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에는 코미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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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에는 코미디가 필요하다
  • 박교연
  • 승인 2023.05.10 1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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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박교연 / '페이지터너' 활동가

 

윤석열 정부가 물가 안정을 이유로 고금리 정책을 유지하면서 내수경기는 곤두박질치고, 그나마 버팀목이 됐던 경상수지도 두 달 연속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가상승률이 3%대로 그나마 안정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현실의 체감물가는 너무 높다. 만원 한 장으로는 비빔밥도 냉면도 사먹을 수 없는 게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이다. 밥 한 끼 사먹기 부담스러운 상황 속에서 페미니즘을 찾고, 삶의 의미를 찾고, 인권을 위해 투쟁하는 건 한 개인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다. 그러므로 지금의 페미니즘에겐 어느 때보다도 코미디가 절실하다.

장르적 구분을 해보자면, 코미디는 드라마와는 지향점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드라마가 추구하는 것은 바로 의미다. 드라마는 항상 캐릭터의 이야기를 통해서 삶의 의미를 담아낸다. 주인공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치열하게 관철하러 애쓰는 건 모두 ‘의미’를 위해서다. 가족을 ‘구하고’, 지구를 ‘구하고’, 자아를 ‘회복하고’. 세계질서를 ‘회복하기’ 위해서 주인공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다. 하지만 코미디는 이런 드라마와 완전히 정반대의 효과를 노린다. 왜냐하면 코미디는 국가가, 사회가 규정한 의미를 뒤집어보게 만드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모던 타임즈>를 예로 들어보자. 영화 속에서 기업은 노동자의 노동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식사기계를 발명하지만, 이 기계는 오히려 찰리채플린의 식사를 방해하고 그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는다. 기업은, 사회는 뭔가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일을 하지만, 사실 그것은 모두 무의미하고 황당하고 어이없는 행동에 불과하다. 근대소설의 시초 <돈키호테>가 코미디인 것도 이 때문이다. 돈키호테는 자기가 고결한 방랑기사라고 확신하지만, 그는 기사소설에 심취해서 자기 자신조차 잊어버린 미치광이다.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은 거창한 말로 묘사되지만 본질은 우스꽝스럽고 무의미하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소송>을 보면, 주인공K는 급작스레 강력한 법률의 굴레에 끼이게 된다. 이 법이 누구에 의해 제정되었는지, 법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어디에도 밝혀지지 않는다. 주인공K는 법원이 그를 기소했다는 것을 통보받을 뿐, 그 이유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무능한 법관과 무슨 말을 하든 웃어젖히기만 하는 이상한 관중 속에서 K는 고군분투하지만, 사형 직전 마지막에 그가 남길 수 있던 건 “개 같군!”이라는 말 한마디뿐이었다.

이러한 블랙코미디가 가져다주는 어이없음에 한바탕 웃고 나면 우리는 많은 걸 알게 된다. 소설 <소송>을 통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제도화된 권력’이 형상화되면 어떤 형태인지 가늠하게 된다. 관료주의 속에서 한 명의 개인은 논리적인 듯 보일 수 있으나 비논리적인 과정을 통해 짓밟힐 수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심지어 이 작품에서 주인공K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그 법의 정체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법이란 법일 뿐, 소설 속에서 그 존재의 의미에 대해 아무도 의구심을 갖지 않는다. 이를 통해 마음속에 떠오르는 ‘법실증주의’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나면, 어느새 우리는 현실의 법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블랙코미디를 통해 현실의 부조리함을 자각했다면, 알베르 까뮈의 이론을 빌어 우리는 다음스텝을 생각해볼 수 있다. 알베르 까뮈는 “인간은 뭘 해도 무의미를 극복할 수 없고 의미를 창조하는 건 불가능하다. 단지 인간이, 우리가 삶의 부조리에 대하여 할 수 있는 것은 ‘반항’뿐”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현 질서에 반항하고 대든다고 해서 우리가 부조리함에서 벗어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까뮈에 따르면 “삶의 부조리함을 명확하게 인식하면서 여기에 ‘아니’라고 외치는 반항의 몸짓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고 자유로운 행동”이다. 즉, ‘의미’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무의미’에 대항하는 게 중요하다. 나를 둘러싼 억압과 굴레가 무의미하고, 국가와 사회가 규정한 것들이 무의미함을 아는 것. 그리고 이런 반항하는 인간이야말로 모두의 삶을 규제하고 통제하려는 폭력과 압제를 꿰뚫을 수 있는 가장 날카로운 창이다.

그러므로 너무 무겁지 않게 페미니즘은 코미디 같이 가야한다. 삶에 대단한,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단 ‘인간은 모두 동등하다’는 절대적 깨달음을 방해하는 세상에 “아니”라고 반항하는 족적을 남길 수 있다면 충분하다. 그 발자국을 따라 자유로워지는 인간이 많을수록 우리의 굴레는 점차 가벼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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