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진이 아름다운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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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진이 아름다운 까닭
  • 최종규
  • 승인 2011.09.05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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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아우구스트 잔더, 《in focus AUGUST SANDER》

 -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 《in focus AUGUST SANDER》(The J.Paul Getty Museum,2000)

 타셴(Taschen)에서 1999년에 내놓은 《August Sander》를 2006년 7월에 처음 만났습니다. 서울 연남동 골목 안쪽에 자리한 책쉼터에 예쁘게 꽂힌 이 책을 이곳을 찾아갈 때마다 들추곤 했습니다. 빌려서는 읽을 수 없고, 이곳에 찾아올 때에만 읽을 수 있습니다. 이제 이곳은 문을 닫았으니 더 찾아 읽을 수 없습니다만, 도서관이나 책쉼터가 왜 있어야 하는가를 새삼 깨닫도록 해 주었습니다.

 2010년 11월, 서울 홍익대 앞에 자리한 책방 〈온고당〉에서 또다른 《August Sander》를 만납니다. 이번에는 포토 포쉐(PHOTO POCHE)에서 1995년에 낸 판입니다. 이곳에서는 구경만 할 수 있기도 하지만 살 수도 있습니다. 기꺼이 장만합니다. 석 달이 지난 2011년 2월, 설마 싶어 누리책방을 뒤적여 봅니다. 사진쟁이 아우구스트 잔더 님 사진책 몇 가지를 집에서 받아볼 수 있습니다. 마땅한 소리이지만, 돈만 있으면 5만 원짜리이든 8만 원짜리이든 마음껏 살 수 있습니다. 내 살림돈은 그리 넉넉하지 않기에 2만 원짜리 작은 사진책을 하나 사기로 합니다. 보름쯤 기다린 끝에 책을 받아듭니다. 2000년에 나온 《in focus AUGUST SANDER》(The J.Paul Getty Museum,2000)를 손에 쥐면서 생각합니다.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아우구스트 잔더 님 사진책이 한글판으로 나오기를 바랄 수 없고, 바라기 힘들며, 바란다는 일은 부질없으니, 책을 살 돈을 조금씩 그러모아 이렇게 하나씩 나라밖 책을 사야겠구나.

 내 누리책방 ‘보관함’에는 어느덧 백서른 권이 넘는 나라밖 사진책이 담깁니다. 권마다 줄잡아 사오만 원쯤 되니, 백서른 권만 하더라도 책값으로 오백만 원이 넘습니다. 언제쯤 이 사진책을 다 장만할 수 있겠는가 꿈을 꿉니다. 어쩌면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나 서른 해가 지난 뒤까지 보관함에서 잠을 자다가 그만 판이 끊어져 더는 살 수 없는 책이 있겠지요. 책으로는 만지거나 들추지 못한 채 그저 책이름만 읊으며 그칠 사진책이 퍽 많겠지요. 나는 내 깜냥껏 푼푼이 그러모은 돈으로 겨우겨우 사들인 사진책을 갈무리해서 자그마한 ‘개인 도서관’을 하나 열었지만, 내 적은 살림돈으로는 장만하기 어려운 수많은 사진책이 가득 꽂힌 너른 사진책 도서관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마련한다면, 이리하여 이 나라에 ‘국립 사진책 도서관’이 한 군데쯤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새로운 꿈을 꿉니다.

 그러나, 여권 없고 비행기표 살 틈이 없는 몸으로서는 덧없다 싶은 꿈은 꾸지 말아야지요. 나라밖 사진책을 귓돈 살짝 얹어 집에서 받아볼 수 있는 오늘날 터전을 생각한다면, 내 책을 내가 건사해서 마련한 도서관으로도 흐뭇하고, 나라밖 사진책으로 무엇이 있는지를 누리책방에서 살펴보며 보관함에 담을 수 있기라도 한 일은 아주 고마우며 반갑고 즐겁습니다. 아우구스트 잔더 님 사진책을 반드시 한글 판으로 읽어야 하지는 않거든요. 영어 판이든 프랑스말 판이든 독일말 판이든 일본말 판이든 괜찮습니다. 사진을 볼 수 있으면 어느 판이든 고맙습니다. 그저, 책 앞이나 뒤에 붙는 풀이말이나 도움말은 한 줄조차 못 읽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책 앞뒤에 붙는 다른 글을 못 읽기 때문에, 더욱더 땀을 쏟거나 마음을 기울여 ‘사진읽기’만 하면 됩니다. 내 깜냥껏 사진을 읽고, 내 슬기를 모두어 사진을 새기며, 내 기운을 들여 사진을 껴안습니다.

 《in focus AUGUST SANDER》(The J.Paul Getty Museum,2000)를 펼칩니다. 박물관에서 건사한 사진을 하나씩 보여주면서 이 사진마다 깃든 이야기를 붙입니다. 책 끝에는 퍽 길게 ‘아우구스트 잔더 사진삶 돌아보기’를 놓고 박물관 사람이랑 사진비평가랑 주고받은 이야기를 싣습니다.

 《August Sander》(PHOTO POCHE,1995)를 펼칩니다. 앞머리에 ‘아우구스트 잔더 사진삶 살피기’를 꽤 길게 붙인 다음, 사진만 죽 보여줍니다.

 두 사진책에는 겹치는 사진이 거의 없습니다. 《in focus AUGUST SANDER》에 실린 사진은 ‘The J.Paul Getty Museum’이라는 데에서만 책으로 엮어 보여줄 수 있는지 모릅니다. 한 장쯤 겹치는 듯한데, 두 사진책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싶으면서, 아우구스트 잔더 님 사진을 하나라도 더 볼 수 있어 기쁩니다.

 사람을 앞에서 가만히 마주 바라보면서 담은 사진은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발자취와 굳은살이 살포시 감돕니다. 마주 바라보는 사진은 많고, 마주 바라보는 사진은 누구나 으레 찍습니다. 그렇지만 한 사람 발자취와 굳은살을 고이 어우르려고 마음을 바치거나 힘을 들이는 사진쟁이는 많지 않아요. 얼굴과 차림새와 눈빛에 사로잡히기 일쑤입니다.

 얼굴이 이루어진 발자취, 차림새에 드러나는 하루하루, 눈빛에 서린 마음결과 생각밭을 고루 헤아리면서 함께 사랑하는 ‘사람사진’은 좀처럼 태어나지 못합니다.

 사람을 찍는 사진이란,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이 누구이며 어떠한가만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사람을 찍는 사진이란, 이 한 사람하고 얽힌 사람살이와 마을과 이웃과 동무와 사랑과 꿈이 줄줄이 이어지도록 찍는 사진입니다. 굳이 눈물을 찍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애써 웃음을 찍어야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삶을 찍으면 됩니다. 사진기를 쥔 사람과 사진기를 바라보는 사람이 서로를 삶으로 마주하면서 함께 손을 맞잡듯 사람사진을 찍을 수 있으면 됩니다.

 아우구스트 잔더 님 사진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사진으로 찍는 밑바탕을 보여줄 뿐입니다. 사람을 사진으로 찍는 매무새를 마무리짓는다든지 빛낸다든지 한껏 끌어올린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사진으로 찍는 밑마음을 들려줄 뿐입니다.

 사진이란 대단하지 않습니다. 사람사진이란 대단하지 않습니다. 아우구스트 잔더 님이란 대단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다른 사람들 삶과 목숨과 죽음과 사랑이 대단합니다. 이 대단한 다 다른 사람들 삶과 목숨과 죽음과 사랑을 사진으로 옮긴대서 사진이 대단하지 않습니다. 이 대단한 이야기를 사진으로 적바림할 수 있으면, 사진은 아름답습니다. 사진은 아름답게 걸어가는 사람들 삶자락을 적바림하는 예쁜 문화이자 예술이요 이야기마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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