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 1 · 3 · 10 · 100... 흥국생명이 두고두고 가슴 아파할 숫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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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 1 · 3 · 10 · 100... 흥국생명이 두고두고 가슴 아파할 숫자들
  • 최림 객원기자
  • 승인 2023.04.07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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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정리한 V-리그 여자부 챔피언 결정전]
‘3’의 축복, 저주?... 시리즈 내내 세번째 세트 이긴 팀이 경기 승리
‘중꺽마’ 한국도로공사 우승... 흥국생명, 프로배구 사상 첫 리버스 스윕패

설마가 사람 잡았다. 새드 엔딩이다.   ·

V-리그 역사에 남을 혈전, 프로배구 챔피언 결정전 사상 첫 리버스 스윕, 긴 여운이 남을 짜릿한 승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결말. 미사여구가 가득한 챔피언 결정전 엔딩의 순간 흥국생명은 아쉬운 눈물을 흘려야 했다.

도드람 2022-2023 V리그가 지난 6() 6개월여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긴 시즌의 모든 영광과 축복은 정규리그 3위에서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차지한 한국도로공사의 몫이었다.

챔피언 결정전이 시작되기 전만 하더라도 정규리그 1위 흥국생명이 우승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그러나 홈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도 포스트 시즌에서 미친한국도로공사를 주저앉힐 수는 없었다. 챔피언 결정전에서의 한국도로공사는 그야말로 중꺽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의 줄임말)의 표본이었다.

냉정한 프로 세계에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의 줄임말)는 위로의 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흥국생명 선수들도 모두 알 터. 패자로 남는 것이 씁쓸하겠지만 흥국생명에게 뼈 아플 숫자들로 도드람 2022-2023 V리그 여자부 챔피언 결정전을 정리했다.

 

(사진=한국배구연맹 제공)
지난 시즌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고 있었던 캣벨이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챔피언 결정전 MVP에 올랐다. 인천 팬들로서는 여자농구의 김단비가 겹쳐보이며 아쉬움을 곱씹어야 했다.(사진=한국배구연맹 제공)

0

없었다.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0%가 100%를 이겼다.

역대 16번의 V-리그 여자부 챔피언 결정전이 열린 동안 1,2차전을 진 팀이 3,4,5차전을 이기고 우승 컵을 들어 올린 일은 없었다. 심지어 남자부 기록을 뒤져도 그런 어마어마한 일은 없었다. 뒤집어 얘기하면 1,2차전을 내리 이기고도 우승하지 못한 팀도 없었다. 흥국생명은 결국 불명예스러운 기록의 첫 제물이 됐다. 지난 시즌까지는 1, 2차전을 지면 우승 확률 0%였지만 이번 시즌 리버스 스윕을 이뤄 낸 한국도로공사 덕분에 내년 시즌부터는 5.9%의 확률을 갖게 된다.

 

1

딱 한 번 졌다. 그러나 그 1번이 시즌 최종전이었다는 게 불행하다.

흥국생명이 한국도로공사와 이번 시즌 홈 코트인 인천 삼산 월드체육관에서 만난 건 총 6. 정규리그와 챔피언 결정전 각 3번씩. 앞선 5번을 다 이겼지만 가장 중요한 챔피언 결정 5차전에서 무릎을 꿇었다.

1번은 또 캣벨의 등번호이기도 하다. 우승팀 한국도로공사의 주 공격수다. 이번 챔피언 결정전의 MVP. 그리고 지난 시즌 흥국생명의 주포이기도 했다. 캣벨 대신 영입한 옐레나가 선전했지만, MVP 시상식에서 댄스 세레모니하는 캣벨을 바라보는 흥국생명 팬들은 씁쓸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나 인천 스포츠 팬들은 여자 프로 농구 김단비가 오버랩되며 입맛이 더욱 개운치 않았다. 김단비는 지난 시즌 인천 신한은행 주 공격수였다가 올 시즌 우리은행으로 옮겨 우승과 함께 통합 MVP를 차지했다.

 

(사진=한국배구연맹 제공)
우승이라는 결과물이 있었다면 이 사진은 더욱 결연해 보였을까? 불끈 쥔 오른 주먹과 얼굴 표정에서 김연경의 우승에 대한 강한 의지가 엿보이지만 패배의 결과 때문에 고군분투하는 모습으로 비쳐 애처롭기까지 하다.(사진=한국배구연맹 제공)

3

배구는 3이라는 숫자의 의미가 크다. 터치 아웃, 블로킹 등 다른 득점 수단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3번 이내(한 사람의 연속 터치는 반칙)의 터치로 상대 코트에 공을 떨어뜨려 득점하는 게 가장 일반적인 공식이다. 5세트 중 먼저 3세트를 이긴 팀이 승리하는 종목이다.

배구에서 이렇듯 중요한 숫자 3이 이번 챔피언 결정전을 아예 지배했다. 물론 흥국생명은 악몽 같은 ‘3’ 때문에 준우승에 머물게 됐다.

우선 결과적으로 시리즈 전체의 향방을 갈랐다고 볼 수 있는 챔피언 결정전 3차전 3세트. 세트 스코어 11, 20:15로 앞서며 3세트를 쉽게 세트를 가져올 것으로 보였다. 3세트를 따내면 1, 2차전을 내준 한국도로공사는 시리즈 전체 패배가 눈앞에 아른거렸을 터. 그러나 여기서 흥국생명은 2점을 따내면서 어이없게도 상대에게는 10점을 내줬다. 22:253세트를 충격적으로 내줬다. 3세트에 이어 4세트마저 지면서 상대에게 추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3세트의 저주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챔피언 결정전 4차전까지 22, 세트 스코어 11로 맞선 5차전 3세트. 이번에는 더 참혹했다. 23:19로 리드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언가에 홀린 듯했다. 잇따른 범실과 상대 공격 성공으로 한점도 못 따고 내리 6점을 헌납하며 23:25로 뒤집혔다.

시리즈 내내 세 번째 세트를 이긴 팀이 승리한 징크스를 떠올리지 않아도 이는 치명적인 결과였다. 권투로 치자면 흥국생명은 3차전 3세트에서 크게 휘청했고, 5차전 3세트에서 스스로’ KO 당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시즌 중 초유의 감독, 단장 동반 경질과 그로 인한 감대대시절에도 한 번도 없었던 3연패를 당한 시점도 아쉽다. 이번 시즌 41경기(정규리그 36경기, 챔피언 결정전 5경기)를 치르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록한 3연패가 하필 챔피언 결정 3,4,5차전이기에 더 뼈 아프다.

 

10

연경신, 배구 여제, 갓연경 등 배구와 관련된 최고의 수식어를 동원해도 모자랄 김연경의 등번호. 챔피언 결정전 5경기 동안 120(26-18-22-24-30)을 올렸지만,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능력은 여전했다. 때로는 과장된 몸놀림, 때로는 미간을 좁히며 인상을 써가며 리더로써 동료들의 투지를 북돋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안쓰러울 정도였다. 완성형 선수로서 공격뿐 아니라 수비에서도 투혼을 불살랐지만, 우승컵은 들 수 없었다. 5차전 5세트 한국도로공사의 15점째 마지막 포인트로 패배가 확정된 순간 주저앉아 코트에 얼굴을 향한 채 있던 모습에서 팬들도 함께 고개 숙일 수밖에 없었다.

FA로써 이적과 은퇴 등 팀을 떠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에 ‘10번 김연경이 건재할 때 통합 우승을 하지 못한 것도 쓰리다. 참고로 챔피언 결정전 5차전 동안 옐레나가 135점으로 최고 득점을 기록했고, 한국도로공사의 캣벨은 112, 박정아는 87점을 득점했다.

 

(사진=한국배구연맹 제공)
이렇게 웃으며 경기를 끝낼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챔피언 결정전 마지막 경기에서 득점을 올리고 기뻐하는 흥국생명 선수들(사진=한국배구연맹 제공)

100

기대가 클 때 그 기대는 책임감으로 혹은 부담감으로 바뀌기도 한다. 챔피언 결정전을 앞두고 전문가 대부분은 흥국생명의 우승을 점쳤다. 그 예상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흥국생명은 1, 2차전(6세트 득, 1세트 실)을 비교적 쉽게 이겼다. 그래서 100%의 우승 확률을 확보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100%의 확률은 책임감 또는 자신감이 아니라 부담감이 된 듯하다. 챔피언 결정전 3차전 3세트 막판부터 이기고 있어도 왠지 뭔가에 쫓기듯 조급하고, 주저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입으로는 아무리 파이팅을 외치고, 분위기 전환을 위해 득점 뒤 큰 세리모니를 해도 중요한 순간이 되면 경직된 모습이 드러났다. 플레이오프 2경기를 더 치러서 챔피언결정전 5차전으로 이번 시즌 43번째 경기를 하는 한국도로공사 선수들보다 체력적으로도 우위에 서지 못하는 듯 보였다. 5차전 5세트 들어 몸놀림이 특히 더 비교됐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즐기며 달려드는 한국도로공사 선수들에 비해 부담감에 근육이 경직되고 그러다 보니 더 체력이 바닥난 듯 보였다. 이제 다음 시즌부터 챔피언 결정전 1, 2차전 승자의 우승 확률은 94%가 됐다. 6%의 확률을 까먹은 게 흥국생명이라는 게 씁쓸하다.

 

그 밖의 숫자들

흥국생명에 아쉬운 숫자라기보다는 의미 있는 숫자를 살펴보면 우선 158(2시간 38). 흥국생명과 한국도로공사의 챔피언 결정전 5차전의 소요 시간이다. 이는 V-리그 여자부 포스트 시즌 최장 경기 시간 기록이다. 양 팀이 얼마나 혈투를 벌였는지 말해주는 숫자다. 5세트까지 매 세트 2점 차로 승부가 갈린 접전이었다.

또 하나의 뜻깊은 숫자는 3.4. 이 숫자는 챔피언 결정 5차전 시청률. 명승부였던 5차전에 대한 지표 중 하나로 3.4%는 역대 최고 시청률(닐슨코리아 집계, 케이블 가구 기준)이다. 이전 최고 시청률은 지난 2018-2019 시즌 한국도로공사와 흥국생명의 챔피언결정전에서 기록한 2.67%였다.

26,447도 기분좋은 숫자다. 이는 챔피언 결정전 5경기의 총 관중 수를 나타낸다.

1위 팀 흥국생명의 홈 코트인 인천 삼산체육관에서는 1, 2, 5차전 세 경기 동안 총 17,697(5,464-6,108-6,125)의 구름 관중이 몰렸다. 3, 4차전(4,375)이 열린 김천 실내체육관에는 총 8,750명의 관중이 직관했다. 명승부만큼 챔피언 결정전 1경기당 평균 5,289명의 역대급으로 많은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지난 6일(목) 인천 삼산 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2-2023 V-리그 여자부 챔피언 결정전 5차전에서 흥국생명은 한국도로공사에 풀세트 접전 끝에 2대3(25:23, 23:25, 23:25, 25:23, 13:15)으로 패했다. 이로써 흥국생명은 챔피언 결정전 최종 다섯 경기에서 한국도로공사에 2대3으로 밀려 우승을 내준 채 시즌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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