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억과 흔적이 있는 길 - 주인선 철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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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억과 흔적이 있는 길 - 주인선 철길
  • 권근영
  • 승인 2022.12.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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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설계하는 인천 문화]
삶의 기억과 흔적이 있는 길(1) - 주인선(주안역~남인천역) 철길 걷기
글 = 권근영 15분연극제X인천 대표
‘15분연극제’에서는 인천에서 나고 자란 혹은 인천에 터를 잡은 연극인의 삶의 기억과 흔적이 묻은 장소를 함께 걷는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인천의 작은 동네, 자주 가던 곳, 이야기와 사건, 아주 소소한, 개인의 기억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그 일부를 3차례에 걸쳐 기록해 인천in 독자 여러분과 공유합니다.

 

 

기획 : 권근영 / 공연예술가, 15분연극제X인천 대표

안내자 : 신재훈 / 작‧연출, 극단 작은방 대표

사진 : 이야기

함께 걸은 날 : 2022년 7월 23일(토) 오전 10시

함께 걷는 길 : 제물포역 1번 출구 – 주인근린공원 – 옛 철도길 – 닭장이 있던 집 – 옛 수인선 철로

 

안녕하세요. 연극 쓰고 연출하는 신재훈입니다. 저는 유아기부터 미추홀구에 살다가 지금은 왔다 갔다 하면서 살고 있어요. 부모님은 지금도 계속 이 근처에 살고 계시고요. 저희 가족들은 이사를 다녔어도, 계속 이 동네에서 다녔어요.

인천에 역사적인 곳도 참 많지만, 오늘은 제가 살던 길을 산책하듯이 같이 걸어보려고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뭘 답답해했고, 뭘 느꼈는지, 이런 얘기를 드리면 좋을 거 같아요. 철길의 흔적이 좀 있는 길을 같이 걸어보겠습니다.

제가 오늘 두 개의 철도 길을 걸으려고 하는데, 하나가 바로 여기에요. 와보신 분도 계실 거 같아요. 주인선 철길. 주안역 방면 큰길로 쭉 가면 도화초등학교라고 있거든요. 제가 거기를 졸업했어요. 지금도 까먹지 않는 게 교가 첫 줄인데 뭐라고 써 있냐면.

‘앞에는 수도 동맥 경인가도요/ 뒤에는 수봉산이 높이 솟았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도화초등학교 앞에 이 길이 지나갔어요. 이 길은 수도의 동맥. 그러니까 서울로 가는 동맥과 같은 길이라고 해서 그걸 초등학교 때 외웠어요. 경인선은 제물포랑 서울이 이어진 첫 번째 철도였잖아요. 경인선과 경인로. 서울로 이어져 있다는 걸 교가 1절의 첫 줄로 삼을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거 같아요.

지금 걷는 주인선은 주안역에서 수인선 남인천역 사이에 놓여진 철도라고 하네요. 미군 부대 물품을 운송하던 철도라고 해요.

걸어가는 길에 안내판 보시면 내용이 잘 나와 있죠. 보셔서 아시겠지만 여기 숭의동에서부터 주안역까지 철도라고 하는데, 저 어렸을 때 여기 기차가 다니는 걸 본 적은 없어요. 2000년도 초반까지 그냥 철로만 있었어요.

아까 공원 걸으면서 보니까 공기 좋다, 예쁘다, 강아지랑 고양이들한테 좋은 거 같다, 이런 말씀 하셨잖아요. 그런데 저한테는 그렇게 좋은 추억은 아니었어요.

저한테는 엄청 휑하고 방치되어 있던 곳이었어요. 그래서 아까 그 고양이 사진 찍던 데는 비 오면 정말로 흙탕물 첨벙첨벙 거리고 벽에서 오‧폐수가 흘러내리던 곳이었어요. 제 기억에는 그래요.

그리고 2000년도 초반에 여기 인하대가 엄청 유명하잖아요. 술집도 많고. 그래서 술을 마시면 타 지역 친구들이 약간 내기하듯이 이런 얘기도 했었어요. “우리 제물포역까지 걸어가 볼래?” 약간 여기가 예전에는 혼자 가면 무서운 느낌, 지저분한 느낌이 들고 그랬어요. 1호선 제물포역을 가면서 일부러 여기를 지나가는 거죠. 여기 살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좀 그랬어요.

어느 날 이 길이 싹 갈리면서 이제 공원이 생긴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때 뭐라고 써 있었냐면 ‘근린공원’이라고 써 있었어요. 근린공원이라는 말도 생긴 지 얼마 안 됐는데, 최초의 근린공원이 혹시 어딘지 아세요? 아까 제가 얘기한 도화초등학교 교가에 나와요. ‘앞에는 수도 동맥 경인 가도요/ 뒤에는 수봉산이 높이 솟았네’ 수봉공원이 우리나라 최초의 근린공원이래요.

하필 최초의 근린공원도 제가 나온 초등학교 뒤에 있는 공원이고, 우리집 앞에 근린공원 하나 생겼는데 그것도 좀 별로고... 그래서 근린공원이라는 말이 저한테는 좀 화사한 말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쭉 걸어가면 주인선의 끝이고, 잠시 쉬었다가 수인선 철길을 걸어보시죠.

여기는 이제 수인선입니다. 지금 수인선이랑은 다르죠. 옛 수인선이고, 1990년에 중단됐어요. 여기 길이 좀 길거든요. 원래 계획은 저쪽 끝에서부터 걸어오는 거였는데, 시간상 어려울 것 같아서 중간에 가로질러 왔어요. 저 어렸을 때는 지금 가는 길 끝에 연탄 공장이 있었어요. 항상 이쪽으로 검은 연탄을 싣고 갔던 기억이 있어요.

여기에 모여볼 수 있을까요? 저 어렸을 때는 수인선이라고 부르지 않았어요. 그냥 철도가 있었고, 저 길 건너편 나무 많은 곳에 강원연탄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 초등학교 때 연탄을 실은 차들이 왔다 갔다 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마침 이곳을 배경으로 쓴 시가 있어서 제가 한 구절 정도 읽어드리고 마무리하려고 해요.

김중식 시인의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이라는 시에요. 제가 대학교 다닐 때 핸드폰이 없었는데, 다이어리를 매년 새로 살 때마다 항상 적어 다니고 그랬어요. 다 읽어드릴 수는 없고 여기 나온 부분만 읽어드릴게요.

 

「큰 도로로 나가면 철로가 있고 내가 사랑하는 기차가

있다 가끔씩 그 철로의 끝에서 다른 끝까지 처연하게

걸어다니는데 철로의 양끝은 흙 속에 묻혀 있다 길의

무덤을 나는 사랑한다 항구에서 창고까지만 이어진

짧은 길의 운명을 나는 사랑하며 화물 트럭과 맞부딪치면

여자처럼 드러눕는 기관차를 나는 사랑하는 것이며

뛰는 사람보다 더디게 걷는 기차를 나는 사랑한다

나를 닮아 있거나 내가 닮아 있는 힘 약한 사물을 나는

사랑한다 철로의 무덤 너머엔 사랑하는 西海(서해)가 있고

더 멀리 가면 中國(중국)이 있고 더더 멀리 가면 印度(인도)와

유럽과 태평양과 속초가 있어 더더더 멀리 가면

우리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세상의 끝에 있는 집

내가 무수히 떠났으되 결국은 돌아오게 된, 눈물겨운.」

- 김중식 시집 『황금빛 모서리』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에서.

 

제가 시처럼 읽지는 않았어요. 이 시가 저한테 엄청 좋았던 이유는 여기를 엄청 벗어나고 싶었거든요. 여기 지금은 아파트잖아요. 저희 옛날 살던 집은 이제 자취도 없어요. 저희가 닭을 키우면서 살았거든요. 그래서 어렸을 때 이 시를 읽으면 막 동화되고 그랬었어요. 지금은 다른 감각이긴 해요. 이 시를 마지막으로 마무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마치며

<간신히 정돈된 길>

황토 마당에서 닭을 스무 마리 정도 키웠는데, 밤이면 쥐들이 닭 목을 갉으려고 닭장 주변을 빙빙 돌았습니다. 낮에는 동네 개들이 종종 병아리들을 물어가곤 했는데, 그 개를 쫓아가면 이미 병아리는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대문이 시원찮아 집과 길 경계가 모호했는데, 가끔 집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마루에 앉은 어머니가 “여기 길 아니에요, 집이에요, 나가세요” 외치곤 했습니다. 집인지, 길인지 모를 곳에서 살았습니다.

집에서 얼마 떨어진 곳에 철길이 있었는데 제물포에서 인천항으로 향하는 철도였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기차가 다녔고 중학교 때는 다니는 기차 없이 오폐수가 넘쳐나 악취가 진동했습니다. 그 길을 따라 사람들이 애써 다녔는데,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때가 돼서야 근린공원이 되었습니다.

개발의 들뜸도 없고, 그렇다고 삶의 자취가 쌓여 터무니가 생겨나는 것도 아닌, 어쩌면 목적지만을 향해 간신히 나 있는 길을 걸어보려고 합니다. 저에게 인천은 이런 길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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