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5도 하면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소연평도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중에서 대청도는 자연이 푸른 색깔로 색칠한 듯한 환상의 섬, 그 자체이다.
인구 900여 세대 1,420명 남짓 거주하는 대청도는 조선 명종과 인연이 있다. 당시 국모 윤씨(문정왕후)의 신병을 치료하기 위해 뽕나무에 맺힌 상기향을 구하도록 했는데, 대청도 내동에서 이를 구해 병이 완쾌되었다고 전해진다. 왕은 크게 하사품을 내리고 돌만 있는 암도(岩島)가 아니고, '수목이 울창한 큰 섬'이라 하여 대청도(大靑島)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대청도에서 우뚝 솟은 삼각산. 서해5도의 최고봉이다. 백령도는 대청도 면적의 4배로 크지만, 최고봉이 고작 184m에 불과하다. 대청도 삼각산은 해발 343m로 명실공히 서해에 있는 최고로 높은 셈이다.
삼각산에 오르는 길은 오르는 코스가 다양하다. 코스마다 이색적인 이름을 붙여 놓았다. 성공의 기운을 얻는 코스인 ‘성공氣 길’, 애정의 기운을 북돋워 주는 길인 '사랑氣 길’, 서해의 서풍(西風)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서풍받이 트레일’ 등이 그것이다.
이른 아침 우리는 숙소 서내동(대청1리)에서 오르기로 했다. 임도 이정표 안내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길가 군데군데 붉은병꽃나무가 길동무가 되어준다. 녹색의 숲에서 만난 붉은 꽃이 참 예쁘다.
어느덧 임도가 끝나고 팔각정자 쉼터가 눈에 띈다. 정자 이름이 생뚱맞다. '기(氣)층전소'란다. 삼각산은 기(氣)의 산이란다. 이정표마다 기(氣)자가 새겨져 있어 예사롭다고 했는데, 이해가 된다.
기충전소에서 조금 지나니 정상이 한결 가까워졌다. 군 시설물인 듯한 모노레일이 놓였다. 모노레일을 따라가면 편할 것 같은데, 통제선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따로 등산로가 있다. 지금부터 가파른 등산로가 기다린다.
정상까지는 400m. 이까짓 것 쫌이야! 우리 일행은 좁고 숲이 우거진 등산로를 따라 올랐다. 나무 계단으로 이어진 산길이 의외로 가파르다. 금방 오를 것 같은 산행이 만만찮다. 산길에 바위지대는 밧줄을 잡고 오르고 계단길이 반복된다.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 시야가 트인 능선길에 다다랐다. 정상을 안내하는 이정표를 보니 고지가 눈앞이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힘을 내본다.
와! 어느덧 삼각산 정상 표지석이 보인다. 드디어 서해 최북단 최고봉을 점령했다. 땀에 젖은 옷에 시원한 바람! 너무 상쾌하다. 산에 오른 기쁨이 바로 이 맛이다.
정상 데크 위에 오르니 그야말로 멋진 광경에 어디다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360도 파노라마 시야가 펼쳐지는 섬 산행의 묘미를 만끽한다. 굽은 해안선이 너무 아름답다. 안개가 피어나는 바다는 몽한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원래 삼각산이란 명칭은 두 가지로 유래된다. 천자나 왕의 도읍지에서 쓰는 이름으로 원나라 순제가 이곳으로 유배되어 궁궐을 짓고 살았기 때문에 부르게 되었다는 것과 산의 모양이 삼각형 또는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붙여진 거라고 한다.
어찌 되었건 야트막한 산이라 생각했는데 서해 북단 최고봉의 명성에 걸맞은 산행의 아기자기함을 한껏 느낄 수 있다. 발아래 펼쳐진 아름다운 풍광에다 청량한 기를 덤으로 받는다니 기분이 참 좋다.
대청도 사람들은 예로부터 삼각산은 생명의 기가 충만하다고 믿고 있다. 예컨대, 베트남전쟁 때 참전한 사람 중 타 섬사람들은 전사자가 많았지만, 대청도 주민들은 대부분 살아서 귀향하였다고 한다. 또 삼각산에는 기가 세기 때문에 독사들이 살지 못하고 구렁이들만 서식한다고 한다. 삼각산의 기운이 주민들의 생명을 보호해 주고 그 이유로 기의 명산으로 믿는다.
‘당신의 성공 기(氣)와 사랑 기(氣)가 100% 충전되었다.’라는 이정표에 쓰인 글귀가 예사롭지가 않다. 충만한 대청도의 기를 모든 사람과 나눈다면 분명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드러난 시야가 너무 좋다. 산 아래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도 참 정겹다. 이웃 섬 소청도가 코앞이고, 큰 섬 백령도 눈앞이다. 우리 동포가 사는 북한 땅도 희미하게 드러난다.
삼각산 산행에서 기분 좋은 기를 받고 하산을 서두른다. 이른 아침, 몸이 정말 호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