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와 시장 사이, 주민 삶속에 꽃피는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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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와 시장 사이, 주민 삶속에 꽃피는 예술
  • 공지선
  • 승인 2023.01.17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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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을 깨우는, 청년문화예술]
(1) 주안동 '공간 듬', 윤대희 작가를 만나다.
가만히 살펴보면, 칙칙한 도시를 의미있게 채색하고 일깨우려 소리없이 분투하는 ‘문화청년’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인천지역에서 문화예술 공간을 운영하며 새롭게 시도하는 청년들을 만나보고 그들의 예술세계를 나눠본다. 공지선 청년작가가 그 공간들을 찾아 나선다.

 

미추홀구 주안8동에 있는 신기시장은 활기 넘치는 소리로 가득하다. 주차장에 들어서는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고 주민들은 저마다 양손 가득 물건이 든 봉투를 쥐고 있다. 시끌벅적함을 바로 지나 골목으로 들어서면 낮은 주택과 빌라들이 촘촘히 자리 잡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마다 낯익은 듯 인사를 건네는 길목 어귀로 새하얀 건물이 눈에 띈다.

공간듬은 이렇게 삶과 맞닿아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떠들썩한 시장 옆, 고즈넉한 주택단지 안, 주민들이 나와 쉴 수 있는 쉼터의 앞, 조금은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주민들은 익숙한 듯 낮은 계단을 서고 올라 공간에 설치된 작품을 저마다의 눈에 담고 이야기를 나눈다.

“미추홀구에 거의 유일하게 있는 독립 공간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신기시장 뒤편 주거 공간에 자리 잡고 있는 공간이다 보니 일반적으로 문화공간들이 모여있는 곳과는 다른 형식으로 운영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동네의 이야기나 지역과 관련된 소스들을 많이 활용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지난 밤 내린 눈이 모두 녹아내린 따뜻한 겨울, 공간듬의 윤대희 작가를 만나보았다.

공간 듬 전경
공간 듬 전경

2014년 12월에 개관한 <공간 듬>은 올해로 아홉 살이 된 복합문화공간이다. 공간은 두 개로 나뉘어있다.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화이트큐브의 공간과 문화예술 교육과 사무 업무를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주로 시각예술 프로젝트를 많이 하고는 있지만 공연이나 퍼포먼스, 음악 공연도 정기적으로 기획을 해왔어요. 단순히 전시 공간으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공연장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옆 공간에서는 주로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많이 하고요. 재작년부터는 60대 이상 어르신들 하고도 수업을 틈틈이 하고 있습니다. 복합적으로 다양한 문화예술을 다루는 공간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윤대희 작가
윤대희 작가

윤대희 작가는 공간 듬을 운영하는 운영자임과 동시에 시각예술 작업을 하는 작가로도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주로 개인적인 사유를 통해 관찰한 풍경 들을 화면에 옮기는 일을 하고 있고요. 최근에는 드로잉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작업에 관심이 생겨 회화 작업 외에도 시간성을 가지는 작업을 연구해 보려고 고민 중에 있습니다.”

지역 내외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던 시기, 개인적으로 변화가 필요하다 생각했을 때 공간을 함께 운영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이 계기가 되었다.

“듬에서 전시를 하게 되면서 기존에 운영하시던 작가님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어요. 그 분은 이제 공간을 벗어나서 재충전 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저는 개인 작업만 하다가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거든요. 어떤 접점이 생기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제가 한번 해볼게요. 이렇게 됐던 것 같아요”

공간 듬은 현재 아티스트런 스페이스(artist-run space, 작가가 직접 운영하는 문화예술공간)의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표를 중심으로 윤대희 작가, 최바람 작가가 2년 단위로 공간을 책임지고 있다. 교육 쪽에는 이선호 작가가 새로 영입되어 총 4명이 각자의 역할을 맡고 있다. 운영하는 작가의 성향에 맞게 매년 프로젝트가 바뀌기 때문에 공간이 고정적인 이미지로 굳어지지 않고 다양한 방향으로 확장되어 나아가는 것도 긍정적이다.

산책 프로젝트 인스타그램
산책 프로젝트 인스타그램
식탁보 프로젝트 인스타그램
식탁보 프로젝트 인스타그램

거주지와 맞닿아 있는 공간의 특성상 프로젝트에 있어서도 다양한 시도가 지속되고 있다. 지역에 오래 발을 디디고 살아온 어르신들의 입을 통해 지역의 변화를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오래 살았던 분 들이라 이 공간에 누가 살았고 뭘 했는지 다 알고 있어요. 듬은 가운데에 슈퍼를 끼고 두 개의 공간이 있는데, 슈퍼 이모님 입을 통해 역사를 구술로 정리하고 외부 작가님들께 이야기를 들려 드리는 거죠. 글, 전시, 인터뷰 등 형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이 집의 어떤 형태랑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진행된 게 ‘시퀀스 프로젝트’이다. 각 시퀀스마다 다른 내용들을 극처럼 엮어 책으로 출판, 전시를 진행하였다.

시퀀스프로젝트 도록
시퀀스 프로젝트 도록

그 외에도 동네의 산을 돌아다니며 지도를 만드는 프로젝트, 신기시장에서 판매하는 식자재를 구매하여 요리를 한 뒤 게스트를 초대해 다 같이 나누어 먹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신기시장에 있는 상점을 소개하고자 했다. 지역 관련 프로젝트를 위해 신기 상인회의 회장과 만나 협업 관련 이야기를 나누는 등의 노력도 지속되고 있다.

“이 작은 동네에도 무언가가 생기고 없어지는 등의 변화가 계속되고 있거든요. 워낙 오래된 동네다 보니 사실 생기는 것보다 없어지는 것들이 더 많은데 그런 것들이 너무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나. 우리가 우리 방식대로 기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사실 저희가 지역과 관련된 리서치 기반의 작업을 하는 작가들은 아니거든요. 저도 그렇고 최바람 작가님도 그렇고. 개인적인 어떤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각자 작업을 하는 사람들인데 이 공간에 오면서는 그러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전시 전경_이다흰 개인전
전시 전경_이다흰 개인전

처음부터 듬이 환영받는 공간은 아니었다. 문화예술과는 거리가 먼 지역에 자리 잡은 공간이라 낯선 변화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도 있었다. 전시 주제에 있어서도 동네의 분위기와 맞는 방향으로 수정해갔다. 문턱을 낮추고 동네의 사랑방이 되는 문화공간이 되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밑받침 되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운영에 있어 어려움이 있다. 수익을 창출하는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인 고충이 발생한다. 대부분의 사업이 기금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이마저도 넉넉하지 않다.

“사실 예산이 없으면 사업을 진행하는 게 쉽지는 않아요. 감사하게도 후원금을 주시는 분들이 계시긴 하지만 녹록지 않거든요. 예산에 따라 사업 규모가 바뀌니까 지속하고 싶었던 사업도 단발성으로 정리되는 경우도 있어요. 기금에 많이 의존하는 공간이긴 한데 교육 같은 사업은 어쩔 수 없이 많이 필요하거든요. 전시나 이런 것들에선 기금 의존도를 줄이고 싶죠.”

작업과 공간 운영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도 쉽지 않다.

“사실 밸런스를 맞추기가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공간 운영할 때 작업을 못했어요. 작가들이 작업 외에도 경제활동도 하는데, 평소에는 작업을 하면서 경제활동을 하는 스케줄로 움직이다가 공간을 하게 되면 공간 운영을 하면서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스케줄로 바뀌니까 작업 시간을 내기가 힘들어요. 공간이란 게 작품 설치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다음 프로젝트를 위해 미팅도 진행을 해야 하고 또 공간에 나와 있기도 해야 하니까요.”

윤대희 작가는 공간을 운영하며 힘든 점도 있었으나 얻는 기쁨과 재미가 더 많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개인 작업에서 할 수 없었던 표현들이나 이야기들을 다른 작가의 손을 빌려 한다거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걸 가장 큰 장점으로 뽑았다.

“작년에 신기시장 프로젝트를 하며 마지막에는 팥죽을 쑤며 새해 점을 보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이게 어떤 예술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지만, 그런 걸 좀 핑계 삼아 같이 모일 수 있는 거점을 만들고 색다른 일을 했을 때 재밌는 것 같아요.”

듬은 그에게 새로운 마스크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요즘 MBTI로 따졌을 때 저는 I(내향)의 성향이 강한 사람이거든요. 근데 공간 듬을 맡게 되면 E(외향)의 성향이 되는 거예요. 평소에 제가 하지 않았던 행동 들을 ‘듬’의 이름 뒤에 숨어서 적극적으로 할 수 있었다는 것도 너무 좋았어요”

윤대희의 드로잉북(음악가 이권형)
윤대희의 드로잉북(음악가 이권형)

2020년에 기획한 <윤대희의 드로잉북>을 진행하며 공연을 기획하고 지역의 뮤지션들과 자주 만나게 되면서 자체적으로 음반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주변 지인들은 이를 두고 어색하게 왜 이러냐며 놀라기도 했다.

“처음에는 프로젝트 하나로 생각하고 시작했던 게 공간을 만나 새로운 프로그램이 파생이 되기도 하고 계속해서 같이 할 수 있는 뭔가를 얻기도 하고 하는 것들이 정말 긍정적이에요”

듬은 곧 개관 10년을 앞두고 있다. 2024년까지 단 1년을 앞두고 있지만 10주년을 잘 맞이하는 게 윤대희 작가와 운영단들의 공동 목표이기도 하다. 지난 날 프로젝트들을 잘 정리해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재설정하는 것에 큰 의의를 두고 있다고 밝힌다.

부끄앨범(CD, 오혁재)
부끄앨범(CD, 오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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