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고려산에 진달래꽃이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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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고려산에 진달래꽃이 피었습니다
  • 김시언
  • 승인 2023.04.11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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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이야기]
(19) 4년 만에 다시 열린 고려산 진달래꽃 죽제

□ 1980년 고려산 큰불 이후 군락 형성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단됐던 강화 고려산 진달래꽃 축제가 4년 만에 다시 열렸다. ‘어서오시겨, 고려산진달래 꽃구경’이라는 제목으로, 예년보다 일찍 찾아 온 더위로 일주일 정도 빨리 열렸다. ‘꽃구경’이 시작된 4월 8일에 고려산 주변은 꽃구경하러 온 인파가 넘쳐났고, 고려산 자락 아래 연꽃마을에 사는 필자는 꽃 구경하러 온 사람들을 실컷 구경했다. 배낭을 메고 오가는 사람들, 대형버스를 전세 내 꽃구경을 온 사람들이 화사했다. 사람들은 꽃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꽃 구경을 많이 다니는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나도 올해는 꼭 진달래꽃을 봐야지 마음먹었다. 고려산 산줄기로 둘러싸인 연꽃마을에 터를 잡고 산 지 6년째 접어들었는데 이 계절에는 고려산을 오르지 못했다. 무엇보다 천성이 게을러서였고, 또 하나는 고려산 자락에 살아서였다. 언제든지 갈 수 있으니까, 잠깐 짬을 내면 갈 수 있으니까 이러면서 여섯 해가 흘렀다.

고려산은 언제부터 진달래꽃이 만발하게 피었을까.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1980년 고려산에 큰불이 나고서였다. 그 사연은 필자가 이사오던 해에,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이장님한테 들었다.

“내가 고등학교 졸업할 즈음에 고려산에 불이 크게 났어요. 적석사 쪽에서부터 불이 번졌는데 엄청 크게 났죠. 그때 고려산에 소나무가 많았는데 큰불로 다 탔어요. 진달래가 원래 잘 자라니까 몇십 년 동안 자라 지금처럼 군락을 이룬 겁니다.”

이장님 말대로 진달래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나뭇가지가 많이 퍼지고 뿌리를 얕게 내리는 진달래가 무럭무럭 자라 고려산을 아름답게 가꾼 것이다.

고려산은 436m 높이로 산줄기가 길쭉하고 폭이 넓다. 내가면, 송해면, 하점면, 강화읍에 걸쳐 골고루 넓게 퍼져 있다. 그 품 넓은 산자락을 품고 터를 잡은 사람이 참 많다.

 

□ 고려가 천도하면서 고려산으로 이름지어

고구려 장수왕 4년에 인도에서 온 승려가 절터를 찾으려고 고려산을 찾았다. 그는 고려산 정상에 핀 다섯 가지 색깔 연꽃을 날려 꽃이 떨어진 곳에 절을 세운 것이다. 하얀 연꽃이 떨어진 자리에 백련사, 청색 꽃이 떨어진 자리에 청련사, 붉은 연꽃이 떨어진 자리에 적련사, 황색 꽃이 떨어진 자리에 황련사, 검정색 꽃이 떨어진 자리에 흑련사를 지었다. 적련사는 붉을 적(赤)자를 써서 불이 자주 나나 싶어 쌓을 적(積)으로 절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지금은 고려산에는 백련사, 청련사, 적석사가 있다. 한때는 이곳에 다섯 개 연못이 있어 이 연못을 오련지, 고려산을 오련산이라 부르기도 했다. 고려가 강화도로 천도하면서 고려산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지금도 고려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고려산이 진달래꽃으로 이름나 있지만, 사실 고려산은 사시사철 언제나 좋은 곳이다. 낙조대에 오르면 서쪽바다나 석모도나 교동도 산 너머로 저무는 해를 바라볼 수 있는데, 그 광경이 하도 좋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고려산 낙조대는 ‘강화8경’ 중 하나다. 또 고려산은 연개소문에 관한 전설이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연개소문이 고려산 자락에서 태어나 말을 타고 무예를 닦았다고 전해지며 오련지에서 말에 물을 먹였다고도 한다.

 

□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꽃, 진달래꽃

우리나라 사람은 오래전부터 진달래꽃을 참 좋아했다. 봄을 알리는 꽃으로 개나리꽃과 진달래꽃을 꼽는다. 봄 햇살이 화사하게 핀 곳에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어 있으면 마음이 부드럽고 포근해진다. 강화는 남쪽지방보다 상대적으로 춥기 때문에 꽃 소식도 늦다. 필자가 사는 고려산 자락은 며칠 전부터 본격적으로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기 시작했다.

진달래꽃을 보면 어김없이 김소월 시인(1902~1934)이 쓴 ‘진달래꽃’이 떠오른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진달래꽃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고향을 생각나게 한다. 특히 사는 곳이 아파트나 건물이 많은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진달래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릴 때 살던 시골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진달래는 생명력이 강해 척박한 산에서도 잘 자라고 쉽게 번진다. 개나리가 양지바른 곳에 많다면, 진달래는 약간 그늘지고 습기 있는 곳에서 잘 자란다. 추위에도 잘 견딘다.

고려산에 진달래가 많이 자라게 된 건 산불 때문이었다고 한다. 산불 난 고려산 정산 부근에 생명력이 강한 진달래를 심어서 오늘날 진달래 물결을 이루게 됐다. 산불이 났던 것도 민둥산이 됐던 것도 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만, 가지가 많이 달리고 뿌리를 얕게 내리는 진달래가 잘 자라 산을 아름답게 이룬 건 그나마 다행이다.

고려산을 오르는 코스는 크게 다섯 군데다. 앞서 말한 백련사 청련사 적석사 절집에서 올라가는 코스가 있고, 고비고개와 미꾸지고개에서 오르는 고개에서 출발하는 코스가 있다.

주말 내내 혼잡을 이루던 고려산 자락은 월요일인 어제도 사람이 많았다. 필자는 출렁다리 쪽인 고비고개 정상에서 올라가려다 포기하고 홍릉 학생야영장 쪽으로 산을 올랐다. 내가면과 강화읍 경계인 출렁다리 쪽은 주차장은 물론이고 길가까지 차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홍릉 학생야영장 쪽으로 오르는 건 처음이었지만 산을 오르는 사람이 없어 고즈넉했다.

홍릉(고려 23대 왕 고종의 능)을 지나자마자 생각지 못한 길이 나왔다. 이런, 경사가 급한 나무계단이 끝없이 나오다니. 그래서 이 길로 오르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나무계단을 힘겹게 오르니 살짝 평지가 나왔다. 여러 곳에서 오른 사람들이 잠시 쉬고 있었다. 그곳은 백련사, 청련사, 출렁다리 쪽에서 온 사람들이 만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800미터가량 더 가면 고려산 정상이 나온다는 이정표가 보였다.

 

□ 고려산 정상에 오르니

그곳에서 오분가량 걸어 완만한 고개를 넘었다. 그곳에 진달래꽃군락지가 펼쳐져 있었다. 오르는 길의 고단함을 잊게 하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세상에나. 내가 사는 마을 너머 산 능선에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이 있었구나, 감탄이 절로 나왔다. 사람들은 제각각 자세를 취하고 사진에 그 모습을 담았다. 고려산 정상에서 필자의 집도 아주 작게 보였다. 산에서 바라보는 집이 왠지 더 정겹게 다가왔다. 산 너머에 이런 멋진 풍광이 늘 있었구나.

별립산이 왼쪽으로 보였다. 교동섬과 석모도, 망월평야, 강 건너 북한 땅도 보였다. 섬과 육지 사이로 흐르는 너른 강과 바다도 한눈에 들어왔다. 고려산 정상에 오르니 이토록 보이는 게 많다니.

진달래꽃구경을 다녀온 다음날인 오늘, 갑자기 날이 쌀쌀해졌다. 바람이 거세고 빗방울이 떨어지고 고려산은 물안개로 휩싸였다. 어제 다녀오길 잘했다 싶지만, 날이 맑아지면 또다시 다녀와야겠다. 진달래 꽃구경도 좋고, 곧 피어날 철쭉 꽃구경도 이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고려산 능선을 걸으면서 볼 수 있는 풍광이 자꾸 생각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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