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시붓꽃아, 올 봄에도 기쁜 소식 전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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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붓꽃아, 올 봄에도 기쁜 소식 전해주렴"
  • 전갑남 객원기자
  • 승인 2023.04.21 0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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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같은 자리에서 꽃을 피운 각시붓꽃이 사랑스럽습니다.
마니산에서 만난 보랏빛 각시붓꽃.

어느새 봄의 마지막 절기 곡우(穀雨). 신록이 푸르릅니다. 새움은 언제 이렇게 푸르러졌는가? 산들바람에 실린 신록은 기쁜 소식을 전해 줄 것만 같습니다.

아침부터 꾸물대던 날씨가 안개인지 이슬비인지 내리다 그쳤습니다. 나는 물병 하나 들고 뒷산인 마니산에 오릅니다. 낙엽 쌓인 촉촉한 등산로가 푹석푹석합니다.

출발할 때 그쳤던 이슬비가 제법입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더니 어느새 속옷까지 축축하게 젖습니다. 그만 산에 오르는 걸 포기하려는데, 보라색 야생화가 눈을 사로잡습니다.

'! 요 녀석들, 올해도 같은 자리에 어김없이 피었네!'

각시붓꽃입니다. 수북이 쌓인 낙엽을 뚫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보랏빛 요정 같은 꽃이 너무나 반갑습니다.

 

고고한 자태의 각시붓꽃. 꽃말은 '기쁜 소식'입니다.
막 피어나려는 각시붓꽃의 봉우리. 신비스럽습니다.

작년에 봤던 각시붓꽃이 올해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올망졸망 피어 수줍은 새색시가 봄나들이를 나온 것 같습니다.

위쪽 바윗골에 피었던 각시붓꽃들도 만날 수 있을까? 이쯤 해선 이슬비 정도는 개의치 않고, 발길은 어느새 산 위로 향합니다.

각시붓꽃! 꽃말은 '기쁜 소식'이랍니다. 대부분 붓꽃 종류는 키가 껑충 큰 데 비해 각시붓꽃은 꽃이 피는 동안에는 10cm도 못 됩니다. 그래서 아담하고 귀엽습니다. '각시'라는 이름에 정감이 갑니다. 식물 이름에 접두사 '각시'가 붙으면 '작다'를 의미합니다. 그보다는 각시라는 이름 때문인지 각시붓꽃에서 볼 연지 찍은 새색시가 연상됩니다.

예전 시집가는 딸에게 어떤 어머니께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애야, 가서 걱정만 하면 지는 거고, 늘 설레는 맘으로 살면 이기는 거여! 내 뭔 말하는지 알쟈?"

각시붓꽃에서 새색시의 고운 자태와 설레는 마음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고운 한복에 행주치마 입은 새색시처럼 단아해 보입니다.

 

홀로 핀 각시붓꽃 한 송이. 꾸밈없는 소박함에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얼마 안 가 홀로 피어있는 또 다른 각시붓꽃이 서 있습니다. 누가 널 여기 홀로 두었을까? 홀로 핀 각시붓꽃이 고고하게 느껴집니다. 바라볼수록 다소곳하고 소박합니다. 보라색 바탕에 흰 무늬들이 박혀 섬세하고 세련된 멋이 느껴집니다. 길고 곧게 뻗은 잎도 한층 분위기를 더합니다.

그쳤던 비가 제법 추적추적 내립니다. 나는 빠른 발걸음으로 작년에 무더기로 피었던 곳을 찾았습니다. ! 나를 기다리기라도 한 걸까? 각시붓꽃은 어김없이 피었습니다. 자기들을 예쁘게 봐주려고 찾아온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듯싶습니다.

 

무더기로 여러 친구와 함께 핀 각시붓꽃. 내년에도 같은 자리에서 꽃을 피울 것입니다.
각시붓꽃의 우아한 자태.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각시붓꽃은 한 해 피고 마는 꽃이 아닙니다. 여러 해 같은 자리를 지키며 피었다가 지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자연 그대로 놔두면 알아서 크고 자랍니다. 얼마나 고맙고 대견합니까!

산에 오르다 각시붓꽃을 만나면 꼭 기억해두세요. 이듬해 봄 당신을 기다리며 보라색 각시붓꽃은 같은 자리를 꼭 지킬 것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서요.

 

꽃보다 아름다운 봄 산의 신록이 싱그럽습니다. 자연은 항상 그대로입니다.

녹음이 우거진 산에 새들이 지저귑니다. '구구 구구!' 산비둘기가 멀리 떨어진 임을 찾는지 울어댑니다. 박새, 딱새도 왔다 갔다 합니다. 각시붓꽃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보다 새들인 것 같습니다.

각시붓꽃에 얽힌 슬픈 전설 하나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삼국시대 화랑 관창과 그의 정혼녀 무용 사이에 애달픈 이야기입니다.

각시붓꽃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보라색 붓꽃이 더 사랑스럽게 느껴질 것입니다.

 

<각시붓꽃의 전설> / 임종삼

말 등에 묶어 돌려보내라.
계백은 아들 또래의 관창을 베기 싫었다.
밧줄이 풀린 관창은 입술을 깨물었다.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적진으로 달렸다.
무수히 적을 베다가 말에서 떨어져 포로가 되었다.
관창의 목은 베어져 말꼬리에 묶였다.
 
관창에게는 약혼자가 있었다.
아름다운 소녀 무용이었다.
관창이 전사하자 무용은 영혼결혼식을 올렸다.
 
나이 어린 각시 무용은 슬픈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가 그만 푸른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이 관창의 무덤 옆에 그녀를 묻어주었다.
 
이듬해 봄이 왔다.
관창과 무용의 무덤가에 가녀린 꽃이 피었다.
꽃잎은 파랗던 무용의 입술을 닮았고
잎새는 예리한 관창의 칼날을 닮았다.
마을 사람들이 무용을 생각하며 각시붓꽃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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