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이음1977 선종락 매니저
인천도시공사 ‘근대건축 재생사업’ 거점1호 시민문화공간으로 개관
공간 역사성·건축 철학 담은 전문해설 진행
시민 참여 프로그램도 다채롭게 운영
예보되긴 했으나 바람을 동반한 봄비로 순식간에 벚꽃이 지고 말았다. 벚꽃 명소중 한곳인 인천자유공원 자락에 앉은 근대건축 자산 ‘이음1977’을 찾은 날에도 연분홍 꽃비가 날리고 있었다.
‘이음1977은’ 인천도시공사가 개항장에서 ‘근대건축문화자산 재생사업’의 거점1호로 지난해 6월14일 문을 연 문화공간이다.
한국 현대건축의 최고봉 김수근 건축가의 설계에 기초한 건축물이라는 유명세답게 입구부터 난 돌계단을 따라 올라서면 반듯한 정원을 마주하고 있는 건물에서 세련미가 물씬 느껴진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방문객을 맞는 이는 선종락 이음1977 매니저다. 지난해 이곳을 개방한 그날부터 줄곧 공간지기로 살고 있다.
“이음1977을 찾는 이들을 위해 공간이 지닌 역사성부터 건축물에 담긴 철학,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 이야기를 엮어 해설을 하고 있습니다. 한번 오신 분이 다시 방문을 하기도 해서 해설방식을 몇가지 만들어 놓았습니다. 당연히 준비를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죠. 지금도 공부는 계속하고 있습니다.”
인천 근대건축물에 대한 역사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그전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그 일은 어느날 갑자기 찾아왔다고 말한다. 그 계기를 묻자 이곳 장소와 건축물 역사부터 풀어가기 시작한다.
요약하면 내용은 이렇다. 개항기 독일상사 세창양행이 자유공원에 터를 잡고 영업을 할 당시 간부 헨켈의 사택이 들어서있던 곳이다. 2차세계대전에 패망하면서 미망인이 된 헨켈의 아내가 집을 이경성 선생의 장모 김부영 여사에게 매매했다. 이후 이곳은 이경성 선생이 가족과 살면서 서재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 다음 소유자는 이기상 영진공사 회장이다. 1970년 김부영 여사에게 터를 매입, 당시 김수근 건축가의 종로 사옥 ‘공간’에 반해 건축을 요청한다.
이듬해 김수근 건축가는 1차 설계를 완성했다. 이 설계를 기반으로 6년이 지난 1977년 드디어 준공된다.
“1차 설계후 준공까지 몇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건축을 시작하려 하자 세계적으로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정부는 개인주택의 경우 40평이상은 건축허가를 내주지않는 규제법령을 발표합니다. 규모를 줄이는 설계수정이 필요해진 거죠. 김수근 건축가를 잇는 김원석 건축가가 도면 수정작업에 나서 몇 년후 완공을 하게됩니다.” 선 매니저가 해설사답게 이야기를 술술 풀어간다.
지난 2018년 인천도시공사는 인천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원도심에 문화재생 발판을 마련한다는 취지로 역사와 건축적 가치를 지닌 건축물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근대건축문화자산 재생사업을 시작한다.
그 첫 사업으로 2020년 이곳을 매입, 참여소통파이럿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주민과 민간 전문가들에게 활용벙안에 대한 의견을 모은 뒤 리모델링, 시민에게 개방하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갔다.
개관을 앞두고 공사는 공간을 운영할 위탁업체를 공모했다. 결과 선정된 곳이 ‘아트커뮤니티 아비투스’로 바로 선 매니저가 연결돼 있는 문화예술전문업체다.
“장구보 아트커뮤니티 아비투스 대표가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함께 해보자는 제안을 해왔습니다. 무용 전공자로 무대예술 활동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건축사사무소에서 근무했던 경력이 있다보니 건축에 대해 관심이 많았죠. 무엇보다 도시재생이 매력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공모 사업계획서를 준비하면서 개항장 공간이 새롭게 다가왔다고 말한다. “지역 주민들과 상인들을 만나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나만의 커뮤니티를 만들기 시작한 거죠.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 순간 인천인이 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씨줄과 날줄을 엮듯 건축물에 얽힌 시공간적 사실들을 맞춰갔다. 관련 자료를 열심히 찾아 숙지했다. 공간 매니저의 역할이 차츰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곳을 경비하고 청소하는 역할에 머무를 것인가,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는 존재가 될 것인가. 그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습니다.”
개관을 준비하고 있을 때 방문했던 모녀에 대한 기억을 꺼낸다. “방문객을 어떻게 맞아야하나 한참 고민이 됐습니다만, 집들이하듯 맞이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과일과 커피를 대접하면서 건축과 공간 이야기를 나눴는데 모녀가 아주 행복해보였습니다. 이곳을 찾은 이들이 모녀 모습처럼 화사한 느낌을 받고 돌아갈 수 있게 하자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해설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3가지 버전으로 준비했다. 공연장에서 도슨트 역할을 연기하듯 하는 것이 하나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추억 나눔 방식으로 해설하는 것이 또 하나다. 마지막 하나는 전문적인 공간건축에 대한 지식을 나누는 해설과 강연이다.
“스스로 두려움 때문에 더 열심히 준비했던 것 같습니다, 진행을 하면서 그 두려움이 긍정과 희망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루에 두차례, 오전 11시, 오후 3시로 시간을 고정했다. 웹사이트(ieum1977.ih.co.kr)를 통해 사전 신청을 받아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진행한다. “개관 초기에는 하루 10명 정도 찾아왔는데 금방 50명으로 늘었습니다. 요즘에도 수십명씩 방문객을 받습니다.”
시민 문화공간인만큼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운영했다. 잔디마당에서 ‘차와 함께하는 잔디요가’라든가, 옥상 클래식 연주회 ‘클래식이 있는 정오의 데이트’, 지역 상인과 주민이 삶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릴레이 네트워크 ‘톡톡한 세상’을 열었다. 또 전문건축가를 초청한 건축 인문학수업 ‘건축학교’, 청년작가를 지원하는 전시회 ‘방방곳곳 1977’, 주민에게 요리를 대접하고 생활강좌를 함께하는 소모임 ‘삼삼오오 밥상회’를 이어갔다.
“‘삼삼오오 밥상회’ 경우는 개강 소식을 올린 후 3일만에 만석이 됐어요. 나머지 프로그램도 기대이상 주민들의 호응이 컸습니다.”
6개 프로그램은 올해도 마찬가지로 간다. 내용을 더해 지난 2월부터 시작했다. 프로그램 기획은 물론 장구보 대표가 맡고 있다고 강조한다.
10개월을 쉬임없이 달려온 소감을 묻자 선 매니저는 “감사하는 마음이 제일 많다”고 말한다. “앞으로 가야할 제 모습에 설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응원하고 지지해주세요.”
이음1977이 시민들에게 어떤 공간이기를 원하는 지 다시 묻자 답은 이렇다. “근심 걱정을 털어놓는 공간으로 테마를 잡았습니다. 그 이유는 구워서 만든 회색전돌로 지어진 이곳 건축물이 마치 도자기로 쌓아서 만든 장소 같았습니다. 그 안에 있으면 나쁜 기운을 다 막아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방문하시는 모든 분들이 이곳에 머물면서 좋은 기운을 얻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