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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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책읽기
  • 최종규
  • 승인 2011.08.25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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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소풍과 책읽기

ㄱ. 소풍과 책읽기

 1980년대 국민학생이 맞이한 소풍은 봄과 가을에 한 차례씩 찾아왔습니다. 먼저 학교에 모인 다음, 학년과 반에 따라 줄을 맞추어 재잘재잘 떠들며 걸어서 갔습니다. 으레 가까운 데로 가고, 으레 여러 학교에서 같은 날 찾아가니까, 소풍날 찾아가는 곳은 북적북적거립니다. 가까운 데이든 먼 데이든 버스를 타고 찾아간 적이 없습니다. 늘 걸었습니다.

 걸어서 가자면 꽤 걸리기 때문에 아침 일찍 학교에 모입니다. 교장 선생님 말씀이 길디길게 이어지고 나서 학년에 따라 차례차례 학교를 나섭니다. 담임을 맡은 이는 줄이 흐트러질 때마다 소리를 빽 지르며 다그치지만, 소풍날에는 빽빽 다그치는 소리도 노래처럼 들립니다.

 학교를 벗어나 놀러가는 길이기 때문인지, 한 시간을 걷고 두 시간 가까이 걷더라도 그리 힘들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여느 때에는 늘 시멘트 성냥갑 교실에서 지내지만, 소풍날만큼은 아침 여덟 시에도 아홉 시에도 열 시에도 동네를 걸어서 지나갑니다. 학교 바깥 동네 아침 모습을 느끼며 걷는 일은 새삼스럽고 놀라우며 즐거웠습니다.

 국민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꼭 한 차례씩 버스를 빌려 꽤 먼 데까지 수학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마실을 다닙니다. 버스를 타고 먼 데를 다닐 때에는 창밖을 내다보기도 하지만, 창밖 모습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아니, 창밖을 내다볼 겨를이 없이 버스에서 노래를 불러야 하느니 도시락을 까먹어야 하느니 하면서 부산스럽습니다. 기운이 넘치는 신나는 아이들은 몸이나 다리를 쓸 일이 없는 버스에서 그야말로 시끄러울 뿐입니다.

 버스를 타고 찾아가는 머나먼 곳에서는 돌아볼 곳이 많다고 합니다. 빨리빨리 이곳에서 저곳으로 움직이고, 이곳에서 사진 한 장 저곳에서 사진 두 장을 찍어야 합니다. 무엇을 더 생각하거나 살피거나 헤아리거나 돌아볼 틈이 없습니다.

 걸어서 찾아가던 소풍 놀이터에서는 서둘러 사진을 찍을 일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복닥이기는 하지만, 한갓지거나 느긋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사진이야 따로 안 찍어도, 또 소풍날이 아니어도 으레 찾아가는 곳이니까, 굳이 사진으로 뭔가를 남기기보다는 마음껏 뛰고 놀며 즐깁니다.

 집에서 책을 읽습니다. 읽던 책을 다시 넘기고, 보던 책을 새삼스레 꺼냅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며 읽을 책이란 꼭 새로운 책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읽던 책을 다시 넘겨도 기쁘고, 보던 책을 새삼스레 꺼내도 즐겁습니다. 글책이든 그림책이든 사진책이든, 한 번 보고 스윽 지나치기만 한다면, 내 마음에건 가슴에건 생각에건 머리에건 깃들지 않습니다. 노상 곁에 둘 만한 책일 때에 언제라도 읽을 만한 아름다운 이야기로 자리잡습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도서관이라는 곳은 더 많은 책이나 더 새로운 책을 갖추지 않아도 될 만합니다. 언제라도 다시 읽거나 거듭 읽으면서 내 넋과 얼을 어여삐 보듬는 맑고 밝은 책으로 살가울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도서관이라고 느낍니다. 어머니 품이든 아버지 품이든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고, 모레와 글피라고 다를 수 없어요. 늘 같은 품이면서 사랑스럽고, 언제나 같은 품으로서 빛납니다.

ㄴ. 어머니 책읽기

 어린 날, 어머니가 집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고 떠오릅니다. 어머니가 글을 모르기에 책을 안 읽으셨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글을 읽을 줄 알고 쓸 줄도 압니다. 그러나, 집에서 책을 읽는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집에서 마주보는 어머니 모습이란, 일하고 살림하는 모습입니다. 집일을 하고 부업을 하며, 집살림을 건사하는 모습입니다.

 두 아이하고 아픈 옆지기랑 살아가자니, 참으로 책을 손에 쥘 겨를을 낼 수 없습니다. 아는 분한테 아이 얘기를 알리자며 전화를 걸자고 생각하더라도 이 일 저 일에 치여 전화기 단추 누를 틈을 내지 못합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어버이로 살아가는 자리에 서기 앞서 내 마음과 삶을 살찌우는 책을 읽지 않는다면,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제금날 때까지 손에 책을 쥘 수 없는지 모른다고.

 집일에 바쁜 어버이가 신나게 함께 놀지 못하기에, 네 살 아이는 일찍부터 혼자 책읽기에 빠져들곤 합니다. 돌이켜보면, 나도 어린 날 집밖에서 동네 동무들이랑 신나게 뛰어놀거나 집안에서 만화책에 신나게 빠져들었습니다. 다만, 내 눈에는 일하는 어머니 모습이 늘 아로새겨졌고, 어버이로 살아가는 나한테는 내 아이가 오늘날 저희 아버지한테서 일하는 모습이 아로새겨질까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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