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영국의 '일터안정법'을 인용하는 대한민국, 진정성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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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영국의 '일터안정법'을 인용하는 대한민국, 진정성이 없다.
  • 김은복
  • 승인 2023.04.13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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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칼럼]
김은복 / 노무사, 민주노총인천본부노동법률상담소

 

2021년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공표되고 1년 뒤 시행을 앞 둔 시점, 경총은 ‘영국의 산재예방 행정운영 체계 실태조사 결과 및 시사점’이라는 보도자료를 배포(2021년6월)한다. 그 주요 내용은 기업 자율의 책임 관리를 통한 안전보건 촉진이다. 그 외 안전보건 행정인력의 전문성과 거버넌스 강화를 다룬다. 그러면서 현재 한국의 안전보건 규제방식이 획일적·경직적이어서 현장 적응성이 떨어지고 효과가 미흡하다고 비난한다.

2022년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그해 11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한다. 핵심은 ‘위험성평가 중심의 자기규율 예방체계 확립’이고 그 외 취약분야 집중 지원·관리, 참여와 협력 그리고 거버넌스 정비이다. 그러면서 14대 핵심과제를 밝히는 바, 산재예방을 위한 자기규율 체계 확립을 위해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처벌법 같은 관련 법령을 정비하고 원·하청 간 책임관계를 명확하게 정비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규제·처벌 위주의 행정으로 인해 기업 자체적인 개선 시스템이 빈약해지고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에도 처벌 회피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진단한다. 아니, 그렇게 화답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리고 2023년 2월, 대한상공회의소는 300여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의 효과가 작다며 정부에 입법보완을 요구한다. 그들이 요구한 사항은 안전보건 확보의무 구체화(이건 경영책임자가 지켜야 할 사항을 줄여달란 얘기라고 본다.), 원청의 의무 구체화(이건 원청이 지켜야 할 사항을 줄여달란 얘기라고 본다.), 노동자 준수의무 부과(중대재해 발생 시 노동자도 처벌하란 얘기다. 사회적 비난의 무게를 기업에게만 싣지 말고 노동계에도 분산시키라는 얘기다.) 그리고 면책규정 신설(경영책임자에 대한 면책규정이 도입되면 중대재해처벌법 이전의 대한민국과 무엇이 달라지랴!)이다.

한편 이들은 1972년 영국의 로벤스보고서를 인용한다. 로벤스보고서는 1970년 영국에 독립위원회로 설립된 일터안전보건위원회 위원장 로벤스의 이름을 딴 별칭이다. 이는 1974년 영국의 일터 안전보건법 제정과 보건안전청 설립의 근거가 됐다. 로벤스위원회는 3년 간 독립적인 활동을 거쳐 위 보고서를 냈는데, 결론적으로 처벌 위주의 규제보다는 자기규율예방체계가 더 효과적이라는 제안을 했고 그 결과 영국의 사망사고는 획기적으로 줄었다고 한다. 1974년 당시 영국 사고사망 만인율이 0.34에서 2018년에는 0.08로 줄었는데, 2022년 현재 한국의 사고사망 만인율은 0.43인 점을 참고하시라(한국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플러스 2023년 4월호. ‘자기규율 예방체계의 역사에서 얻은 교훈’ 참조).

우선 로벤스보고서를 한국에 전파하고자 노력했던 분들의 진정성을 폄훼하거나 이 보고서가 갖는 의미와 역사적 가치를 평가절하하려는 뜻이 아님을 밝힌다. 나아가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의 실무 관료들의 진정성도 크게 의심하지 않는다. 중소영세 사업장까지 위험성평가를 뿌리내리고 아래로부터 중대재해가 예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어찌 진심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 정권이 추진하는 방향을 믿을 수 없다. 노동시간이 짧은 나라에 보편화된 유연근무제를 세계 최장 노동시간 대한민국에 확장시키려 하고, 주 60시간 이상 몰아쳐 과로하는 걸 합리적이라 외치는 이 정권의 진정성을 믿을 수 없다. 화물노동자의 안전운임제를 폐지시켰고, 건설노조의 안전보건 활동을 폭력집단에 견주어 비난하는 이 정권을 믿을 수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정착되기도 전에 종이호랑이로 전락시키려 군불을 지피고, 내년 1월까지 적용이 유예된 50인 미만 사업장(전체 사업장의 98% 이상 차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더 유예시키려는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이 정권에 과연 진정성이 있겠는가? “한국적 로벤스의 길을 열어 가야 한다는 책임감”(산업안전보건 관련 법제 및 행정조직 선진화를 위한 로벤스 보고서 : 번역 및 해제, 2022.10. ‘발간에 부쳐’에서 인용)이 있을 리 만무하다.

나아가 1974년부터 이어져 온 영국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2023년의 한국에서 진정성 있게 실천할 의지를 찾아보기 어렵다. 로벤스위원회는 3년의 집요한 조사와 연구 활동 끝에 보고서를 냈다. 이후 영국은 파편화되어 있던 안전 관련법들을 1974년 일터안전보건법 체계로 개편했고 보건안전청을 설립했다. 그 보건안전청의 활약은 영국이 세계적인 안전보건 선진국으로 인식되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2023년의 한국은 어떠한가? 지난 정부의 산재사망 감축 5개년 계획은 사라졌다.

윤석열 정권은 출범 5개월 만에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어떻게, 왜 바뀌었는지에 관한 아무런 비교 설명이 없다. 로벤스위원회가 독립적으로 3년간 집요하게 했던 작업, 즉 안전보건 관련 법체계, 보상체계, 거버넌스 체계 그리고 인프라와 관련 시장에 관한 조사, 연구 등등이 단지 5개월 만에 총망라 됐단 말인가? 또 2023년 출범시키겠다던 산업안전보건청은 어디로 실종됐는가? 폐기된 것인가? 왜 아무런 소식이 없는가 말이다.

윤석열 정권은 현장에 위험성평가가 자리 잡도록 관련 고시 개정을 예고했다. 상시적으로 쉬운 평가기법을 활용할 수 있도록 말이다. 어려운 정기평가가 쉬운 상시평가가 된다는 것이다. 자! 이 위험성평가, 솔직히 믿을 만한가? 뻔히 형식적, 요식적 자기관리가 예상되지 않는가? 위험성평가 실행률이 60%대에 머문다는 통계 외에 위험성평가가 현장에서 어떻게 실행되고 있는지, 문제점은 없는지 제대로 실태조사는 해 보았는가? 그러면서 위험성평가를 중심으로 규제·제재 방식을 개편하겠다고 밝힌다. 이건 소위 약속대련,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닌가? 제대로 된 조사, 연구도 없이 요식적 자기관리를 근거로 규제와 처벌부터 완화하겠단 말인가? 이런 방식으로 재계의 요구에 화답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끝으로 2007년의 영국을 돌아본다. 1974년의 영국은 안전보건에 관한 규제요소와 자율적 요소 사이의 균형이 결여된 점을 주목했다. 그렇게 태어난 것이 자기규율예방체계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영국은 2007년에 기업과실치사법을 제정했다. 우리나라에 기업살인법으로 소개되어 중대재해처벌법의 모태로 인식되는 바로 그 법이다. 이에 2007년 영국에서 기업과실치사법이 제정된 의미는 이렇게 해석된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은 진정한 범죄로 간주되지 않고 상대적으로 낮은 벌금으로 기업들이 압력으로 느끼지 않을 수 있다. (영국의) 산업안전보건법의 위반은 무제한의 벌금을 부과하는 형벌조항이 있으나(한국은 그렇지 않다.) 이것은 형사상의 범죄라기보다는 (중간 생략) 기술적인 위반으로 간주된다. (중간 생략) 기업과실치사법 상의 유죄인정은 막대한 벌금뿐만 아니라 회사의 평판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사업장에서 사망을 야기하는 것은 규제적 위반이 아니라 진정한 범죄이다.” (영국의 2007년 기업과실치사법과 그 시사점. 심재진. 2013)

그리고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 상 첫 기소사건은 샘플을 채취하던 지질학자의 사망 사고였고, 기소의 주된 이유는 “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는 감독되지 못함”이었다고 한다. 자! 안전보건 선진국을 따라가자며 준비 안 된 자기규율 타령에 사업주 처벌부터 줄이고 노동자 처벌을 하자는 작금의 윤 정권의 정책 방향과 비교해 보시라. 이 개탄스러움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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