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따뜻한 보금자리 선물, 만수3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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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따뜻한 보금자리 선물, 만수3지구
  • 유광식
  • 승인 2022.12.05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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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유람 일기]
(93) 만수6동 일대 - 유광식/ 시각예술 작가

 

장승백이시장 서쪽 입구, 2022ⓒ유광식
장승백이시장 서쪽 입구, 2022ⓒ유광식

 

며칠 전 살포시 눈이 내렸다. 쌓인 눈은 오전의 볕만으로도 다 녹아버렸지만, 눈이 오면 들뜨기 마련이다. 복잡한 무언가를 덮어 주는 폭신한 이불처럼 보인다. 겨울에 엿보는 중동의 월드컵도 색다른 경험이다. TV로는 현장이 전혀 뜨거워 보이지 않지만 한국이 16강에 진출한 순간만큼은 가마솥 열기가 전해지는 것 같았다. 스포츠 열기와는 다르게 우리 삶은 가난과 전쟁, 현실 정치가 늘 도사리는 불판과도 같다. 양지와 음지의 온도 차가 이 겨울에 극명한데, 주변을 살피는 안목이 필요한 12월이 찌릿한 이유다. 수은주가 바짝 내려간 날에 만수3지구를 거닐었다. 옛 창대시장이던 현재 장승백이시장 일대를 빙그르르 걷는다.

 

장승백이시장 북쪽 입구(고소한 통로다), 2022ⓒ유광식
장승백이시장 북쪽 입구(고소한 통로다), 2022ⓒ유광식
이삭베스파트 아파트 상가(지역아동센터와 이발소), 2022ⓒ김주혜
이삭베스파트 아파트 상가(지역아동센터와 이발소), 2022ⓒ김주혜

 

서쪽에 남동구청을 품고 있는 만수6동. 만수3지구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구역이다. 지도상으로는 깔때기 모양인데, 두 개의 물줄기 사이로 모아져 크게 자란다는 형태로 읽히기도 한다. ‘담방’의 명칭이 부근 담방초, 담방문화공원, 담방마을아파트에 담겨 있다. 인천지하철 2호선 남동구청역 남쪽으로는 옛 창대시장과 주거 단지가 펼쳐져 있다. 시장의 규모가 작지 않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는 아파트 단지에서 올라와야 하는데, 걸으면서 장승백이시장을 거치게 된다. 북적일 것만도 한데 이전만큼은 아니었던지 상인회는 지난 2019년 12월 노브랜드 입점을 통해 시장, 지역과 상생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도 했다. 하필 다음 해부터 코로나-19가 퍼졌다. 날씨가 바짝 추워진 탓인지 시장도 조금 움츠린 모양새다. 그래도 싱싱한 반찬거리와 맛있는 먹거리가 시장 골목마다 등장하며 추운 날씨에 훈훈한 향기가 나는 곳이다. 다시 시장으로 돌아오기로 계획하고 동쪽으로 걸어가 본다.

 

2019년 입점한 노브랜드 상생스토어(12호) 출입구, 2022ⓒ유광식
2019년 입점한 노브랜드 상생스토어(12호) 출입구, 2022ⓒ유광식
시장 내 과일 상점(창대라는 이름이 아직도 많다), 2022ⓒ김주혜
시장 내 과일 상점(창대라는 이름이 아직도 많다), 2022ⓒ김주혜

 

90년대 초부터 만수6동의 논 위에 집이 세워지고 삶의 터전이 되었다. 골목길을 돌다 보니 인천도시공사 청사가 만수6동 성당과 등을 맞대고 있었다. 또한 공립특수학교인 청선학교가 있다. 학교가 많은 건 아니지만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띄는 곳이다. 때마침 만수고등학교 학생들의 하교로 검정 교복이 이곳저곳에서 출렁이는 흐름을 탔다. 특히 노담을 실천하라는 남동초등학교 담벼락 소리통(알림 현수막)이 이색적이었다.

손 시린 날씨여서 어묵집이 붐비는 모습이 하나 이상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시린 건 아파트 앞 노상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의 모습이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추운데 꽁꽁 언 생선은 팔리지 않고 옆집의 붕어(빵)만 동나고 있었다. 발 동동 구르며 삶을 영위하는 위태로움이 빙판처럼 매우 시리다. 작은 난로가 소중해지는 순간이었다. 부디 이번 겨울이 혹한의 추위가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발걸음을 옮겼다.

 

남동초등학교 담벼락에 붙은 금연 현수막 그림, 2022ⓒ유광식
남동초등학교 담벼락에 붙은 금연 현수막 그림, 2022ⓒ유광식
담방로사거리 횡단보도, 2022ⓒ유광식
담방로사거리 횡단보도, 2022ⓒ유광식

 

남동구청은 무지개 모양의 대문이 인상적이다. 담방문화공원이 함께 있어 관공서의 경직된 느낌이 많이 완화되고 대공원 입구로 들어가는 이색적인 느낌이 든다. 구청 옆으로는 남동구평생학습관이 있다. 평생 배움의 나침반이 되어주는 곳임을 보여주듯 1층에는 어르신들이 직접 구운 빵을 판매하는 베이커리 카페가 있어 따뜻한 인상을 받았다. 추위를 잠시 녹인 후에 바로 옆 남동구청으로 가본다.

 

단지 옆 좁은 인도에 늘어선 노점, 2022ⓒ유광식
단지 옆 좁은 인도에 늘어선 노점, 2022ⓒ유광식
장승로 거리의 상가들, 2022ⓒ유광식
장승로 거리의 상가들, 2022ⓒ유광식

 

남동구청 종합민원실 앞에는 고양이 경비원이 민원인을 맞이하고 있었다. 따뜻한 고양이 집도 마련되어 있어 작은 존재를 보살피는 아량에 감동했다. 민원실을 지나 청사 로비로 나가보았다. 마치 서점 혹은 도서관에 온 듯한 모습인데,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여 있어 조금 어리둥절하기도 했지만, 문화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구의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북카페가 함께 운영되고 있어 꼭 민원 때문이 아니어도 편하게 방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르신들의 한글 시화 발표회도 단출하게 열리고 있었다.

지켜보다 구석에서 책 한 권 꺼내 들었다. 박준 시인의 산문집이었다. 펼쳐 든 쪽에서 ‘작은 일이 우리 곁을 떠나가고 있다’고 쓰여 있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시기에 곱씹어 볼 만한 문장이란 생각이다. 작은 것들이 떠나가기 전에 그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간, 우리에게 12월은 그런 시간일 테다.

 

활짝 열려 있는 남동구청 대문, 2022ⓒ유광식
활짝 열려 있는 남동구청 대문, 2022ⓒ유광식
청사 1층에 마련된 북카페에서 휴식을 취하는 구민들, 2022ⓒ김주혜
청사 1층에 마련된 북카페에서 휴식을 취하는 구민들, 2022ⓒ김주혜

 

해는 저물어가고 길을 건너 장승백이시장으로 다시 향했다. 동네를 빙 돌며 싸매어 둔 계획 보따리를 풀어본다. 돈까스와 만두를 사고 만수동 피노키오가 빚은 식빵을 샀다. 대뜸 저녁이 든든해졌지만, 집으로 가는 퇴근길 교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총총걸음으로 돌아본 만수3지구. 작고 가벼운 물건이 물에 약간 잠겼다 뜨는 모양이라던 ‘담방’. 어떤 연말의 작은 걸음으로 남겠지만, 어느 날 돌아보면 3지구 만수동이라는 기억이 담방 떠오를 것만 같다. 한 해가 마지막 한곳으로 모이는 때이다. 올해는 하나로 마무리하고 흑토끼의 해를 기대하며 여러 갈래의 계획으로 짜내야 한다. 작심 365일로 말이다. 

 

저녁이 시작되는 시간(인주대로888번길), 2022ⓒ유광식
저녁이 시작되는 시간(인주대로888번길), 2022ⓒ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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