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진 세상에서 부는 휘파람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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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진 세상에서 부는 휘파람 소리
  • 이세기
  • 승인 2023.01.20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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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기의 손바닥소설 - 북창서굴]
(24-끝) 마부(馬夫)
공단 공장
공단 공장

서북 공단에서 화살처럼 날아오는 겨울은 쓰다. 소금처럼 쓰디쓰다. 요즘처럼 생활이 쓴 적이 없다. 살을 에는 매서운 눈보라가 물아치는 이런 밤. 휘파람을 불며 짙푸른 눈빛을 한 마부라도 나타났으면 좋겠다.

그해 겨울, 내가 다니던 ㅅ공장은 하늘을 찌를 듯한 굴뚝 때문에 인근 공장에서는 쉽게 눈에 띄었다. 앙상한 은행나무 한 그루 서 있는 덩그런 공장 운동장에는 인형들을 실어나르기 위해 컨테이너 차들이 줄지어 있었고, 인형을 가득 실은 차들은 황급히 공장문을 빠져나갔다. 월요일 철커덕 카드 출근표를 찍고 나면 금요일 혹은 주말에나 빠져나올 수 있을 만큼 혹독한 작업 조건이었다. 객토로 성형을 해 도자기 인형을 만드는 공장 안은 지독한 석회 가루가 날려 갱도 속 같았다. 눈송이처럼 날리는 석회 가루로 코를 풀면 석회가 나왔다. 눈썹은 금세 새하얘졌다. 우리는 공장 안을 갱막장이라고 불렀다.

공장 안은 굉음을 내며 밤낮을 쉬지 않고 흘러나오는 집광기의 음산한 기계 소리와 방금 구워 나온 도자기 인형끼리 부딪쳐 나오는 날카로운 금속성 소음으로 가득해 울부짖는 유령 소리 같았다. 소리는 작업장과 복도를 떠돌며 배회했다.

작업장 안을 가로지르는 어두침침한 복도 가장자리에는 각종 인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제 막 성형부에서 나와 채색을 하는 화공부로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는 인형들 하며, 1,800℃의 지글거리는 가마에서 완제품으로 만들어진 인형들은 거대한 군단 행렬을 연상케 했다. 굽는 과정에서 팔과 다리가 잘려 나가거나 얼굴과 몸이 터진 불량 인형들은 야적장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인형들로 줄지어 도열한 공장 안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연상케 했다. 그래도 화장터 같은 가마에선 영롱한 자태와 빛깔로 빚어진 인형들이 새롭게 태어났다.

내가 그를 처음으로 본 것은 늦은 밤 식당에서였다. 때는 연말이라 연일 야근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던 때였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에 야참 시간이 주어졌다. 당시에 나는 견습을 갓 마친 신참이어서 동료들의 야참을 도맡아 챙겼다. 그날도 역시 야참을 준비하기 위해 식당에 갔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화들짝 놀랐다. 비상등만이 켜져 있는 식당 안에 검은 물체가 도둑고양이처럼 잔뜩 웅크린 채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걸신이 들린 듯 뭔가를 허겁지겁 주워 먹는 모습이 얼핏 보아도 사람임이 분명했다. 사내는 인기척을 듣고서야 행동을 멈추었는데 손에는 먹다 만 밥풀이 한 움큼 쥐어져 있었다. ‘히히’거리며 식판에 있는 밥을 손으로 떠먹던 사내가 내 눈에는 어딘지 모르게 어수룩한 얼치기로 보였다.

그렇게 첫 대면을 한 사내는 입술이 두툼하고 얼굴은 가무잡잡했다. 서른 초반이지만 언뜻 사십이 넘어 보이는 노티 나는 품새는 거무죽죽한 피부색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난히 불거진 듯한 광대뼈와 거무죽죽한 눈가에서 흘러나오는 짙은 눈빛은 두려움을 주고도 남을 만큼 강골로 보였다. 한밤의 고양이 눈처럼 광채가 흘러나왔다. 순간 눈이 마주쳤는데 쳐다보는 시선이 싸늘했다. 개구리 군복 상의를 입은 그는 옷깃을 치켜세워 한껏 멋을 부렸다.

야참 시간에 사내는 세 번씩이나 배식을 받았다. 그 모습에 동료들은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다부진 어깨와 숟가락을 아귀 차게 잡은 두툼한 손에서 대식가의 풍모가 느껴졌다. 야참을 다 먹은 사내는 휘파람을 불며 사라졌다. 그날 사내의 출현과 동시에 우리는 어설픈 신출내기 고문관이 나타난 것을 적이 못마땅하게 지켜보았다.

마부가 나타나셨군.

우리의 예상은 적중했다. 견습공인 그에게 돌아간 일은 불량 인형을 야적장에 버리는 일과 손수레에 객토를 실어 집광기에 넣는 일이었다. 그 일은 주물부의 첫 공정으로 모두 피하는 고된 일이었다. 그 일을 맡은 견습공이 나가기라도 하면 부서 일원 중 한 명씩 신참 순서대로 차출되어 일해야 했다. 담배 한 모금 피울 여유도 없이 1톤 이상의 객토를 쉬지 않고 집광기에 날라야만 하는 중노동이었다. 신참에게 그 일을 주면 일주일도 못 버티고 여지없이 나가버렸다. 잠시 쉴 틈도 없는 그토록 험한 일이 사내에게 주어진 것이다. 우리는 그 일을 맡아 하는 사내를 ‘마부(馬夫)’라고 불렀다.

그날 이후, 마부가 된 사내는 공중에 다리를 허둥거리며 질질 손수레를 끌고 휘파람을 불며 성형부를 지나쳐갔다. 손수레에 실린 객토의 무게 때문에 버둥거리며 바닥을 차는 그의 발길이 성난 말발굽 같았다. 손수레에서 거무죽죽한 객토가 땅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한쪽 쌍꺼풀이 반쯤 내려앉은 눈매를 가진 성형부 최고참인 찌구 조장의 칼바람 나는 호된 질책이 날아갔다. 그럴 때마다 그는 일그러진 거무죽죽한 입으로 ‘히-잉’하며 말 울음소리를 내었다. 마부의 우스꽝스러운 웃음과 행동은 우리를 즐겁게 했다.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장단을 맞추며 힘에 지친 고된 야근을 잊었다. 그러다가도 일이 밀려 제대로 객토가 나오지 않으면 찌구 조장은 ‘이랴, 이랴’ 하며 채찍질 같은 독려를 마부에게 퍼부었다. 마부는 묵묵히 시키는 대로 객토 일을 했다.

연말이 가까워지자 생산량이 폭주했고, 야근은 강행군으로 치달았다. 연일 계속되는 야근 작업에 석고 주물 틀이 물을 먹어 엿가락같이 허물어지고, 우리는 물먹은 주물과의 싸움에 시달렸다. 신참인 나는 번번이 하루에 정한 작업량을 채우지 못했다. 작업량은 최고참 찌구 조장이 정한 것이었다. 조장의 손을 거쳐 간 주물 틀은 하루 생산량 개수가 고정적으로 정해져 있었다. 20여 명의 주물부 부원들은 일 번부터 나를 포함해 이십 번까지 입사일을 기준으로 연공 서열화되어 있어 찌구 조장의 지시와 정해진 물량을 빈틈없이 달성해야 했다.

정해진 서열은 고역이었다. 신참에게는 본체의 부속품인 까다롭기 짝이 없는 소형 주물 틀을 줬고, 상대적으로 물을 적게 먹어 쉽게 작업을 할 수 있는 대형 주물 틀은 고참들의 몫이었다. 소형 주물 틀은 조금만 작업을 해도 석고 틀이 물에 젖어 불량이 나와 정해진 물량을 빼는 일로 몸살을 앓았다. 그러다 보니 야근 작업이 늘수록 작업장 곳곳에서 물에 젖은 주물 틀로 인해 짜증 타들어 가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즈음 마부와 나는 정해진 생산량을 끝마치기 위해 늘 남아 야근을 했다. 몸은 물에 젖은 석고 틀처럼 처져 있었다. 야근 야식 이후 30분 정도 휴식 시간에 토막잠을 잤다. 잠을 자기 위해 상자를 깔고 드러누우면 그때마다 마부는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이야기 대부분은 어린 시절 그가 겪었던 일들이었다.

발자국
발자국

 

내 고향은 끽동이야. 학익동..히히..우리 집 옆으로 개천이 흘렀어.

마부가 태어난 곳은 끽동이라고 부르는 학익동 판자촌이었다. 도살장에서 흘러나오는 핏물이 흥건한 개천을 따라 푸줏간, 양판점, 약국, 구둣방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그 맞은 편은 미군들만 상대하는 사창가를 끼고 있었다. 미군들이 양공주들을 껴안고 이른 새벽부터 길바닥에서 블루스를 추고 한 손으로 양주 나발을 불어 대곤 했다. 앞가슴을 훤히 드러내 놓은 양공주들의 풍만한 가슴과 이따금 뿜어내는 말보로 담배 연기가 골목가를 나른하게 만들었다.

그와 패거리들은 개천에 버려진 미제 콘돔을 불거나 외제 담배꽁초를 부지런히 주워 동네 형들에게 바치고, 창고에 들어가 슬쩍 빼돌린 꽁초를 피었다. 동네 형들은 같은 또래의 여자 친구를 꼬여 창고로 데려가 붉은 창 너머 꿈틀거리던 양공주의 흉내를 강요했다. 아니면 미군들이 먹다 버린 외제 양주 주둥아리를 현기증 나게 빨았다.

패거리들은 싫증이 나면 인근에 있는 기차선로로 달려갔다. 쇠꼬챙이나 못을 주워 달리는 기차 바퀴 밑에 깔아 납작하게 한 후 칼을 만들어 하나씩 바지 주머니에 자랑삼아 품고 다녔다. 해가 서산 너머로 넘어갈 무렵 집에 들어오면 골목 안은 온통 싸움으로 생난리를 쳤다. 미닫이 문짝이 부서지는 소리와 여자들의 앙칼진 소리가 뒤엉킨 골목 안은 아수라장 같았다.

마부가 자란 끽동 이야기는 야근 시간의 토막잠을 빼앗기 일쑤였다. 일찍 객토 일을 끝맺은 날에는 휘파람을 불며 나의 작업대로 와서 주물에서 뽑아낸 팔이며 꽃이며, 모자 등을 가슴에 붙여 보기도 하고 머리 위에 써 보이며 좋아했다. 그것도 성에 안 차면 마부는 바닥에 등을 대고 발버둥 치며, ‘히-잉’ 말 울음을 내었다. 그런 마부의 행동에 나는 힘든 야근 작업을 마치곤 했다.

일을 끝내고 나오면 공단 사거리는 외지고 쓸쓸했다. 마부와 함께 버스가 끊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컴컴한 밤의 그늘을 밟고 걸어야 했다. 눈이 내린 새하얀 길 위에는 피로에 지친 검은 발자국들이 숨을 토해내듯 걸어갔다. 그때마다 마부는 휘파람을 불었다. <메기의 추억>이었다. 떨림이 심한 깊고 짙은 소리였다. 음울하고 괴기 어린 휘파람 소리는 어둠에 잠긴 눈 덮인 공단 사거리 위로 환한 눈송이처럼 자욱하게 날렸다.

지금도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이면 어두운 밤을 향해 마부가 불었던 심금을 울리는 휘파람 소리가 되살아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야근 작업과 거미줄 같은 공단의 사거리에 울려 퍼지던 마부의 휘파람 소리가 떠오를 때면, 조급함과 설익은 열정에 사무쳤던 그때의 일들이 내 마음속에 일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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