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나지 않는 인천지역 음식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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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지 않는 인천지역 음식 문화
  • 박병상
  • 승인 2011.09.1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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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 칼럼]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짜장면으로 유명한 인천차이나타운 거리 모습

인천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닌 친구의 초대로 땅값 비싼 강남을 갔다. 그는 어릴 적 먹던 음식을 내주는 식당으로 안내했고 예약 없이 자리 잡기 어렵다는 그 식당에서 내놓은 생굴과 박대구이와 꽃게탕을 만났다. 그런데 그것 참. 인천 여느 식당보다 형편없이 작은 양을 내놓으면서 신선한 편도 아니면서 가격이 두 배를 훌쩍 넘는 게 아닌가. 서울에서 모처럼 만난 고향의 음식을 연실 상찬하던 친구에게 꼭 인천으로 오라고 초대해야 했다. 훨씬 신선하면서 맛이 빼어날 뿐더러 가격이 절반에 불과한 식당에서 고향의 맛에 푹 젖어보라고.

인천이 고향인 친구가 아니라도 좋다. 먼 곳에서 찾아온 친지에게 인천시민은 어떤 음식을 내놓는 게 좋을까. 덕적도 인근 갯바위에서 챙 넓은 모자를 눌러쓴 아낙들이 태양을 등지고 앉아 하루 종일 캐내는 굴, 우리가 '석화'라고 말하는 생굴부터 맛보라고 권해야 할 것 같다. 커다랗지만 물컹한 남도 생굴과 차원이 다른 맛에 취하기 시작하겠지. 4월이면 주꾸미, 5월이면 밴댕이 구이나 무침, 6월이 지나면 병어를 감자와 쪄서 내놓으면 좋겠다. 언제나 준비되는 꾸덕꾸덕 말린 박대구이도 기막힐 테고, 밥 대신 바지락 죽이나 국수를 내놓는다면 한 끼 식사로 그만일 터. 물텀벙이 찜이나 탕을 권한다면 뭐라 말할까.

"물텀벙이? 그게 뭐지?"하고 물을 텐데, 그냥 "아귀"라고 알려주면 재미가 없다. 인천 이외 지방에서 흔히 '아구탕' 또는 '아구찜'이라고 하는 음식은 물텀벙이 요리처럼 아귀를 재료로 사용한다. 하지만 바다에서 풍부한 물산을 사시사철 건져올렸던 인천은 그물에 걸린 아귀를 재수 없다며 버렸다. 그때마다 바닷물 속으로 '텀벙 텀벙' 들어가는 아귀를 인천 어부들은 "물텀벙이"라 했고, 그걸 찜이나 탕으로 요리했으니 '물텀벙이찜'이나 '물텀벙이탕'이라 말하는 건 아주 자연스럽다. 그런 인천 앞바다 이야기까지 전해야 흔해빠진 아귀찜이나 탕을 먹을 때보다 정취가 한층 오를 거다.

바지락은 '반지락'이다. 경상도에서 국수를 '국시'라 하듯, 남도에서 자존심 가진 어부는 아직도 바지락을 '반지락'이라 부른다. 국시는 경상도에서 먹어야 맛이 나듯 남도의 바닷가에 가면 '반지락 칼국수'를 먹어야 풍미를 느낄 텐데, 바지락이나 아귀는 우리 서남해안 어디에든 잘 잡히고. 관련 음식은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맛은 지역의 문화와 어우러질 때 더욱 정겹다. 전주비빔밥은 전주에서 먹어야 제맛이듯, 충무김밥과 자리물회도 충무와 제주도에 가서 먹을 때 풍미가 얹어질 게 틀림없다. 그러므로 물텀벙이찜과 탕은 인천에서, 석화도 인천에서 먹어야 제맛이다. 한데, 인천시민들은 그 절절한 사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드디어 '자장면'에서 해방되었다고 반기는 '짜장면'은 전국 어느 곳에 가도 맛이 비슷하지만 선린동 차이나타운에 가야 더욱 당길 것 같은데, 그건 사람들이 짜장면이 바로 그곳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쫄면'도 1970년대 인천 인현동의 '맛나당'에서 명칭이 시작되었다는데, 맛나당이 지금 어딘가에 있나? 수 킬로미터 이상 줄을 서는 이른바 '자장면 축제' 기간 선린동 차이나타운처럼 성황을 이루는 장면을 인현동에서 거의 볼 수 없는 건, 젊은이에게 그토록 인기가 있는 쫄면이 어느 식당에서 시작되었는지 우리 사회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알리려 노력한 이가 인천에 없었다는 걸 웅변한다.

전국으로 성황리에 퍼진 짜장면과 쫄면과 달리, 물텀벙이는 자신의 이름을 전국으로 알리는데 무슨 연유로 실패한 걸까. 용현동 '물텀벙이 골목'이 성황인 걸로 보아 맛이 없을 리 없다. 남도 반지락과 경상도 국시가 바지락과 국수에 밀려 제한된 곳에 명맥을 유지하듯, 별 의미를 담지 않은 아귀찜과 탕에 밀린 탓이다. 경합을 벌이던 반지락이 밀렸다면 물텀벙이는 아예 경합하려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맛깔스런 인천의 문화를 세상에 알리기보다 그저 갯벌을 매립하며 개발하기 바빴던 인천의 아쉬운 자화상이다. 생굴은 알아도 석화를 모르는 이가 인천에도 많다. 밴댕이로 무치는 회무침의 고소한 맛은 알아도 이듬해 봄에 먹는 강화 순무김치 속 밴댕이 맛은 인천시민들도 대부분 모른다. 김장김치 속 갈치 토막을 겨우내 골라먹던 맛을 기억하는 인천시민, 몇이나 될까?

작은 참조기로 담그는 젓갈을 '황석어젓'이라 말하는데, 인천에서 잡는 해산물을 주로 내놓는 어느 식당에 가니 '황석어찜'을 내놓았다. 젓갈과 전혀 딴판이고 맛도 그만이라 기회가 닿으면 손님을 모시고 간다. '조기찜'과 맛도 모양도 다르니 눈이 휘둥그레진 손님은 황석어가 참조기와 같다는 걸 전혀 짐작하지 못한다. 다른 지역의 식당에도 같은 식단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밴댕이 회무침과 구이처럼 인천다운 맛을 안내하는데 황석어찜이 하등의 지장을 받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물텀벙이 요리와 석화, 그밖에 인천의 여러 음식문화를 짜장면처럼 세상에 알리면 어떨까. 문화의식과 역량을 지금보다 높인다면 어렵지 않을 텐데.

학자들은 넓은 의미에서 '삶의 방식'을 문화라고 말한다. 음식문화가 그 가운데 하나로, 갯벌로 둘러싸인 인천은 채취하는 어패류가 많듯 음식문화도 다양했을 게 분명한데, 갯벌이 거의 사라진 현재, 시민마저 인천의 음식문화를 잘 모른다. 관심과 역량이 부족하다는 걸 반증하는데, 개발 피로가 만연된 회색도시 인천도 이제 달라질 필요가 충분하다. 번듯한 건물과 규모가 큰 공장, 휘황찬란한 쇼핑센터와 속도가 빠른 아스팔트에서 시민들은 문화를 찾지 못한다. 제 지역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삶에서 시민들은 비로소 문화를 느끼고 지역에 뿌리내리고 싶어진다. 멀리서 찾아오는 친구와 지역 문화를 안내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길 것이다. 이제 가을이다. 인천시와 시민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많이 늦은 일을 이제라도 챙겨야 한다.


물텅벙이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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