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땅에서 나비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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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땅에서 나비를 만나기
  • 최종규
  • 승인 2011.09.27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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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 좋다] 권혁도, 《세밀화로 보는 호랑나비 한살이》

 꼼꼼그림으로 호랑나비를 어여삐 담은 그림책 《세밀화로 보는 호랑나비 한살이》(길벗어린이,2010)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이 그림책은 이토록 어여쁜데, 이 그림책을 장만하여 읽을 어른이나 어린이 가운데 ‘나비가 알을 낳아 살아갈 만한 터전’에서 ‘나비가 사랑하는 흙과 풀을 아끼며’ 일거리를 찾거나 보금자리를 돌보는 이는 얼마나 될까 하고 생각합니다.

 도시에서 살며 첫째를 낳았을 때이든, 시골로 옮겨 둘째를 낳았을 때이든, 나비는 늘 우리 식구 둘레에서 날갯짓을 했습니다. 도시에서는 아파트숲이 아닌 골목숲에서 살았습니다. 골목숲 골목이웃은 흙 한 줌 없는 도시에서도 흙을 알뜰히 건사하면서 텃밭을 일구었고, 이 텃밭에서 피고 지는 숱한 꽃이나 푸성귀 내음을 좇아 온갖 나비가 찾아들었고, 알을 깠으며, 목숨을 이었습니다. 이제 시골에도 자동차 많고 공장 많으며 시끄럽습니다. 그래도, 이 시끄럽고 어수선한 시골은 도시와 견주어 숱한 나비와 잠자리와 풀벌레가 깃들기에 훨씬 나은 터전입니다.

 아이가 마당에서 뛰놀든 멧자락을 오르내리든, 또 아버지가 자전거수레에 태워 읍내로 마실을 다녀올 때이든, 언제 어디에서나 쉽게 나비를 만납니다. 풀이 자라면 꽃이 피고, 꽃이 피면 나비가 깃들 쉼터가 생깁니다. 풀꽃이든 멧꽃이든 사람들이 뿌린 씨앗 때문에 피지 않습니다. 풀밭에서건 멧자락에서든 들풀이나 멧풀은 저희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며 씨앗을 냅니다. 나비 또한 사람이 들여다보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나비는 나비대로 저희 삶을 알뜰히 꾸립니다.

 식구들이 두 다리로 움직이는 자리에서는 팔랑거리는 나비를 만납니다. 아이를 태운 자전거를 몰며 읍내를 다녀올 때에는 자동차에 치이거나 밟혀서 죽은 나비를 길바닥에서 끝없이 만납니다.

 자동차에 치여 죽는 사람은 하루에 몇일까요. 자동차에 치여 죽는 나비는 하루에 몇일까요.

 어느 누구도 자동차에 치여 죽는 나비나 잠자리나 참새나 비둘기나 삵이나 고라니나 뱀이나 개구리나 사마귀나 메뚜기나 너구리나 고양이나 다람쥐 숫자가 얼마나 되는가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자동차에 밟혀 죽은 개미가 얼마나 된다든지, 자동차에 밟혀 그예 떡이 되어 사라진 지렁이가 얼마나 되는가를 살피는 통계는 없습니다. 아니, 어느 누구도 슬퍼 하거나 아파 하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느끼지 않고,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랑 자전거를 타고 읍내 장마당에 다녀올 때마다 숱한 죽음을 마주합니다. 너무도 많은 목숨이 새까만 아스팔트길에서 너무도 쉽게 너무도 가벼이 너무도 끔찍하게 사그라듭니다. 너무도 빨리 달리는 자동차 때문에, 너무도 무시무시하게 달리는 자동차 때문에, 너무도 앞만 바라볼 뿐인 자동차 때문에, 사람 아닌 목숨은 이 땅 이 나라 이 터에 섣불리 깃들이지 못합니다.

 자동차에 치여 죽은 나비가 길바닥에서 자동차 바람에 휩쓸려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굽니다. 몸뚱이는 벌써 사라졌고, 날개만 가까스로 남아 파닥거리는 나비가 곳곳에 널립니다. 장마가 지났어도 그치지 않는 빗줄기에 까만 아스팔트길이 날마다 씻긴다지만, 이렇게 씻기고 나서도 수많은 목숨들이 또 새롭게 이곳 까만 길바닥을 저승길로 삼습니다. 자동차에 탄 사람들만 못 느끼는 무덤길인 찻길입니다.


.. 호랑나비는 진달래꽃을 좋아해요. 작은 낱눈이 모인 겹눈으로 쉽게 진달래꽃을 찾아내지요 ..  (4쪽)


 그림책 《세밀화로 보는 호랑나비 한살이》는 어여쁩니다. 호랑나비 한살이를 살피는 권혁도 님 눈길부터 어여쁩니다. 호랑나비 한 마리를 애틋하게 사랑하는 손길이기에 이토록 어여쁜 그림책을 일구어 이 나라 아이들하고 나눌 수 있다고 느낍니다. 꼼꼼하게 그린 그림으로 이루어진 그림책은 으레 일본 그림책으로만 만나야 하는 판인데, 《세밀화로 보는 호랑나비 한살이》는 한국땅 한국 목숨붙이를 한국사람 눈길대로 살가이 보여줍니다. 이 그림책 하나를 펼치면서, ‘일본땅 일본 목숨붙이를 일본사람 눈길대로 사랑스레 담은 그림책’이 아닌 한국 그림책으로도 아이하고 나비 한살이를 예쁘게 나눌 수 있으니 더없이 고맙습니다.


.. 풀숲에는 많은 애벌레들이 자라고 있어요. 생김새도 다르고 먹는 것도 달라요. 나비 애벌레는 대개 정해진 먹이 식물을 먹어요 ..  (14쪽)


 그렇지만, 그림책을 덮고 나면 온통 슬픈 빛깔인 삶터입니다. 도시에서는 도시대로 나비하고 사귀기 어렵습니다. 시골에서는 시골대로 나비가 죽어납니다. 곡식과 푸성귀를 거두려고 풀약을 뿌리기에 풀약을 함께 맞아 죽을 뿐 아니라, 자동차에 치여 죽는 나비입니다. 아이들이 어여쁜 그림을 바라보며 어여쁜 호랑나비 모습을 머리에 아로새길 수 있습니다만, 정작 호랑나비 한 마리 어여삐 한살이를 보낼 만한 터전을 좀처럼 지킬 수 없는 이 나라입니다. 물길을 파헤치고 멧자락을 무너뜨립니다. 새로운 겨울올림픽을 한국땅에서 치른다고 하니까, 조용하고 정갈하던 멧자락을 또 얼마나 넓게 파헤치거나 무너뜨려야 할까요. 경기장을 새로 짓느라, 아파트와 숙소를 새로 세우느라, 찻길을 새로 닦느라, 무얼 또 새로 만드느라 …… 나비 한 마리 깃들 조용하고 정갈한 보금자리는 얼마나 슬프게 사라져야 할까요.

 그런데, 나비가 깃들 터전은 운동장 하나만 하지 않습니다. 나비는 자동차 한 대 세울 만한 자리만 곱게 지키면 얼마든지 알을 깰 수 있습니다. 지렁이는 한 사람 누울 땅뙈기면 얼마든지 예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린 나날 《세밀화로 보는 호랑나비 한살이》를 보고 자라는 어린이가 앞으로 어른이 되어 정치를 맡거나 행정을 맡거나 교육을 맡는다 할 때에, 이 어린이는 호랑나비를 어여삐 사랑할 만한 정책을 마련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세밀화로 보는 호랑나비 한살이》라는 그림책을 보고 자란 어린이만큼은 호랑나비를 비롯한 작디작고 여리디여린 이웃 목숨붙이를 아끼거나 사랑하거나 믿거나 보듬는 착한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어여쁜 그림책을 보는 사람이라면, 어린이가 되든 어른이 되든, 어여쁜 한 사람으로서 씩씩한 몸짓과 맑은 눈빛으로 착한 삶을 일굴 때에 어여쁜 꿈을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세밀화로 보는 호랑나비 한살이 (권혁도 글·그림,길벗어린이 펴냄,2010.1.25./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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