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는 자유도 민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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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는 자유도 민주도 없다
  • 최종규
  • 승인 2011.09.29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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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우어줄라 쇼이 엮음, 《여자로 살기, 여성으로 말하기》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는 이 나라에는 헌법이 있지만, 헌법을 아랑곳하지 않는 국가보안법이 있습니다. 때때로 특별법이 생기면서 헌법을 뛰어넘습니다. 인권을 비롯한 기본권보다 권위와 권력이 앞섭니다. 자연과 삶보다 개발과 경제가 앞섭니다. 평등과 평화보다 안보와 군대가 앞섭니다. 자유와 민주는 언제나 뒷전이 됩니다. 사랑과 믿음을 지키는 나라정책이나 나라살림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곰곰이 살피면, 나라정책만 자유와 민주하고 동떨어지지 않습니다. 나라살림만 사랑과 믿음하고 등지지 않습니다. 여느 사람들 여느 삶부터 자유와 민주랑 사귀지 못합니다. 여느 사람들 여느 삶터부터 사랑과 믿음이 깃들기 어렵습니다.

 나라정책에 앞서 여느 사람들부터 자유와 민주를 먼저 살피지 않습니다. 누구나 언제나 돈벌이를 먼저 살핍니다. 나라살림에 앞서 여느 삶터부터 사랑과 믿음이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누구나 언제나 이름값을 먼저 헤아립니다. 입시지옥은 나라정책이 만들고 제도권학교가 함께 만들지만,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여느 어버이 또한 함께 만듭니다. 비정규직이나 푸대접이나 따돌림은 나라정책이 만들고 회사가 함께 만들지만, 어른이 된 여느 사람들 또한 함께 만듭니다.

 내가 살아가는 자리부터 자유와 민주가 가장 앞설 수 있도록 해야, 내 삶터가 달라지고 내 마을이 달라집니다. 내가 꿈꾸는 마음밭부터 사랑과 믿음이 자랄 수 있도록 해야, 내 나날이 바뀌고 내 이웃이랑 동무가 바뀝니다.


- 남녀의 동등한 권리는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종이 위에만 존재할 뿐이다. 그게 전부다. (12쪽/리다 구스타파 하이만)
- 나와 결혼할 남자는 내 예술과도 결혼해야 한다. 내 예술을 존경하고 사랑해야 한다. 관용을 베푸는 게 아니라! (33쪽/조지 엘리엇)
- 진실을 위해 싸우는 사람도 남자고, 진실에 반대하는 자들 역시 남자다. (53쪽/메리 아스텔)
- 남자들은 여자를 껴안는 대신에 덮친다. 남자들은 여자를 얻는 대신에 산다. 남자들은 뭔가 이문을 남겨야 하는 사업을 하듯 여자를 다룬다. (80쪽/루트 베를라우)


 우어줄라 쇼이 님이 엮은 《여자로 살기, 여성으로 말하기》(현실문화연구,2003)라는 작고 도톰한 책을 읽습니다. 여자로 살아가며 여성으로 말하는 일이란 무엇인가를 여러 갈래로 나누어 보여줍니다. 숱한 서양사람이 어떠한 말을 길어올려 참삶과 참자유와 참민주를 바랐는가를 보여줍니다. 여자와 남자가 서로 어여쁜 사람인 줄 느끼며 살아갈 참평화와 참평등과 참사랑이 어떠해야 좋을까를 가만히 들려줍니다.

 종이에 적힌 권리는 권리가 아닙니다. 삶으로 함께 누릴 때에 비로소 권리입니다. 전쟁무기를 만들고 군대를 키우는 일은 평화하고 동떨어집니다. 무기와 군대가 더 많고 더 세다 해서 지키는 평화가 아니라, 무기와 군대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 전쟁이요 푸대접이며 따돌림입니다.

 여자 군인이 드물게 있으나, 군대는 남자가 만들어 남자로 이루며 남자가 꾸립니다. 여자 정치꾼과 경제꾼이 더러 있으나, 정치이든 경제이든 남자가 만들어 남자가 이루며 남자가 꾸립니다. 우리 사회와 교육과 문화라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같이 남자가 만들어 남자가 이루며 남자가 꾸립니다.

 남자들은 한결같이 집을 떠납니다. 남자들은 저를 낳아 키운 어버이 곁을 금세 떠나 홀로 살아갑니다. 어른이 되어 짝을 만나 아이를 낳았어도, 저(남자)를 키운 어버이처럼 제 아이를 키울 생각을 않고, 아이를 키울 몫은 오직 여자한테 떠넘기고는 집 바깥에서 무언가 ‘큰 일’을 벌입니다. 돌이키면, 저(남자)를 키운 어버이도 으레 어머니(여자)였지, 아버지(남자)는 아니라 할 만합니다.


- 남자가 권력과 어리석음 대신 영혼과 인간성을 채워 넣는다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86쪽/리다 구스타파 하이만)
- 남자들을 그냥 내버려둔다면 모든 남자가 독재자가 될 것이다. (96쪽/애비게일 애덤스)
- 어른들은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들이 놀 때 각기 다른 운동을 하도록 유도한다. 그래서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들이 배우는 종목이 각각 다르다. (163쪽/게르트루드 피스터)
- 아름다운 여자는 이중으로 보복 조치를 당한다. 몸은 묶이고, 남자의 소유물인 자신의 모습은 길들여지고 다듬어진다. (182쪽/수잔 팰루디)


 전쟁무기와 전쟁군대를 버려야 나라살림이 살아납니다. 전쟁무기와 전쟁군대에 들일 돈을 평화와 평등과 자유와 민주에 들여야 합니다. 전쟁무기와 전쟁군대를 단단히 움켜쥐기 때문에 비정규직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전쟁무기와 전쟁군대를 없애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듭니다. 전쟁무기와 전쟁군대를 없애면 남북이 하나되는 마당에 든다 하는 돈이 걱정스럽지 않습니다. 전쟁무기와 전쟁군대가 무섭게 버티는데 대학등록금이 이토록 비쌀밖에 없습니다.

 장난감 칼이나 총을 아이한테 선물하는 일부터 잘못인 줄 느끼지 못하기에 전쟁무기와 전쟁군대는 더 커지기만 합니다. 전투기나 군함이나 탱크나 잠수함이나 미사일을 만들 돈으로 햇볕힘을 알뜰히 쓰도록 애쓸 노릇이요, 지구별 자원을 걱정할 일입니다. 아이들은 장난감 칼이 아닌 호미나 낫이나 쟁기를 손에 쥐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장난감 총이 아닌 빨래비누와 걸레와 수세미를 손에 들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흙을 일구며 땀을 흘리는 나날을 어릴 적부터 맞아들여야 합니다. 아이들은 집일을 거들며 찬찬히 배우는 삶을 어린 날부터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이들은 입으로 넣는 밥이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흙으로 돌아가는가를 배워야 합니다. 한글은 나중에 깨치더라도 흙살림을 먼저 옳게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느긋하게 잠자리에 들며 즐거이 살아가는 보금자리를 어떻게 돌보며 아끼는가를 익혀야 합니다. 영어나 한자는 모르더라도 집살림을 제대로 알뜰살뜰 느껴야 합니다.


- 나는 내 의지대로 살고 싶다. 그게 예절에 맞는지 어떤지 묻고 싶지도 않다. 나는 더 이상 세상의 판단에 따라 흔들리고 싶지 않다! … 나는 진리에 도움이 되고 싶다. (218쪽/루이제 뮐바흐)
- 여자답다는 말은 남자들에게 욕망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최선의 형용사다. (233쪽/헤드비히 돔)
- 사회 모든 분야의 원칙은 남자가 정한다. (274쪽/앙엘리카 메르켈)
- 여자가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남자들은 여자가 곁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그토록 난폭하게 구는 것이다. (279쪽/조앤 콜린스)


 이 나라에서 사내다움이나 가시내다움이란 무엇인지 아리송합니다. 아니, 이 나라에는 사내다움이나 가시내다움이란 아예 없다고 느낍니다. 사람다움조차 쉬 찾아보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사람다움이란 밥·옷·집을 스스로 마련하며 건사하는 삶입니다. 사내다움이나 가시내다움이란 사람다이 살아가면서 둘로 나뉜 성별에 걸맞게 착하면서 참답고 아름다운 나날을 일구는 삶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사람들은 밥·옷·집을 스스로 마련하거나 건사할 생각부터 하지 않는데다가, 밥·옷·집을 스스로 마련하거나 건사할 줄 모릅니다. 내 삶은커녕 동무 삶과 이웃 삶을 착하거나 참답거나 아름다이 보듬을 줄 모릅니다.


- 여자 아이를 대학에 보내고 사내 아이를 재봉학원과 부엌으로 보내라. 그렇게 3세대가 흐르면 여러분도 남자가 바느질과 요리를 하는 것이 과연 불가능한 일인지, 억압받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될 날이 오리라. (340쪽/이다 한-한)
- 여자는 과거에 대체로 정치와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전해 내려온 나쁜 정치 습관과 전통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서 새로운 방식의 정치를 생각해 낼 수가 있다. (385쪽/에밀리 그린볼치)
- 집안일은 사람의 일이지 여자의 일이 아니다. (418쪽/알리스 슈바르처)
- 전쟁은 경악스러운 강간을 동반한다. (464쪽/리다 구스타파 하이만)


 《여자로 살기, 여성으로 말하기》라는 책은 아픈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엉터리로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여자로 살기, 여성으로 말하기》라는 책은 우리가 예쁘게 살아갈 이야기를 다룹니다. 어떻게 해야 즐거우며 반가운 나날을 맞이할 수 있는가 하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오늘날 모든 아이들은 오직 대학에 보내는 틀에 짜맞추어집니다. 아이들은 오직 대학에 가는 틀에만 짜맞추어지면서, 스무 살이 되건 스물다섯 살이 되건 스스로 밥을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집안을 건사하거나 하는 일을 겪지 않고 배우지 않으며 대물림하지 않습니다. 그예 돈을 더 많이 더 빨리 벌어들이는 일자리 얻는 틀에 갇힙니다. 대학이라는 곳은 학문하는 데가 아니라, 돈을 잘 버는 일자리에 들어갈 자격증인 졸업장을 따는 곳일 뿐입니다. 대학등록금이 비싼 까닭은 나중에 돈을 많이 벌어들일 일자리를 얻도록 내밀 자격증인 졸업장을 받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삶을 보아야 하고, 사람을 느껴야 하며,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착하게 살아야 하고, 참다운 사람이 되어야 하며, 아름다이 사랑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에는 아직 자유도 민주도 없습니다.


― 여자로 살기, 여성으로 말하기 (우어줄라 쇼이 엮음,전옥례 옮김,현실문화연구 펴냄,2003.12.20./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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