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운임제 확대, 그리고 화물연대와의 협상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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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운임제 확대, 그리고 화물연대와의 협상을 촉구한다
  • 김은복
  • 승인 2022.12.0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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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칼럼]
김은복 노무사 / 민주노총인천본부 노동법률상담소
지난 11월 30일 국제노동변호사 네트워크가 윤석렬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

노동자가 법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정의’는 원상회복 그 이상을 상상하기 어렵다. 제대로 원상회복이라도 되면 무척 고맙게 느껴지기도 한다.

직장 내 괴롭힘을 하소연했다가 오히려 업무 부적응이라는 이유로 해고된 노동자가 있었다. 의료기기 연구지원 업무를 했다. 해고는 부당하다는 법적 판단을 받았다. 원직으로 복직시키라는 행정(노동위원회) 구제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그런데 사업주는 그를 생산부서로 발령했다. 생산부서에서 생산직으로 일할지, 어떤 일을 할지 아직 모른다.

하지만 2년마다 받던 직장 건강진단을 매년 받아야 하는, 즉 종전의 업무와 유사하지도 않은 전혀 다른 직무로 발령 된 건 분명해 보인다. 사업주의 변은 이렇다. 복직시켜야 할 원직에는 직장 내 괴롭힘 관련자가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정의롭지 못하다. 노동위원회 규정 상 이행강제금이 부과될 가능성도 커 보인다. 그런데 이행강제금 부과 과정도 순탄치 못할 것 같다. 사업주의 부득이한 사정(?)을 이해하고 수용하라는 요구가 빗발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버티지 못하고 퇴사해 버릴지도 모른다.

‘법’과 ‘정의’ 이 두 단어는 나란히 놓일 때가 많다. 하지만 이 두 단어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앞에 본 상담사례처럼 원상회복이라는 최소한의 정의실현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법’과 ‘기술’ 또는 ‘법’과 ‘테크닉’이 더 잘 어울리는 관계처럼 보인다. 우리 현실에선 말이다. 앞에 본 상담사례에서 사업주는 법률적 테크닉을 구사한 것이다.

다른 사례를 들어보자. 흔히 아웃소싱이라 일컬어지는 파견노동은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근로자파견법)의 규율을 받는다. 즉 근로자파견법을 위반하는 아웃소싱은 불법파견이 된다. 노동자 파견은 사용업체와 아웃소싱 업체 사이에 수수료를 매개로 노동자를 거래하는 방식이다. 노예노동 근절은 근대화 이후 문명국가들의 공통된 과제였지만 파견노동 허용은 금지됐던 노예노동의 부활과도 같았다. 파견노동자들의 불안정고용 상태는 권리를 숨죽이게 하기 때문이다.

하여 법은 파견노동 직종을 엄격히 제한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불법파견이 횡행한다. 법은 불법파견 노동자를 사용한 업체가 직접고용 하도록 의무를 정했다. 하지만 사용업체는 불법파견이 발각되면 그 노동자를 기간제 비정규직으로 고용 한다. 그리고 계약만료로 해고한다. 이 또한 법률적 테크닉을 구사한 꼼수의 정수(?)인 것이다. (최근 대법원은 불법파견 노동자를 기간제 비정규직으로 고용한 것은 근로자파견법 상 직접고용의무를 완전히 이행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다행이다.)

나는 내가 사는 이 나라가 좋다. 많은 이웃들이 그렇듯 말이다.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출근하고 일을 하고 간혹 운전을 하다가 싸우기도 하고 또 다른 일로도 싸우고 화해하고 그렇게 산다. 짬이 나면 가까운 곳에 짧게 여행도 다니며 감탄하기도 한다.

밥도 그렇고 군것질도 그저 그렇게 늘 먹던 것들이지만 나는 그것들이 맛있다. 내가 사는 이곳이 좋다. 하지만 이 나라가 부끄러울 때도 많다. 어떨 땐 화가 난다. 이제 대한민국은 어엿한 선진국이라는데 과연 선진국이 이래도 되나 싶은 때도 많다. 정의보다 제도의 취지보다 목적을 우선시하는 왜곡된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가 판치는 이 나라가 말이다.

작금의 화물연대 파업 그리고 그것을 빌미로 민주노총과 전쟁을 벌이는 정부의 행태를 본다. 그리고 법률 기술자들로 구성된 지금 정부가 구사하는 테크닉을 본다. 막막하고 부끄럽고 또 화가 난다.

다음은 지난 주 11월 30일 국제노동변호사 네트워크가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의 일부이다. 이 서한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화물연대 파업으로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낼 시민들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 사태를 최악으로 이끄는 전차가 어디로 향하는지, 상식의 눈으로, 연대의 눈으로 그리고 정의의 눈으로 살펴 봐 주시기 바란다.

“윤석열 대통령님께. 전 세계 80여 개 국가 소속 870여 명의 노동법률가들로 구성된 ILAW Network(국제노동법률가단체)는 화물연대 총파업에 대하여 내린 대한민국 정부의 11월 29일 자 업무개시명령을 규탄합니다. ...... 특히 더 우려되는 것은, 복귀 의무를 불이행하는 경우, 이들이 자격정지뿐만 아니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이라는 형사처벌까지 받게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명백히 국제법에 어긋납니다(각주 : 대한민국 정부의 대응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인 29호(강제노동 금지) 협약, 87호(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장) 협약 그리고 155호(산업안전보건과 작업환경) 협약 위반의 소지가 있다고 보여 집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즉시 업무개시명령을 철회하고 안전운임제 확대와 관련한 화물연대본부와의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합니다. ...... 안전운임제를 채택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ILO 155호(산업안전보건과 작업환경) 협약 제4조(2)에 따른 의무(회원국은 작업환경에 내재하는 위험요인을 최소화함으로써 작업에 기인하거나 작업과 관련되거나 작업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 및 상해를 예방하는 정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합니다._각주 : 대한민국 정부는 위 155호 협약을 2008년에 비준하였습니다.)를 준수하기 위하여 필요한 중요 사항 중 하나입니다. 안전운임제가 가져오는 명백한 이점을 고려할 때, 대한민국 정부가 안전운임제 일몰을 연장하기로 한 약속을 왜 번복하는지 그 이유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 다시 말하지만, ILO는 형사 제재는 파업이 폭력적일 때에만 사용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 대한민국 정부는 합법적인 파업에 대응하여 벌금이나 형사제재가 뒤따르는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는 방식으로 강제노동에 관여하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 다시 한 번 ILAW Network를 대표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즉시 철회하고 안전운임제 확대에 관하여 화물연대와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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