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씸한 개구쟁이 고양이가 하늘을 날다
상태바
괘씸한 개구쟁이 고양이가 하늘을 날다
  • 최종규
  • 승인 2011.08.30 05: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림책이 좋다] 바바 노보루, 《11마리 고양이와 돼지》

 네 살 첫째 아이는 세 살 적부터 “11마리 고양이” 그림책을 몹시 좋아했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펼쳐서 읽어 주기도 하지만, 여러 차례 읽어 준 뒤에 혼자서 이 그림책을 넘기곤 합니다. 빛느낌이 좋기 때문일까요. 이 그림책에 나오는 고양이라든지 나무라든지 풀이라든지 바람이라든지 하늘이라든지 집이라든지 쓰레기통이라든지 사진이라든지 꽃이라든지 빠방(자동차)이라든지, 아이가 알 만한 모습을 아기자기하게 그려 넣었기 때문일까요.

 《11마리 고양이와 돼지》(꿈소담이,2006)는 일본에서 1976년에 나왔으니까, 1970년대에 이 그림책을 볼 어린이라면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첫무렵에 태어난 일본 어린이입니다. 생각해 봅니다. 이 그림책을 보고 자란 어린이가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은 다음에, 제 아이한테 이 그림책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이 그림책이 일본에서 처음 태어날 때에 처음 알아보며 즐기던 아이가 더 자라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된 다음, 손자 손녀를 무릎에 앉히고 이 그림책을 읽어 줄 만하겠구나 싶습니다. 자그마치 마흔 살 가까운 그림책이 오늘날에도 퍽 사랑받으니까, 앞으로 스무 해 뒤가 되면 이렇게 될 만하겠구나 싶어요.


.. “우와, 정말 반짝반짝 깨끗해졌다.” “멋진 집으로 변신했어.” “얘들아, 이 집을 우리의 보금자리로 하는 게 어때?” “와! 찬성이야.” ..  (8∼9쪽)


 아직 우리 나라에는 서른 해나 마흔 해를 내리 사랑받는 그림책은 없습니다. 대물림을 하면서 할아버지가 손녀한테 읽힐 그림책은 없습니다. 우리 나라는 창작그림책 발자국이 짧기도 하고, 우리 스스로 일군 그림책을 널리 읽히지 못하기도 해요. 그림결이나 빛느낌이나 줄거리나 이야기나 얼거리에서 일본 그림책이나 서양 그림책만큼 알뜰하거나 알차지 못합니다. 앞으로 스무 해쯤 지난다면 스무 해 앞서부터 사랑받던 그림책이 대물림하면서 사랑받을 만하고, 서른 해쯤 지난다면 열 해 앞서부터 사랑받던 그림책이 대물림하면서 사랑받을 만하겠지요. 마땅한 노릇일 수밖에 없으니, 섣불리 바라기보다는, 좀 어설프거나 이래저래 모자라더라도 예쁘게 받아들이면서 즐겨야 하지 않을까 싶고, 정 아쉬울 때에는 예쁜 그림책으로 빚지 못하더라도 아이하고 그림종이를 펼쳐서 함께 그림을 그리며 놀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꼭 낱권책으로 나온 그림책을 읽혀야 하지는 않으니까요. 아이하고 그림을 함께 그리면서 이야기 살을 붙이고 이야기 실마리를 풀면 되니까요. 아이하고 살아가는 나날을 아이랑 그림종이에 찬찬히 옮기면 되니까요. 아이가 꿈나라에서 꿈날개를 펼칠 수 있게끔 어버이가 슬기로이 이끌면 되니까요.

 더 멋스레 보여야 하는 그림책이 아닙니다. 더 예뻐 보여야 하는 그림책이 아닙니다. 더 훌륭해 보여야 하는 그림책이 아닙니다. 더 뜻있게 보여야 하는 그림책이 아닙니다.

 사랑을 담아 빚는 그림책이고, 사랑을 담아 읽는 그림책이며, 사랑을 담아 대물림하는 그림책이에요. 아이는 어버이하고 그림책을 함께 읽고 즐기면서 사랑을 받아먹습니다. 아이는 그림책을 읽을 때에 앎조각을 받아먹지 않아요. 아이는 혼자 그림책을 펼칠 때에 사랑을 들여다봅니다. 아이는 앎조각을 늘리거나 넓히려고 그림책을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 “여기는 11마리 고양이의 집이에요.” 야옹 야옹 야옹 야옹. “꿀꿀꿀, 멀리서 찾아왔는데 좀 들어가도 되나요?” 야용. 대장 고양이가 양팔을 벌리고 돼지 앞을 가로막습니다. “여기는 11마리 고양이의 집!” … “꿀꿀, 우리 할아버지 댁이 어디지? 확실히 이 근처였는데.” ..  (13∼15쪽)


 “11마리 고양이” 이야기 가운데 다른 그림책은 ‘요 꾀쟁이 고양이들이 괘씸해 보이는(?) 짓’을 일삼아서 살짝 밉다고 느꼈습니다. 다른 그림책을 읽히면서, 음, 참, 개구쟁이 고양이일세 하고 생각했어요. 《11마리 고양이와 돼지》에서도 이 느낌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짐차에 열한 마리가 빼곡하게 탄 채 멀디먼 나들이를 떠나는 고양이가 어느 멧골자락에서 빈 집을 하나 봅니다. 이 고양이들은 빈 집을 말끔하게 치워 저희가 지낼 곳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이 집은 ‘빈 집’이라기보다 ‘할배 돼지가 숨을 거두었기에 비게 된 집’이에요. 임자가 없어 아무나 살아도 되는 집이 아니라, 새 임자를 기다리는 집이에요.

 그러니까, 열한 마리 고양이는 이 집이 ‘누구네 어떤 집’인지부터 알아보아야 했습니다. 벽에 멀쩡히 걸린 사진을 바라보면 ‘할배 돼지 집’인 줄 알 수 있어요. 할배 돼지가 이제 숨을 거두어 이 집이 비었구나 생각하면서 ‘할배 돼지네 아이나 손자가 찾아올 때까지 살짝 머물겠습니다’ 하고 고마워 할 줄 알아야지요. 열한 마리 고양이는 고마워 할 줄 모르고, 고마워 해야겠다고 여기지 않으며, 고마움조차 느끼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할배 돼지 손자가 이 집으로 찾아왔을 때에 매몰차게 내쫓습니다. 나중에 좀 미안하다 느껴 손자 돼지를 이 집으로 불러들이지만, 손자 돼지가 이 집에서 고양이들이 지내니 저는 다른 새 집을 지으려 할 때에 열한 마리 고양이는 일손을 거드는데, 정작 돼지네 새 집을 짓고 나서 ‘새로 지은 집이니까, 이 새 집은 우리 열한 마리 고양이가 차지하겠어!’ 하고 고개를 빳빳이 세웁니다.


.. “꿀꿀꿀, 꿀꿀꿀. 이층에는 베란다도 만들 거야. 조금만 더 힘을 내면 예쁜 새 집이 생긴다.” … 그랬습니다. 11마리 고양이는 돼지네 새 집이 너무너무 훌륭해 그냥 주기 아까웠습니다. 이렇게 하여 돼지는 고양이네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꿀꿀, 그래 괜찮아. 원래 여기가 우리 할아버지 집이었잖아.” ..  (30∼35쪽)


 당돌하지요. 뻔뻔하지요. 건방지지요. 얄궂지요.

 손자 돼지는 열한 마리 고양이한테 골을 내지 않습니다. 거칠거나 막된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맛살을 찌푸리거나 주먹을 휘두르지 않아요. 그저 받아들이고, 그예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러던 어느 날,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칩니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며 새로 지은 집이 흔들거리다가 기둥이 뽑히고 지붕이 날아갑니다. 열한 마리 고양이가 타고 다니던 짐차가 하늘에 붕 뜹니다. 열한 마리 고양이도 하늘로 붕 뜹니다. 할배 돼지가 살던 집은 비바람에 끄덕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할배 돼지가 죽고 빈 집이라 하지만, 집안에 거미줄이 잔뜩 치도록 빈 동안에 숱하게 거센 비바람이 몰아쳤겠지요. 그러나 이 집은 언제나 끄덕없었으니 거미줄은 잔뜩 치고 먼지가 가득 쌓였어도 예쁘게 살아남았을 테지요. 열한 마리 고양이가 ‘겉보기로 멋들어져 보이는 새 집’에 욕심을 품으면서 꾀바른 짓을 일삼았으니, 아주 보기좋게 한 방 먹는 셈입니다.


.. 아아, 고양이들이 하늘로 날아갑니다. 날아갑니다 ..  (43쪽)


 아이는 마지막 대목에서 “날아. 고양이가 날아.” 하고 이야기합니다. 혼자 그림책을 볼 때에도 “고양이가 날아가.” 하고 으레 말하기에 뭐를 말하나 싶었는데, 이 그림책을 펼치면서 마지막 쪽 모습을 말한 셈이었습니다.

 약삭빠르게 굴던 열한 마리 고양이가 비바람에 휩쓸려 하늘로 날아가 버리는 마지막 쪽을 보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립니다. 참 잘된 일이야, 아주 샘통이야, 요 녀석들 매운맛을 보는구나.

 혼자 중얼중얼 하면서 그림책을 덮다가 더 생각합니다. 고양이들은 멀디먼 나들이를 나오던 그대로 비바람에 휩쓸려 ‘멀디먼 새 나들이’를 떠납(?)니다. 이 고양이는 비바람에 휩쓸리며 목숨을 잃지 않습니다. 그저 멀리멀리 날아갑니다. 어디로인지 알 수 없으나, 2층으로 지은 새 집 밑기둥까지 함께 어우러지면서 멀리멀리 날아가요. 큰 물고기를 덮치다가도 하늘 높이 치솟으며 물에 풍덩 빠지곤 했는데, 손자 돼지한테 괘씸한 짓을 잔뜩 저지르더니 톡톡히 값을 치릅니다. 그렇지만, 어찌 보면, 이 고양이들은 이렇게 저희 좋을 대로 마음껏 온누리를 누비면서 장난도 치고 못된 짓도 부리다가 또 어디론가 가면서 새 동무를 사귀거나 새 이야기를 일구겠지요.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면서 새로운 꿈을 키우고 지난날을 가만히 돌아보겠지요. 파란하늘과 하얀구름을 사귀면서 차츰차츰 맑거나 밝은 사랑을 품을 수 있겠지요.

― 11마리 고양이와 돼지 (바바 노보루 글·그림,꿈소담이 펴냄,2006.6.20./75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