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이 풍성할 때만 인심이 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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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간이 풍성할 때만 인심이 나는 건 아니다
  • 안태엽
  • 승인 2023.03.22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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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안태엽 / 자유기고가

사람들은 어려울 때를 생각하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 보험을 들곤 한다. 그러나 보험회사 관계자들은 병에 걸렸거나 걸릴 위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보험 가입을 거절한다. 보험이란 병에 걸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인데 막상 병에 걸리면 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반면에 건강한 사람은 큰 어려움 없이 가입할 수 있다. 그다지 필요 없을 때 가입하기 쉽고, 막상 절실한 때가 오면 받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로 생겨나는 '사람 보험'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언제든 가입이 가능하고, 세상에서 수익이 가장 높은 '상품'이다.

필자는 한때 주방기구 도매업을 하다가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 한동안 내가 종사하는 직종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내일은 조금 나아지겠지, 다음 달과 내 년에는 풀리겠지 하는 기대를 버리지 못하였다. 하지만 세상 흐름은 내 생각보다 더 빠르게 돌아갔다. 나는 잠을 설치며 다른 직종을 알아봐야 했다. 나의 주위 환경과 여건을 고려해 통신업을 선택하고 식솔들과 함께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만만치는 않았다.

통신업을 창업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지사권과 통신 장비대금이 필요했다. 그 당시 투자할 여력을 잃은 나에게는 그것이 큰 부담으로 왔다. 수개월 고민 끝에 알고 지내던 재력가를 만나 사업의 전망과 미래를 이야기했지만 그 역시 미래보다는 당장의 뭔가를 기대했던 것 같았다. 낙심하고 돌아왔지만 아내와 가족에게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집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며 들어가지 못하고 차 안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내가 믿는 신께 호소하듯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다 해보았지만 안 됩니다. 나는 어찌 할까요”라고 조용히 기도하듯 말했다.

얼마 후,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요즘 어려우시 다던데 왜 얘기 안 했어요.” 그는 지사 보증금과 얼마의 장비 대금까지 마련해 주면서 “이 돈은 적은 것이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전부입니다. 한번 해보세요.”라고 말하며 차용증도 안 받고 빌려주었다. 참으로 힘들고 어려울 때 삶에 구세주를 만난 것 같았다. “그분은 나를 어떻게 믿고 돈을 빌려주고 갔을까? 나는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다음날 나는 그에게 “차용증이라도 써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러한 거래를 내가 해 본 적이 없어 마음에 내용을 담아 있는 그대로 써주었다. 시간이 흐른 뒤, 써준 차용증을 보니 ‘내가 빌려주고 그가 빌려 간 것으로’ 거꾸로 되어있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힘들고 어려울 때 지인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보면, 사람 관계의 중요성을 깊숙이 느끼게 된다. 내게 돈을 빌려준 그는 은행 지점장으로 근무하다 구조조정으로 퇴직하여 몇 해를 놀고 있었다. 주변 많은 지인들이 그를 찾아와 재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후로, 개인 사업에 뛰어든 그는 성공하여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타인을 돌아 본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곳간이 풍성할 때 인심이 나는 것도 아니었다. 곳간이 비어있어도 어려움을 당해 본 사람만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심정을 알 수 있고,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 한비자나 묵자는 나약한 인간은 이해득실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라고 말했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은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문제의 해결책도 사람에게 있다. 나는 혹여 살아내기 위해 사람을 하나의 도구로 생각하며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고 살아온 것은 아닌가? 인생길이 밝을 수만은 없다. 어둡기도하고 험하기도 긴 인생길에 홀로 좌절하지 않고 같이 웃고, 울어줄 인연을 만들어 가며 외롭지 않게 긴 여정을 밟아야 한다. 서로 의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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