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풀' 먹기, 풀 먹고 '좋게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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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풀' 먹기, 풀 먹고 '좋게 살기'
  • 최종규
  • 승인 2011.09.16 0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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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책 읽기] 김형찬, 《텃밭 속에 숨은 약초》

- 책이름 : 텃밭 속에 숨은 약초
- 글·사진 : 김형찬
- 펴낸곳 : 그물코 (2010.11.30.)
- 책값 : 18000원

 (1) 풀씨

 밭에서 기르는 푸성귀는 잎이 여립니다. 밭에서 거두는 푸성귀는 잎이 보드랍습니다. 사람들이 밥상에 올리는 푸성귀는 달근합니다.

 여느 들이나 벌이나 멧자락에서 사람 손을 타지 않으며 씨를 내고 뿌리를 내리며 잎을 틔우는 풀은 잎이 여리지 않습니다. 잎이 보드랍지 않고, 사람 혀에 썩 달근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길러서 먹는다는 푸성귀는 사람 손길을 타며 조금씩 달라졌을 테고, 따로 씨앗을 사고팝니다. 유전자를 건드리는 씨앗이 많습니다.

 여느 들이나 벌이나 멧자락에서 사람 손을 타지 않으며 자라는 풀은 해마다 어김없이 새로운 풀씨를 내지만, 이 풀씨를 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풀을 없애려고 사람들이 숱하게 약을 치거나 낫질을 하거나 호미질을 하거나 쟁기질을 한다지만, 이 풀은 이듬해에 틀림없이 다시 납니다.

 사람들이 냉이 씨앗을 뿌릴 일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질경이 씨앗을 뿌릴 까닭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며느리밑씻개 씨앗을 뿌리지 않아요.


.. 감은 성질이 차갑기 때문에 열을 내려주고 갈증을 멎게 합니다. 또한 단맛으로 음식 맛을 나게 하지만, 지나치게 먹으면 탈이 나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감의 차가운 성질을 다스리기 위해 불에 말리거나 볕에 말려서 쓰는데, 매실을 말려 오매나 백매로 쓰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 그 오얏나무가 자두나무라는 것을 안 것은 그 이야기를 읽고 한참 뒤의 일이었습니다 ..  (25, 139쪽)


 시골 들판이나 멧자락에서 자라는 풀 가운데 이름이 붙지 않은 풀이란 거의 없습니다. 옛사람은 들판과 멧자락에서 자라는 풀을 알뜰히 알아야 살아갈 수 있었고, 흔한 풀이든 드문 풀이든 어디에 어떻게 쓰며, 맛이나 냄새를 옳게 알아야 살림을 꾸릴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들판과 멧자락에서 자라는 풀을 거의 모릅니다.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 식구가 시골로 보금자리를 옮겨서 살아간다지만, 들판을 가득 채우는 풀마다 무슨 풀인지 낱낱이 가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풀이름이 무엇인지 욀 수 있대서 풀을 아는 일이 아닙니다. 풀이름은 모르더라도 이 풀을 먹으면 맛이 어떻고 내음이 어떠하다고 느낄 수 있어야 풀을 안다 할 만합니다. 풀을 즐겨 뜯고 즐겨 먹을 때라야 비로소 풀을 안다 할 만해요.

 아무개 이름이 무엇이라 욀 수 있대서 아무개를 알지 않습니다. 아무개 나이를 어림하거나 아무개가 다닌 학교를 왼대서 아무개 삶을 알지 않습니다. 아무개 얼굴이나 몸짓이나 매무새를 들여다본대서 아무개 넋이나 얼을 알지 못합니다. 겉으로 바라보거나 살피는 일이랑 속으로 사귀거나 어깨동무하는 일은 사뭇 다릅니다.


.. 밭 한구석에 무성하게 자라는 쇠무릎을 다른 작물들 못 자라게 한다고 뽑아버리곤 했는데, 어머니께 말씀드려 한쪽에 키워 무릎과 허리 아픈데 차나 약술로 쓰시도록 했습니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장부의 기능이 약해지고 이에 따라 뼈와 근육도 약해집니다. 무릎과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는 어르신들에게 쇠무릎 약차와 약술을 드시게 하면 좋겠습니다 … 약재로 쓰는 (개나리) 열매껍질은 옛 기록처럼 오래된 나무에서만 열리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열에 한 그루 정도가 열릴 정도로 귀하기 때문에, 지금 쓰이는 개나리 열매껍질은 거의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라고 합니다 ..  (34, 100쪽)


 “잡초는 없다”라는 이름을 걸며 책을 내놓은 분이 있습니다. “잡초는 없다”라는 말은 어느 한편으로 보면 맞습니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말이라거나 옳게 읊는 말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아무 풀(잡풀)’이든 ‘아무 사람(잡사람)’이든 따로 없습니다. 다 다른 목숨이면서 다 다른 빛깔인 풀이요 사람입니다. 온누리에 다 다른 학교는 다 다른 빛깔대로 아름답습니다. 학력평가를 해서 학교마다 등급이나 점수를 매길 수 없습니다. 사람들 돈벌이를 헤아려 누구는 1등급이고 누구는 100등급라고 나눌 수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잡초는 없다”가 아니라 “풀이 있다”라고 말해야 알맞습니다. “사람이 있다”라고 말해야 올바릅니다. “다 풀이야”입니다. “모두 사람이에요”입니다.

 사랑 아닌 삶이란 없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삶은 사랑입니다. 모든 사람은 사랑입니다. 모든 풀은 고마운 목숨이고, 모든 풀은 고마운 밥이며, 모든 풀은 고마운 동무입니다. 사람들은 풀과 함께 살아가고, 사람들이 숨을 거두면 풀씨가 더욱 기운이 나게끔 흙으로 돌아가 거름 구실을 합니다. 대통령도 한 사람 몫 거름입니다. 임금님 또한 한 사람 몫 거름입니다. 흙일꾼이든 고기잡이이든 똑같이 한 사람 몫 거름입니다. 대통령도 밥 한 그릇으로 배가 부르고, 임금님도 밥 한 그릇으로 배가 부릅니다. 흙일꾼이든 고기잡이이든 똑같이 밥 한 그릇으로 배가 부릅니다.


.. 대부분의 가을걷이를 마친 밭의 색은 흙색입니다 ..  (433쪽)


 풀씨는 목숨씨입니다. 풀씨는 삶씨입니다. 풀씨는 흙씨이면서 사람씨가 되는 사랑씨입니다.

 (2) 사람씨

 《텃밭 속에 숨은 약초》(그물코,2010)를 읽습니다. 책이름 그대로 텃밭에 깃든 약풀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사람 몸을 살리는 풀이란 어디 멀미던 두메에 깃들지 않고, 바로 내 살림집 곁에 있는 여느 밭자락에서 자란다고 이야기합니다.

 더없이 옳습니다. 굳이 멀리까지 찾아나서야 할 약풀이 아닙니다. 풀마다 쓰임새가 어떠한가를 가만히 살피면서 하나하나 받아들이면 약풀 아닐 풀이란 한 가지조차 없습니다. 모든 풀은 저마다 달리 쓰임새가 있습니다.


.. 어린 시절을 온통 시골에서 지낸 저는 자연에서 참 많이 배웠습니다. 초등학교 때 실습이나 방학숙제도 늘 주위를 둘러싼 논과 밭 그리고 산에서 대부분 해결했습니다 … 지금 아이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원버스 타고 학원에 가지만,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수업이 끝나면 집에다 책가방 벗어 놓고 나가 노는 게 일이었습니다 ..  (53, 185쪽)


 풀을 먹는 짐승은 온갖 풀을 골고루 뜯어서 먹습니다. 겨울에는 어쩔 수 없이 ‘말린 풀’이나 다른 먹이를 먹지만, 봄부터 온 들판과 멧자락을 신나게 누비며 온갖 풀을 뜯어서 먹습니다.

 풀을 먹는 짐승은 풀마다 맛과 내음과 쓰임이 어떠한가를 익히 압니다. 풀을 먹는 짐승이니까 풀을 모를 수 없고, 풀을 몰라서 안 됩니다.

 오늘날 여느 사람들은 풀마다 맛과 내음과 쓰임이 어떠한가를 아주 모릅니다. 저 또한 참말 모릅니다. 왜냐하면 어릴 적부터 풀맛과 풀내를 옳게 배운 적이 없을 뿐더러, 밥상에 올리는 여느 풀을 제대로 듣거나 보거나 살핀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풀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회사나 공공기관에서 풀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에서 풀을 다루지 않습니다. 풀을 먹으면서도 ‘풀먹기’를 말하지 않고 온통 ‘채식(菜食)’입니다. 이제는 ‘베지테리안’이라고 읊는 사람까지 있습니다.

 막상 풀을 먹어도 풀을 모릅니다. 애써 풀을 먹지만 풀을 알려 하지 않습니다. 고기에 곁들여 풀을 먹는들 풀맛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나물을 하거나 김치를 하더라도 어떠한 풀이 우리한테 고마운 목숨으로 찾아드는가를 깨닫지 않습니다.


.. 아주 가까운 곳만 돌아봐도 모르는 것이 많고, 세심히 살피면 일상은 신기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요즘 텃밭을 나다니며 새삼 느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일은 지금 달래장과 돌나물, 시금치나물이 밥상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 쇠비름 사진을 찍는데, 따라나오신 어머니께서 그 옆에 있는 풀을 가리키며 참비름이라고 하십니다. 줄기는 쇠비름과 비슷한데 색이 다르고 잎 모양과 꽃도 다릅니다 ..  (215, 282쪽)


 《텃밭 속에 숨은 약초》를 곰곰이 읽습니다. 책이름처럼 텃밭에 깃든 약풀을 이야기한달 수 있는 한편, 약풀이란 텃밭이든 너른 밭이든 들판이든 멧자락이든 똑같이 골고루 마음껏 자라니까, 그냥 ‘약이 되는 풀’을 이야기한달 수 있습니다.

 개나리라든지 오얏이라든지 살구는 ‘텃밭에 깃드는 약풀’이 아닙니다. 곧, 한의학에서 약으로 삼는 풀과 나무와 열매를 골고루 이야기하는 책인 《텃밭 속에 숨은 약초》입니다. 그래서 백 가지에 이르는 ‘약이 되는 풀과 나무와 열매’가 어떻게 사람 몸에 좋거나 도움이 되는가를 다룹니다. 풀에 얽힌 옛이야기랑 풀이름에 맺힌 옛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 상업적 목적이건 언론에서 조명을 받아서건 여름날 소나기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건강식품들의 유행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그럼 30년 뒤에도 사람들에게서 사랑받을 건강식품의 트렌드는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  (354쪽)


 책을 덮습니다. 텃밭을 예쁘게 일구고, 텃밭에서 예쁘게 풀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이러한 책처럼 텃밭을 일구려는 사람은 무척 적습니다. 시골사람이 아니고서는 텃밭일 일구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꽃밭이나 마당을 두더라도 텃밭을 일구는 사람은 드뭅니다. 아니, 도시에서는 자동차를 둘 자리를 마련해야지, 텃밭을 마련하지 않습니다. 도시에서는 드넓은 터에 자동차를 빽빽하게 세웁니다. 도시에서는 드넓은 터를 자동차가 바삐 오가는 아스팔트길로 바꿀 뿐입니다.

 도시에는 드넓은 숲공원이나 놀이공원이 있습니다. 도시에는 드넓은 논이나 밭이 없습니다. 도시에는 드넓은 쇼핑센터나 백화점이나 할인매장이 많습니다. 도시에는 조그마한 텃밭이든 널따란 밭자락이든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자동차로 오가야 할 뿐, 두 다리나 자전거로 오갈 만하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자라는 나무는 손바닥만 한 좁은 땅뙈기에 겨우 뿌리를 내립니다. 도시에서는 흙을 밟을 일이 없고, 풀포기가 예쁘게 고개를 내밀기 벅찹니다.

 도시가 나쁘고 시골이 좋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사람들 스스로 풀을 먹으면서도 풀이 자랄 터를 곱게 마련하거나 즐거이 내주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오직 돈을 벌고, 사람들은 그저 돈을 쓸 뿐입니다.

 좋은 풀을 먹는대서 좋은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려 하면서 풀 한 포기 사랑하는 마음밭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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