다. Künstlerhaus Schloss Balmoral,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금천예술공장 입주 작가로 활동했다. 시간 예술 연구, 창작 공간 쉬(shhh)를 설립하고 전시, 스크리닝, 출판, 워크숍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 진행하고 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MMCA 정부미술은행,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 (개관예정)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2023년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전시 참여 작가로 프로젝트 참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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