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왜 일하며 살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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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왜 일하며 살아가는가
  • 최종규
  • 승인 2011.09.07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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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하시모토 미츠오·쿠와 카즈토, 《어시장 삼대째 (29)》

 아이와 함께 바깥마실을 하면서 사흘을 바깥잠을 자고 나흘에 걸쳐 바깥밥을 먹었습니다. 집잠이 아닌 바깥잠은 그닥 개운하지 않습니다. 창문이 활짝 트인 곳은 없고, 창문을 열어도 시골집처럼 나무나 멧자락이나 숲이나 논밭이 보이지 않습니다. 창문을 연들 바람소리나 새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한여름에 접어들며 새롭게 들리는 온갖 풀벌레 소리와 매미 소리 또한 들리지 않아요.

 바깥에서 먹는 밥은 맛집에서 차리는 밥이든 여느 밥집에서 차리는 밥이든 배고픔을 달랠 뿐, 내 마음을 달랜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고단하고 품을 많이 들인다 하더라도 내 손으로 차려서 내 살붙이하고 함께 즐기는 밥처럼 내 삶을 살리거나 살찌우는 바깥밥은 없다고 느낍니다. 장사하는 가게 밥도 똑같이 밥이라 할 테지만, 어느 밥집에서도 아이가 먹을 밥과 반찬인 줄을 헤아리지 않으며, 헤아릴 수 없어요. 어른이 먹는 밥과 반찬에서도 어른마다 어떠한 몸이요 어떠한 밥거리가 알맞는가를 헤아리지 않으며, 헤아릴 수 없습니다.

 바깥마실 나흘째에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합니다. 시외버스에서 에어컨 바람에 모질게 시달려 속이 메스껍고 더부룩한 채 곱씹습니다. 사람들은 맛집을 즐겨찾으며, 맛집에서 맛난 밥을 먹는다고들 하는데, 참말 맛집 밥이 맛밥인지 궁금합니다. 비싸든 싸든, 값지든 값없든, 내 몸으로 집어넣어 내 삶에 기운을 불어넣는 밥을 나 스스로 내 몸을 살피며 차리지 않을 때에 어떤 보람이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 “마사, 식사는 했나?” “삼대째.” “예, 그런데 저 손님은?” “고교 선생님이야. 오토메의 담임이라더군.” “학교 선생님!(제자가 일할 직장을 보러 온 건가.)” “생물 선생이래.” …… “전갱이에 대해서 말했나?” “그건 제가 알려줬슴다.” “저 양반은 어시장의 시스템에 관심이 있더군. 생선 내부 구조나 생태에 대해선 잘 아는 사람이, 우습게도 그 많은 종류가 있는 볼락을 단 두 종류로 분류를 해 버리더군. 마사, 왜라고 생각하지?” “그건 그렇고, 오늘 저녁에 ‘치아키’에서 말씀드릴 건데요.” “말해 봐! 왜라고 생각하지?” “아니, 저, 그, 그거야 우리 중간도매상은 맛있는 생선을 파는 것이잖습니까? 아, 그러고 보니, 어릴 적에 아버지한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네요.” (아버지, 왜 같은 전갱인데 저렇게 분류를 하는 거야?) (그건 말이다. 같은 전갱이라도 맛이 다르기 때문이지! 학자들은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지. 전갱이라고 하면 전갱이지, 애매하게 하면 폼이 안 나거든. 그런데 우리가 보는 건 맛있나 없나를 보는 거란다. 중간도매상이 회유하는 전갱이, 근해 전갱이도 구별하지 못하고 그저 전갱이라고 하는 건 의미가 없지. 즉, 내 자신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가 중요해.) ..  (204∼205쪽)


 몸이 아플 때에는 남이 차리는 밥을 받습니다. 몸이 아프면서 손수 밥을 차리기는 어렵습니다. 몸이 아플 때에는 내 옷을 내가 빨래하거나 내 살림집이나 살림밥을 내가 치우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곁에서 나를 보살피는 살붙이가 내 옷을 빨고 내 방을 치웁니다. 내 살붙이가 아프거나 힘들면 내가 밥하기이며 빨래이며 쓸고닦기이며 도맡아서 합니다. 고맙게 맞아들이고, 즐거이 받아들입니다. 스스럼없이 누리고, 기꺼이 소매를 걷어붙입니다.

 네 살 아이한테 밥을 차리라 시키지 않습니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고 여섯 살이 되며 일곱 살과 여덟 살로 자라는 동안에도 아이한테 밥차림을 시킬 수는 없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아이는 곁에서 제 어버이가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하며 집안을 쓸거나 닦거나 치우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하나하나 배울 테며, 손수 이모저모 해 보면서 차근차근 익히리라 생각합니다. 마늘을 빻고 푸성귀를 다듬으며 두부 썰기쯤은 얼마든지 할 만하다고 느껴요. 손아귀에 힘이 제법 붙으면 불판을 만진다든지, 아이가 손수 반죽해서 부침개를 부쳐 볼 수 있겠지요. 능금알이나 복숭아알을 아이가 물에 헹군다든지, 푸성귀를 물에 씻는 일을 할 수 있을 테고, 배춧잎을 한 장씩 뜯어서 씻는 일도 할 수 있겠지요.

 쌀을 씻을 때에 얼마만한 힘으로 씻고, 밥물은 어느 만큼으로 맞추며, 쌀은 얼마나 넣어 밥을 짓는데 불은 어떻게 넣어야 하는가를 오래도록 지켜보며 배울 수 있습니다. 키가 조금씩 크면서 스스로 제 밥그릇을 설거지할 뿐 아니라, 어머니나 아버지 밥그릇을 설거지할 수 있어요. 이무렵에는 아이가 제 옷가지를 제 손으로 빨래를 해 볼는지 모르고, 아버지와 함께 이불빨래를 할는지 모릅니다.

 이제까지는 어버이가 차리거나 마련하거나 베푸는 대로 목숨을 이으며 삶을 꾸렸다면, 앞으로는 아이 스스로 하나하나 차리거나 마련하거나 베푸는 길을 몸소 깨달으면서 찾아나섭니다. 아이는 오롯한 목숨 하나요, 씩씩하고 싱그러운 몸뚱이를 지키는 한 사람이니까요.


- “마사, 그 맛을 잊으면 안 된다!! 삼대째가 진짜 아와지산 전갱이를 먹고 싶었다면 너한테 말만 하면 되는 거잖아. 그런데 삼대째는 여러 생각을 하면서 이 전갱이를 스스로 골라 너에게 보여준 거다!!” (215쪽)


 아이가 아이 스스로 밥을 마련하는 힘겨움과 고단함과 기쁨과 보람과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골고루 맛보면서 받아들일 수 있기를 꿈꿉니다. 어버이로서 어버이부터 내 살붙이들과 밥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힘겨움과 기쁨과 아름다움을 찬찬히 살피면서 예쁘게 맞아들이자고 다짐합니다. 어버이 스스로 예쁘게 살아갈 때에 아이 또한 예쁘게 살아가겠지요. 어버이부터 착하게 살림을 일구려 힘쓴다면, 아이 또한 착하게 살림을 일구는 길을 살며시 열겠지요.

 그저 배를 채우라고 차리는 밥상이 아닙니다. 그저 배고픔을 가시도록 내주는 밥이 아닙니다. 살아가라고 차리는 밥상이고, 목숨을 사랑하라며 내주는 밥입니다.

 삶을 아끼면서 죽음을 고마이 여기도록 하는 밥먹기입니다. 삶과 죽음을 고루 돌아보면서 내 하루를 누리는 밑힘이 되는 밥차림입니다.

 바깥마실을 하며 바깥잠을 자고 바깥밥을 먹는 동안, 이러한 얼거리에서 밥먹기와 밥차림을 느끼지 못합니다. 아니, 느낄 겨를이 없어요. 바삐 움직이고 부산히 복닥이는 길거리에서 따스하거나 너그러운 품이나 손길이나 마음길을 마주하지 못하거든요. 살림에 앞서 돈벌이를 높이 우러르는 자리에서는 밥이 밥다이 놓이지 못하고, 사람이 사람다이 살지 못하며, 꿈이 꿈다이 피어나지 못합니다.


- “그건 안 되유! 말했잖아유.” “고향의 기대가 생각나서 부담이 됐다고 했지. 하지만 그렇게 느끼는 건 고향의 생선이 그만큼 추억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33쪽)


 만화책 《어시장 삼대째》(대명종,2010) 스물아홉째 권을 읽습니다. 《어시장 삼대째》 스물아홉째 권에서는 중간도매상을 따로 차리려는 꿈을 꾸는 ‘마사’ 이야기가 돋보입니다. ‘가게를 새로 차려 홀로 우뚝 서는 일’보다 더 눈여겨볼 대목을 밝힙니다. 가게를 새로 차리든 다른 사람 가게에서 일을 하든, ‘한 사람으로서 일을 하며 살아가는 나날’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왜 살아가는가’를 모르고서는 ‘왜 일하는가’를 알 길이 없고, ‘왜 일하는가’를 알지 못한다면, 내 이웃이나 벗이나 살붙이하고 ‘어떻게 왜 무엇을 사랑하는가’를 알 턱이 없습니다.

 그예 더 싱그러운 물고기를 찾아내어 가게에 댈 수 있으면 끝인 중간도매상이지 않습니다. 더 맛나게 먹거나 더 값지게 팔 만한 물고기를 알아볼 수 있으면 그만인 중간도매상이지 않아요.

 사람이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길에서 붙잡는 일거리 가운데 하나인 중간도매상입니다. 사람다움을 잃는다든지 사랑스러움을 멀리한다든지 삶다움을 놓는다든지 할 때에는 홀로 가게를 차리든 다른 사람과 함께 일을 하든 ‘이곳에 내가 왜 있는가’를 느끼지 못해요.

 경력이 오래되었다든지 솜씨가 빼어나다든지 하대서 함께 일할 만한 벗이 되지 않습니다. 기운이 좋다든지 재주가 뛰어나다든지 하기에 일을 선뜻 맡길 만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으로 살다가 사람으로 죽는 까닭이 있습니다.


― 어시장 삼대째 29 (하시모토 미츠오 그림,쿠와 카즈토 글,편집부 옮김,대명종 펴냄,2010.4.5./4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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