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신년사 속의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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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신년사 속의 노동
  • 노영민
  • 승인 2023.01.1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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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칼럼]
노영민 /노무사, 민주노총인천본부 노동법률상담소
2023년 신년사 발표하는 윤석열 대통령
2023년 신년사 발표하는 윤석열 대통령(사진=연합뉴스)

 

기득권 유지와 지대 추구에 매몰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미래세대의 운명이 달린 노동, 교육, 연금 3대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가장 먼저, 노동 개혁을 통해 우리 경제의 성장을 견인해 나가야 합니다. 변화하는 수요에 맞춰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바꾸면서 노사 및 노노(勞勞) 관계의 공정성을 확립하고 근로 현장의 안전을 개선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해야 합니다. 직무 중심, 성과급 중심의 전환을 추진하는 기업과 귀족 강성 노조와 타협해 연공 서열 시스템에 매몰되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 역시 차별화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노동 개혁의 출발점은 ‘노사 법치주의’입니다. ‘노사 법치주의’야말로 불필요한 쟁의와 갈등을 예방하고 진정으로 노동의 가치를 존중할 수 있는 길입니다.

- 2023년 윤석열 대통령 신년사 중 노동 관련 부분(2023.1.1.)

 

기득권 세력? 지대 추구 세력?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신년사에서 “기득권 유지와 지대 추구에 매몰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고 없”고, 노동, 교육 연금 3대 개혁, 가장 먼저 노동 개혁을 해야 한다고 했다.

노동 개혁의 내용으로 노동시장 유연화, 노사 및 노노(勞勞) 관계의 공정성 확립,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직무성과급으로 임금체계 전환을 제시했다. 그리고 ‘노사 법치주의’가 노동 개혁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신년사의 전체적인 맥락을 봤을 때 윤 대통령이 지목한 기득권 세력, 지대 추구 세력은 대기업과 공공기관에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이른바 ‘귀족 강성 노조’)로 보인다. 기득권 유지와 지대 추구에 매몰된 나라는 미래가 없다면서 느닷없이 노동, 교육, 연금 3대 개혁을 미룰 수 없다며 가장 먼저, 노동 개혁을 해야 한다고 한 것이나, 노사 및 노노(勞勞) 관계의 공정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하니 말이다. 대통령은 지난해 말 ‘노노 간 착취 구조 타파’가 시급하다며 ‘대기업 중심의 조직화된 노조’와 ‘노동 약자’를 대비시킨 바 있다.

대통령의 말로 졸지에 노동자들은 기득권 세력, 지대 추구 세력이 돼 버렸다.

그런데 말이다. 50대 대기업들이 보유한 사내유보금만 100조 원이 넘고, 대기업 임원 등 근로소득 상위 0.1%의 급여 소득이 중위 소득자의 28.8배(2020년 기준)이고, 종합소득으로 따지면, 최상위 0.1%와 중위 소득자 간 격차가 무려 236배(2019년 기준)에 달하는 나라의 노동자가 기득권 세력, 지대 추구 세력인가?

임금 빼고는 다 오르는 고물가, 고금리, 고유가 시대에 사는 노동자들을 기득권 세력, 지대 추구 세력으로 규정하는 대통령의 말에서 노동에 대한 섬뜩한 적대감이 느껴진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대통령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해 “직무 중심, 성과급 중심의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풀이하자면 귀족 강성노조가 지배하는 개입의 연공형 임금체계를 폐지하고 직무성과급 중심으로 바꿔서 대기업 노동자의 기득권을 박탈함으로써 다른 노동자(정부가 말하는 ‘노동 약자’)와 격차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연공형 임금체계를 직무성과급으로 개편하면 열악한 ‘노동 약자’의 처우가 높아진다는 것인지 아닌지에 설명은 없다. 그저 높은 권리를 보장받는 노동자를 탓하면서 처우 수준이 낮은 노동자와 격차가 문제라고 할 뿐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 나라에서 가장 소리 높여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은 누구일까? 바로 경총 등 사용자단체들이다.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이 노조를 통해 집단적으로 임금 등 노동자 권리 향상을 도모하는 것을 적대시한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끊임없이 방해하고 극렬하게 저지하려 한다. 사용자들은 직무성과급으로 임금체계 개편을 통해 노조의 단결력이 약화되고 임금이 억제되기를 바란다. 사용자들은 노동시간을 최대한 유연화해 자기들 멋대로 장시간 노동을 시키려 한다. 대통령의 말은 사용자들의 주장과 100% 일치한다. 그러면서 ‘귀족 강성노조’ 운운하며 ‘노동 약자’와 대립시키는 식으로 노동자들 갈라치기에 열심이다.

 

노사 법치주의?

대통령은 노동개혁의 출발점이 불필요한 쟁의와 갈등을 예방하는 ‘노사 법치주의’라고 한다.

그런데 말이다. 대통령이 말하기 전까지 필자는 ‘노사 법치주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노사 자치주의’라는 말은 많이 들었어도 ‘노사 법치주의’라는 말은 금시초문이다. 노동법 교과서나 법원 판결문에서도 본 적이 없다. 틈만 나면 법치주의를 외쳐대는 대통령이 노동문제에도 그것을 덧붙이는 것이 참으로 신박하다.

노사 자치주의는 노사관계의 기본 원칙이다. 노동자들이 노동 3권(노동자 단체 결성, 사용자와 교섭, 파업 등 단체행동)을 행사해 노동자의 권리를 만들고 향상시키는 과정이 노사관계이고 여기에 국가가 간섭하고 억압해서는 안 된다. 이게 노사 자치주의 원칙이다.

대통령이 노사 자치주의가 아니라 노사 법치주의를 들먹이는 것은 국가가 나서서 법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억압하겠다는 선언이다. 안 그래도 이 나라의 노조법은 노조의 활동과 파업에 대해 수많은 제한과 금지, 형사처벌에 관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 나라의 노조법을 노조탄압법으로 규정한다. 대통령의 “노사 법치주의 확립” 발언은 노동자들의 권리 행사를 한층 더 불법화·범죄화 하고, 노동자의 권리와 자유를 더욱 제한하고 억압하겠다는 것이다.

 

진정한 노동 개혁

새해를 맞아 직장갑질119라는 시민단체가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새해 소망이 무엇인지 설문조사를 했다.

설문조사 결과 78.0%(780명)가 ‘임금 인상’을 꼽았고, ‘노동시간 단축’(22.4%), ‘일과 가정의 양립’(20.1%)이 뒤를 이었다. ‘물가 인상으로 사실상 임금 줄었다’는 의견에 응답자 92.3%가 동의했다.

현 정부의 노동·일자리 정책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가 압도적이었다. ‘노동·일자리 정책을 잘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78.1%)고 답한 비율이 ‘그렇다’(21.9%)는 의견보다 4배 가까이 높았다. 특히 여성(84.7%),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80.9%), 월 150만 원 미만 노동자(84.7%)에게서 부정적 평가가 많았다. 대통령이 보호하겠다는 ‘노동 약자’가 현 정부의 정책에 더 부정적인 것이다.

당연한 결과다. 윤석열 정부의 정책이 직장인이 원하는 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과는 정반대를 향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노동 개혁은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가 향상되는 것이다. 노동자의 임금이 오르고 노동시간이 줄고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일하며 인격적인 대우를 받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임금 억제, 장시간 노동,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 제한은 노동 개혁이 아니다. 노동 개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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