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에게 생명의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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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에게 생명의 '길'을
  • 박주희
  • 승인 2023.05.22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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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칼럼]
박주희 / 인천녹색연합 사무처장

4월 중순, 인천 강화 볼음도에서 농수로에 빠진 두 마리 고라니 사체를 목격했다. 빈 수로에 빠졌다 올라갈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 물이 차올라 익사했는지, 처음부터 물이 가득 찬 수로에 빠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살기 위해 발버둥 쳤을 고라니의 고통은 가늠할 수조차 없다. 검색해보면 농수로에 빠진 고라니를 구조했다는 소식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과거 흙수로에서 직각 형태의 콘크리트 수로로 전환되면서 고라니뿐만 아니라 너구리, 뱀 등이 탈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높고 반듯한 콘크리트 수로가 물을 관리하는 측면에선 용이하겠지만, 어떤 생명에겐 죽음의 벽이다.

2020년 8월 말, 한 시민으로부터 영종도 송산공원 인근에서 맹꽁이가 오도 가도 못 하고 말라 죽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현장을 나가보니 자세히 보지 않으면 무엇인지도 모를 만큼 작은, 새끼손톱만 한 맹꽁이가 인도턱 아래에 몰려 있었다. 이동을 막 시작했을, 부드러운 흙을 찾아 이동하는 과정에 사람 손 한 뼘 정도 높이의 인도턱을 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결국 자동차에 로드킬을 당하거나 햇볕에 바짝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인도턱 아래에 쌓인 나뭇잎 더미 밑에 들어가 있던 맹꽁이들은 목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날 동행한 이들과 함께 1시간 30분가량 쉴새 없이 맹꽁이 429마리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었다. 이후 영종에 사는 주민들이 일주일간 상황을 살피며 약 1,000여 마리를 살렸다. 인천녹색연합의 요구로 인천시설공단은 맹꽁이가 이동하고 있음을 알리는 현수막을 게재했고, 임시방편이지만 인도턱을 넘어갈 수 있도록 야자매트를 덮었다.

맹꽁이가 인도턱을 넘어갈 수 있도록 조치하는 모습
맹꽁이가 인도턱을 넘어갈 수 있도록 조치하는 모습

 

계양산 두꺼비 로드킬 문제도 수년간 지속된 문제다. 계양산 다남녹지 부근 약 300m 구간에서만 2022년 80여 마리의 두꺼비 로드킬을 확인했고, 올해에도 약 30여 마리가 로드킬 당했다. 사람의 편의를 위해 도로가 여기저기 생기고 넓어지면서 두꺼비가 이동하며 살아온 길을 갈라놓고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올해 인천광역시와 계양구는 계양산 두꺼비 로드킬을 조금이나마 막고, 이동 경로를 보다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간이 시설을 설치했다.

 

야생동물에게도 길이 필요하다는 캠페인을 하는 시민들
야생동물에게도 길이 필요하다는 캠페인을 하는 시민들

 

날개 달린 생명의 길도 가로막히긴 마찬가지다. 국립생태원은 연간 약 800만 마리의 새가 우리나라에서 유리창 충돌로 죽는 것으로 추정한다. 하루에 2만2천 마리꼴인 셈이다. 새들은 투명한 유리, 반사성이 높은 유리를 인지하지 못하고 충돌해 죽는다. 생태환경교육 전문단체인 생태교육센터 이랑에서도 인천 남동구 구월동 한 아파트 단지 방음벽에서 2021-2022년 2년간 42회 모니터링을 통해 167마리의 새 사체를 확인했다. 흔히 볼 수 있는 참새, 박새, 물까치, 딱따구리를 비롯해 황조롱이 같은 천연기념물도 목숨을 잃었다. 새 충돌에 시민의 관심이 높아지자 2022년 국회는 새 충돌 예방, 저감을 위해 ‘조류충돌 예방, 저감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인천광역시의회 역시 ‘인천광역시 야생조류 충돌 저감 및 예방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투명 방음벽에 부딪혀 죽은 새
투명 방음벽에 부딪혀 죽은 새

 

한 뼘 정도 높이의 인도턱, 높은 제방, 우뚝 솟은 방음벽과 고층건물 투명유리창이 때론 다른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구조물일 뿐이다. 다양한 생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농수로에 야생동물의 탈출로를 만들고, 양서류 서식 공간을 최대한 침범하지 않고, 새 충돌을 방지할 수 있는 설계 말이다.

 

 시민모금을 통해 새 충돌 저감 스티커를 부착하는 모습 (출처 : 생태교육센터 이랑)
 시민모금을 통해 새 충돌 저감 스티커를 부착하는 모습 (출처 : 생태교육센터 이랑)

 

시민들은 인천 곳곳에서 양서류 보호를 위해 모니터링을 하고 있으며, 새 충돌 자료를 수집한다. 새 충돌 저감 스티커 부착 비용 마련을 위한 모금도 진행 중이다. 시민들이 행동하는 만큼, 인천시 등 지자체도 적극 행정으로 화답해야 한다.

인천시는 영종도 송산공원 야생생물보호구역 지정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이 곳은 맹꽁이 로드킬이 발생한 지역이자 ‘인천광역시 양서‧파충류 서식환경 모니터링 용역 보고서’(2022년)에서 ‘야생생물보호구역 후보지’로 지목한 지역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시민전문가를 활용한 생태조사, 자연환경 조사자료 구축, 자연환경교육 및 체험활동 강화, 양서류 학습원 및 공원조성, 민관학연 협조체계구축 등이 담긴 보고서가 캐비넷 보고서에 그치지 않도록 민관협의회를 구성해 실질적, 구체적인 추진방안을 논의하고 실행해 나가야 한다. 또한 새 충돌 방지 조례가 제정된 만큼,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저감조치 시행, 시공 전 단계에 저감조치 의무화는 물론 민간 건물까지 저감 조치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기대한다.

인천시는 2021년, 인천을 대표하는 생물종인 '깃대종'을 선정, 발표했다. 깃대종 선정은 생물다양성 증진을 위해 책임을 다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5월 22일 생물다양성의 날인 오늘도 모든 생명의 길을 가로막지 않는 배려,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책임을 다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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