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 보리수 - 외국인 사제가 지은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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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에 보리수 - 외국인 사제가 지은 성당
  • 김시언
  • 승인 2023.03.2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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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이야기]
(18)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성당 내부
성당 내부

 

어느새 봄이다. 사월을 코앞에 둔 어제, 강화읍에도 슬슬 목련꽃이 피어나기 시작하고 개나리꽃도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바람도 없고 볕도 따스한 날, 어디론가 나가 콧바람이라도 쏘여야 할 것 같았다. 하여 점심께 강화읍으로 슬슬 나가봤다.

강화읍내 한복판에 있는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은 평일인데도 관람객이 꽤 있었다. 봄을 맞이하려는 사람들은 어디서나 부지런하고 활기차다. 강화읍은 한번 발걸음에 들를 곳이 제법 많다.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을 비롯해 천주교 강화성당, 고려궁지, 용흥궁 등등. 그래서인지 용흥궁공원 주변에는 대형버스가 몇 대씩은 세워져 있다. 외지에서 강화로 여행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곧 진달래꽃도 만발할 터이니 그때는 봄을 만끽하는 사람이 더 많겠다.

 

성당 들어가는 입구
성당 들어가는 입구

 

외국인 사제가 한옥 구조로 성당을 짓다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을 들어가는 입구는 몇 군데 있지만, 필자는 대개 용흥궁 옆쪽에 난 사잇길로 들어간다. 천천히 계단을 올라갈 때면 향교나 사원을 올라가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낯설지 않다.

계단을 오르자마자 문 안에 들어서면 본당이 보인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또 다른 문이 바짝 앞에 있는데, 이는 우리 건축물의 대문과 중문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외국인 사제가 성당을 지을 때 우리나라 한옥 구조를 따라서 그대로 지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구조가 나왔다.

두 번째 문을 열면 시야가 탁 트이고, 바로 앞에 한옥으로 지은 2층 건물이 나온다. 성당 본당이다. 왼쪽으로는 강화읍 전경이 들어온다. 넓은 주차장에서 잔디밭으로 바뀐 용흥궁공원이 나오고 크고 작은 건물과 주택이 보인다. 열 시 방향으로 천주교 강화성당과 강화문학관, 강화초등학교가 보인다. 열두시 방향으로는 고려궁지가 있다.

이렇게 강화읍이 다 보이는 걸로 봐서 성공회 강화성당이 높은 지대에 있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다. 반대로, 주변도로를 지나면서 성공회 강화성당을 보면 높은 지대에 지어졌다는 걸 실감한다. 그래서인지 용흥궁공원에서 행사가 열리면 많은 사람이 성공회 강화성당에 올라가 행사를 관람하곤 한다. 강화문학관 앞에서 성당을 바라보면 마치 커다란 배 모양으로 보인다.

성당에서 바라본 강화읍 전경
성당에서 바라본 강화읍 전경

 

본당 앞에는 보리수와 회화나무를 심어

본당 건물 앞에는 종각이 있다. 이는 사찰의 범종각을 연상시키는데, 성공회 사제들이 종교의 토착화에 공을 들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교회 종은 1914년 영국에서 강화성당에 기증했는데 이 종은 1944년에 일제에 징발당했다. 지금 범종각 안에 있는 종은 범종 형태로 1989년 교우들의 봉헌으로 제작됐다고 한다.

성공회 강화성당 교회 종
성공회 강화성당 교회 종

 

강화성당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본당 앞에 보리수나무가 서 있다. 보리수라니. 불교를 상징하는 나무라니. 필자는 오래전에 강화성당에서 보리수나무를 봤을 때는 참 낯설었다. 이 나무는 2016년에 ‘큰나무’로 지정됐고 약 126년 됐다. 나무 높이는 18미터, 나무둘레는 3미터다. 나무 옆에 쓰여진 안내문은 이렇다.

‘1900년 영국선교사 트롤로프 신부가 인도에서 10년생 보리수나무 묘목을 가져와 심었다고 한다. 불교를 상징하는 나무지만 성공회는 각 나라와 지역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는 토착화 신학의 선교정신을 가지고 성당 건물을 한식으로 짓고, 토착불교와 조화를 이루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식재되었다. 2012년 태풍 볼라벤으로 반대쪽에 심어졌던 유교를 상징하는 회화나무가 쓰러져 성당 건물 보호와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굵은 가지 일부를 잘라내 수세는 약해졌으나 여전히 성당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이 글귀대로라면 반대편에 회화나무가 있었다. 회화나무는 태풍에 넘어져 손 십자가로 만들어 공급하고 있다고 한다.

본당이 지어질 때 보리수와 회화나무를 심었다는 점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불교를 상징하는 보리수, 유교의 선비를 상징하는 학자나무인 회화나무가 성당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공회가 들어오면서 이 땅에 먼저 뿌리를 내린 종교들과 잘 섞여보려는 뜻이었다. 보리수나무는 본당 앞으로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성당 앞에 있는 보리수나무
성당 앞에 있는 보리수나무

 

백두산에서 뗏목으로 엮어온 나무를 기둥으로

1900년 11월에 준공한 성공회 강화성당은 사적 제424호로, 강화읍 관청로 22에 있다. 1900년 성공회 영국 교회의 지원으로 한국성공회 제3대 주교 트롤럽이 직접 설계하고 감독했다. 건축양식은 우리 절집이나 향교 건물, 양반집과 비슷하게 지었고, 궁궐의 목수까지 동원돼 지어졌다.

성당 내부는 바실리카식 성당을 잘 소화해 지어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이 아름다운데, 이는 한국 전통 건축양식과 바실리카 양식을 섞어서 지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쓰인 기둥은 백두산에서 뗏목으로 엮어온 나무로 지었다.

성당의 정면부 위쪽 팔작지붕에는 ‘천주성전(天主聖殿)’이라는 현판이 있었다. 제대 뒤 기둥에는 하느님은 ‘만유진원(萬有眞原)’이라고 쓰여 있었다. 기둥에는 주련까지 있어 마치 절집에 와 있는 듯한 착각도 불러일으킨다. 이를 보아 종교의 토착화에 얼마나 신경 썼는지 알 수 있다.

본당을 살펴보다가 작은 나무의자에 살며시 앉아 보았다. 필자는 딱히 종교가 없지만 이곳에 앉아 성전을 바라보니 왠지 마음이 편했다. 그 옛날 120여 년 전에 지어진 성당에 앉아 이 자리에 앉았을 수많은 사람이 떠올랐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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