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적인 해고의사 표시, 그리고 노동자의 사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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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적인 해고의사 표시, 그리고 노동자의 사직서
  • 허진구
  • 승인 2023.03.16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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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칼럼] 허진구 / 노무사, 민주노총인천본부 부평노동법률상담소

 

해고란 노동자의 의사에 반해 근로관계를 종료시키고자 하는 사용자의 일방적 의사표시다.

일반적으로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해고를 당한 경우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거나 법원에 해고무효확인 소송 내지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등을 제기하여 해고가 부당한지 여부를 다투게 된다. 해고의 정당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노동자에 대한 행위가 해고에 해당하는지 즉 해고의 존부 여부를 먼저 살펴보게 된다. 해고가 아니라면 해고가 정당한지 여부는 따져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실무적으로는 해고의 존부 여부가 문제되는 경우가 많은데, 가령 노동자와 관리자가 말다툼 끝에 감정이 격해져 관리자가 사업장에서 즉시 퇴거를 지시하거나 다음날부터 출근하지 말 것을 요구하면서 노무수령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겠다. 이러한 경우 관리자는 노동자에게 사직서를 제출할 것을 종용한다.

만약 노동자가 사직서 제출을 거부하고 당장 다음날부터 노동자가 출근하지 않는다면, 출근하여 업무에 복귀할 것을 요청한다. 그럼에도 해당 노동자가 출근하지 않고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면 사용자측에선 해당 관리자에게는 노동자를 해고할 인사권한이 없고, 노무수령거부 의사표시는 다툼의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사후에 업무복귀를 독려하였음을 근거로 해고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명시적인 해고의 의사표시나 통보가 없고, 출근을 요청하였다는 이유로 해고가 아니라고 판단한 사례들이 늘어나자, 노동자가 사실상 업무에 복귀하지 못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사용자측은 해고의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위와 같은 방식이 악용되어 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대법원은 위와 유사한 버스운전기사 사례에서 명시적인 의사표시나 해고통보가 없더라도 제반사정 등을 고려하여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한 해고를 인정하고 이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였다.

 

“해고는 명시적 또는 묵시적 의사표시에 의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으므로, 묵시적 의사표사에 의한 해고가 있는지 여부는 사용자의 노무수령 거부 경위와 방법, 노무 수령 거부에 대하여 근로자가 보인 태도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용자가 근로관계를 일방적으로 종료할 확정적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2022두 57695판결]

 

대법원은 ① 관리팀장이 운전기사의 버스키를 반납하라고 지시한 경위, ② 말타툼 이후 관리팀장이 사직서 제출을 여러차례 종용한 과정, ③ 노동자가 출근하지 않아 버스운행 등에 어려움이 발생함에도 노동자에게 어떠한 요청도 하지 않다가 노동자가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한 이후에야 무단결근에 따른 업무독촉 통보를 한 점 등에 비추어 사용자가 묵시적으로 노동자에 대한 해고를 승인하였거나 추인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위 판결은 그간 실무적으로 악용되어온 해고에 대한 사용자들의 대응 방식에 대하여 일정 부분 경종을 울리는 판결로 의미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 사례는 노동자가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은 사례이다. 만약 노동자가 관리자의 요구에 따라 사직서를 제출했다면 결과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노동자가 사직서를 제출하면 해고로 판단되는 경우는 드물다. 사용자측의 명시적인 의사표시가 있더라도 노동자가 일단 사직서를 제출하게되면 해고로 보는 경우가 드물다. 사직서 제출이 노동자의 진의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인정받아야 해고로 볼수 있는데, 실무적으로 이를 인정받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상담을 하다보면 노동자가 원하지 않음에도 사용자측의 압박과 회유에 의해 사직서를 제출하고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는 사례들도 상당수 접하게 된다.

사직서 제출 행위만을 기준으로 할것이 아니라 사직서 제출 경위와 그러한 과정을 고려하여 사용자측의 압박과 회유 때문에 노동자가 원하지 않는 사직서를 제출한 경우라면 이 역시도 노동자 보호를 위해 해고에 해당 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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