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식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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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식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 최종규
  • 승인 2011.09.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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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폴 콜린스, 《식스펜스 하우스》

- 책이름 : 식스펜스 하우스
- 글 : 폴 콜린스
- 옮긴이 : 홍한별
- 펴낸곳 : 양철북 (2011.7.14.)
- 책값 : 13000원

 (1) 책을 읽는다

 1975년에 태어나 1982년에 국민학교에 들어가기까지 책읽기를 얼마나 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나는 떠올리지 못하지만, 집 안팎에서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읽어 주었는지 모르고, 나 또한 책읽기에 젖어들었는지 모릅니다.

 유치원 비슷한 구실을 하던 미술학원을 다니던 일곱 살 적, 유치원 비슷한 미술학원에서 한 일은 그림그리기와 놀기 두 가지입니다. 이곳에서 동화책이든 그림책이든 가까이한 일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1982년에 국민학교에 들어간 뒤로도 딱히 책읽기를 즐긴 일은 떠올리지 못합니다. 이동안에는 책읽기 없이 ‘독서감상 숙제’가 있었고 ‘독서감상 숙제로 독서감상문을 원고지에 다섯 장 넘게 써서 내야’ 했습니다. 학교에는 도서관이든 도서실이든 없었습니다. 학급문고라고 백 권 즈음 책이 있기는 했으나, 한 반 쉰다섯 안팎 되는 아이들한테서 한 권씩 받은 책으로 마련한 책들입니다. 읽을 만한 책은 아주 드물고, 그냥 책 꼴을 갖추었으면 하나씩 가져온 셈 쳐서 가까스로 백 권 즈음 숫자를 맞추었습니다.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릴 때 인천에서 중학교에 들어갑니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새로 지은 곳이지만, 새로 지은 학교이면서도 도서관이든 도서실이든 없습니다. 요즈음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모르겠지만, 이무렵 인천에 있는 학교치고 체육관 있는 곳은 아주 드물었습니다. 체육관이고 도서관이고 무엇이고 하나 없이 그저 교실만 빼곡하게 들어찬 인천 학교들입니다. 중학생이 될 때 학교에서 내어준 선물이란, 대학입시를 앞두고 이제부터 저녁 열 시까지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하겠다고 교장 이름으로 갱지에 적바림한 알림쪽글.


.. 책 읽는 사람은 늘 희귀하다 … 미국 가정 가운데 한 해 동안 책을 한 권도 사지 않는 집이 절반 정도로 나왔다. 나도 이웃집들을 방문해 본 덕에 책을 보는 집이 많지 않다는 걸 통계적으로 알 수 있었다 ..  (11, 12∼13쪽)


 중학생이 되어 영어를 처음으로 배웁니다. 집에 돈이 좀 있거나 공부 좀 시킨다는 몇몇 아이들은 알파벳을 미리 익힌 채 중학생이 됩니다만, 거의 모든 아이들은 이때에 알파벳을 처음 만납니다. 영어 교사는 알파벳을 제대로 그리지 못하거나 옳게 외우지 못하는 아이들을 몽둥이찜질로 다스립니다. 수업마다 쪽지시험을 치러 몽둥이질을 즐깁니다.

 그러고 보니, 국민학생에서 중학생으로 넘어와서 달라진 대목이라면, 이제 모든 교사들이 출석부를 왼옆구리에 끼고 굵다라면서 길다란 몽둥이를 오른손에 쥔 채 학교를 돌아다니는 모습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라도 매질을 하거나 막말을 퍼붓는 대목이 중학생부터 노상 보는 모습입니다.

 중학교 국어 수업에서는 시늉을 하듯 문학을 맛보기로 보여주곤 합니다. 말 그대로 맛보기요, 시험에 나올 이야기를 짚는 데에서 그치지만, 어찌 되든 문학을 다룹니다. 영어를 천천히 배우면서 영어로 된 동화책을 한 권 두 권 사서 읽습니다. 시사영어사에서 나온 빨간 빛깔 작은 영한대역 동화책을 삽니다. 새책방을 잘 뒤지면 1970년대에 찍어 350원이나 250원 책값이 그대로 남은 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 짧은동화라든지 《키다리 아저씨》라든지 하나하나 사서 읽습니다.


.. 유명인이 갖고 있던 책이라고 해서 그게 왜 특별한지 잘 모르겠다. 책에 메모를 잔뜩 해 놓은 경우가 아니라면 무슨 의미가 있나? … 미국 인테리어 잡지는 돈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 실내장식을 맡기는 사람들을 위한 잡지다. 영국은 스스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잡지고. 또 실내 사진은 모두 자연광을 이용해 찍었는데, 여기가 영국이다 보니 빛이 거의 없다 ..  (31, 108쪽)


 열네 살부터 새벽 일찍 학교에 가서 밤 열 시까지 학교에 붙잡힙니다. ‘예비 수험생’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채 가방이 아주 무겁습니다. 보충수업이든 자율학습이든, 오직 교과서와 문제집을 달달 외우기만 해야 하는 나날을 보내면서 생각합니다. 우리가 예비 수험생이라 한다면, 국민학교에서는 중학교에서 배울 시험문제를 조금 쉽게 배운 셈이고, 중학교에서는 고등학교에서 배울 시험문제를 조금 더 쉽게 배우는 셈 아닌가. 이럴 바에는 처음부터 대학입시 문제를 가르쳐서 이 끔찍하고 괴로운 나날을 하루라도 줄여 주어야 옳지 않나.

 시험문제 외우기로 여섯 해를 보내야 한다고 헤아리니 죽을 듯합니다. 그저 자리에 앉히고 그예 책상을 앞에 두고 앉혀서 시험점수가 0.1점이라도 더 나오도록 밀어붙이는 곳이 학교라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그렇다고 1980년대 끝무렵 인천구석에서 어디 대안학교라든지 탈학교라든지 하는 낱말이 떠돌지 않았을 뿐더러, 학생이 학교 바깥에서 떠돌라치면 모조리 나쁜이(불량학생)라는 꼬리표가 붙습니다. 숨을 쉴 구멍이 없으나 숨을 쉬어서는 안 되는 수험생입니다. 쉴 자리가 없지만 쉬어서는 안 되는 수험생입니다. 살아도 죽은 척, 죽어도 죽은 그대로 여섯 해를 견디어야 한다는 수험생입니다.

 이 중학교를 마칠 즈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저항을 합니다. 중학교 졸업사진책을 사지 않기로 합니다. 중학교 졸업사진책에 아이들 이름을 한자로 집어넣는 대목부터 내키지 않지만, 예비 수험생이라는 이름으로 날마다 몽둥이질과 손찌검질과 막말질로 하루 내내 춤추던 이곳을 조금도 떠올리고 싶지 않습니다. 거저 준다 해도 불질러 버리고 싶은 졸업사진책인데 몇 만 원이나 내라 하니 더더욱 사고 싶지 않습니다.

 연합고사를 마칩니다. 이제 연합고사가 끝나니 학교에서는 남은 교과서 진도를 나가지 않습니다.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더는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수업시간을 그냥 넘기지는 않습니다. 비디오를 보여주느니 낮잠을 자라 하느니 운동장에서 공을 차라느니 합니다. 연합고사를 마치고 며칠 뒤인 어느 날, 비디오도 안 보여주고 교사조차 안 들어와서 아주 시끌벅적 법석을 피우는 교실에 수학 교사가 뿔이 난 얼굴로 들어옵니다. 가뜩이나 이학년과 삼학년 때에 아주 지저분한 막말로 아이들 마음밭을 깎아내리거나 비웃던 수학교사인데, 우리가 너무 시끄러워 안 되겠다며 책상 들고 벌을 서라 합니다. 하기는 너무 떠들었으니 조금 벌을 받을 수 있겠지 생각하며 책상을 듭니다. 그런데 이놈 수학교사가 십 분이 지나도록 책상을 내리라 말하지 않습니다. ‘저거 미쳤나?’ ‘중학생으로 보내던 나날 저 수학교사 수업마다 가슴을 후벼파는 막말을 끔찍하게 들었는데, 연합고사까지 끝난 마당에 저이한테서 막말을 또 들으며 책상들기를 이렇게 오래 해야 하나?’

 가슴으로 무언가 북받칩니다. 두 손으로 들던 책상을 교탁 쪽으로 휙 집어던집니다. 나는 맨 뒷자리에 앉았는데, 내 책상은 훨훨 날아 수학교사가 선 바로 옆 칠판에 꽈당 소리 크게 내며 부딪히고 떨어집니다. 마음속으로 수학교사 머리에 맞으라고 빌었으나 오랫동안 책상을 든 탓인지 겨냥을 잘못했습니다. 책상을 들게 한 수학교사는 갖은 비아냥을 늘어놓았으나 이제부터 끽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책상을 내리라 말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들 책상이 없으니 혼자 자리에 털썩 앉습니다. 이렇게 남은 시간을 보냅니다.


.. 출판에는 과대 포장 규제가 없는데 사실 그런 규제가 좀 필요하다. 책을 겉표지로 판단할 위험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대부분 소비자들에게 책 표지 말고는 책을 평가할 다른 판단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 만약 저자의 컬러 사진이 겉표지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면 그 책은 백이면 백, 쓰레기다 ..  (149, 151∼152쪽)


 나한테 중학교 때 일 가운데 떠올릴 만한 일이라면, 연합고사를 마치고 나서 신나게 떠들던 우리 반을 나무라던 수학교사한테 책상을 던진 이때 한 가지 일입니다. 새까맣고 슬프기만 하던 세 해는 내 빛나는 열넷·열다섯·열여섯을 쭈그러뜨렸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떠올릴 만한 일이 있습니다. 이학년 때, 같은 반 동무가 다른 수업을 하는 자리에서 교과서 밑에 소설책을 놓고 읽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지루한 수업에, 따분한 수업에, 졸음 쏟아지는 수업에, 그냥 교과서를 읽는 수업에, 이 아이는 이렇게 오십 분을 부질없이 흘려보내지 않는 길을 아는구나 싶어 아주 크게 놀랐습니다. 기껏해야 공책이나 교과서에 낙서나 하며 보내던 나였지만, 이처럼 교과서 밑에 다른 책을 깔고 읽으면 되는 줄 비로소 알아챕니다.


.. 헤이에서 어떤 특정한 책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여기서는 나에게 다가오는 책만 찾을 수 있다. 원래는 그런 책이 있는지도 몰랐던 책들. 헤이에 오면 전에 한 번도 들어 본 적도 없는 책을 집어들고 … 이따금 나는 엉뚱한 데에 꽂혀 있는 책이나 분류가 안 된 책들 가운데에 보석 같은 책 몇 권이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 재능 있는 작가의 실패한 책에도 멋진 구절이 있을 텐데 그 구절은 무명의 깊은 바닷속에 침몰한 채 영영 물 밖으로 떠오르지 못한다 ..  (56, 114∼115, 270쪽)


 고등학생이 되었다 해서 달라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도드라지게 달라지는 일이 있습니다. 고등학생부터는 밤 열 시 오십 분까지 자율학습을 합니다. 중학생 때보다 50분을 더 합니다. 중학생 때보다 아침 일찍 보충수업을 한 가지 더 합니다. 교과서 가짓수는 더 촘촘히 늘어납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도 새로 지은 학교이지만 도서관이든 도서실이든 없습니다. 그러다가 이학년이 될 때에 조그맣게 도서실 하나 생깁니다. 기껏 갖춘 책이라 해 보았자 추천·필독도서라 할 테지만, 이나마 생긴 일이 더없이 반가우며 고맙습니다. 학교에 도서실이 생긴 일은, 이제 학교에서 ‘교과서 아닌 책을 소지품검사 때 빼앗기지 않으면서 읽을 수 있다’는 소리가 됩니다.

 (2) 참말로 책을 읽는다

 고등학교를 다니며 떠올릴 만한 일이라면, 소지품검사를 하면서 책을 빼앗던 일입니다. 교과서 아닌 책이라면 무턱대고 빼앗습니다. 흔하디흔한 릴케 시이건 황순원 소설이건 가리지 않습니다. 윤동주 시이든 박지원 소설이든 따지지 않습니다. 소지품검사를 끝없이 해대는 교사들 말을 빌면, 교과서가 아닌 책은 몽땅 ‘불온도서’이거나 ‘불량도서’입니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대학입시가 바뀝니다. 학력고사를 없애고 수학능력시험과 본고사가 생깁니다. 학력고사를 없앤다 하니 학생보다 교사가 더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이제껏 ‘쉽게’ 가르치던 틀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니까요. 그러나, 학력고사가 사라지고 수학능력시험이 되면서 ‘교과서 아닌 책을 읽도록’ 문교부에서 길잡이를 내리는 한편 ‘신문을 읽히도록’ 또다른 길잡이를 내립니다. 고등학교 이학년이 될 때부터는 소지품검사를 하며 책을 빼앗지 않습니다.


.. 옛날 사람들은 지금 쓰는 재료와는 성질도 한계도 전혀 다른 재료로 작업했다. 뿐만 아니라 촉감과 냄새도 다르다 … 오늘날 새로 지은 집을 보고 우리가 농담으로라도 이런 감상에 빠질 일이 있을까? 석고보드나 합판을 보고 숭엄함을 느끼게 되지는 않는다. 오늘날 쓰이는 건축 자재는 대부분 우아하게 나이들지 않는다. 그러라고 만든 재료도 아니고. 오직 새것처럼 보이게끔 만들어진 것이다 ..  (23, 28쪽)


 새로 바뀐 대입시험 틀 때문에 이학년부터 수업이 크게 바뀝니다. 처음에는 모든 대학교가 본고사를 치른다 했다가, 하나둘 발뺌을 합니다. 본고사까지 치르겠다는 대학교 숫자가 아주 줄어듭니다. 이에 따라 ‘수학능력시험에 나오는 과목’은 수업을 늘리고, 수학능력시험에조차 안 나오는 과목은 자율학습으로 돌리거나 다른 과목 보충수업으로 뺍니다. 이러면서 제2외국어를 안 가르칩니다. 나는 본고사까지 치러야 하고, 본고사에서 제2외국어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학교에서는 수학능력시험에 제2외국어가 나오지 않을 뿐 아니라 본고사를 치르는 대학교는 몇 군데 없으니 ‘학생 형평’에 따라 제2외국어를 더는 안 가르치겠다고 합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에서 제2외국어 본고사를 치러야 할 학생은 나까지 해서 딱 둘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학원에 다니기로 합니다. 영어 가르치는 학원은 많아도 제2외국어를 가르치는 학원은 없지만, 새로 생긴 본고사 때문에 ‘본고사 제2외국어 특별반’이 새로 생깁니다. 인천시내에서 본고사 제2외국어를 맞이해야 하는 아이들이 학원으로 모입니다. 일본말이나 프랑스말을 배우는 반은 두엇쯤 생기고, 독일말을 배우는 반하고 스페인말을 배우는 반이랑 러시아말을 배우는 반은 딱 하나씩 생깁니다. 우리 반에는 열다섯쯤 나옵니다.

 학원 독일말 강사는 교과서를 교재로 쓸 수 없다 말하고, 당신이 아는 가장 마땅하다는 교재 하나를 이야기하며, 다음 수업까지 이 교재를 사오라 합니다. 동무하고 나는 인천시내 새책방을 모조리 훑으며 독일말 교재를 찾습니다만, 어디에서도 이 교재를 팔지 않습니다. 다음 수업에서 이 교재를 파는 책방이 없다고 이야기하니, 독일말 강사가 하는 말, “헌책방은 가 봤니? 헌책방에 가 보고 없다고 하니?”

 “네? 헌책방이요?” “그래, 헌책방.” “헌책방에는 안 가 봤어요.” “헌책방에 가 봐. 다음 수업에는 꼭 사서 와야 한다.”

 독일말 교재를 사러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로 갑니다. 이무렵 열 군데 즈음 있던 헌책방을 샅샅이 살피고 뒤지지만 독일말 교재는 좀처럼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헌책방에도 없는가 생각하며 풀이 죽습니다. ‘학교에서 정규과목 그대로 가르치면 괜히 다리품 판다며 길에서 시간을 버리지 않잖아. 이게 무슨 짓이람.’ 이제 헌책방은 한 군데 남습니다. 마지막 헌책방으로 들어섭니다. 풀이 죽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자습서 꽂힌 자리를 서성입니다. 어. 있다. 있네.

 찾디찾던 독일말 교재가 하나 보입니다. 게다가 두 권입니다. 두 권을 모두 집어들고 가슴에 포옥 안습니다. 이렇게 있구나. 이렇게 만날 수 있구나. 설레면서 부푼 마음으로 교재 값을 치릅니다. 얼른 공중전화로 동무네 집에 전화해서 알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헌책방을 나서기 앞서 문득 뒤를 돌아봅니다. 이렇게 고마운 일이 다 있나 싶어서, 그저 기뻐서.


.. 아무튼 할머니는 우리가 시골로 이사를 해서 (당신 손자) 모건이 시골에서 자라게 되었다는 소식에 반가워한다. “시골에서 보내는 어린 시절이라, 어른이 되고 나면 결코 누릴 수 없는 것이지.” 할머니가 말한다. “돈이 많은들 무슨 소용이냐, 안 그러니? 나는 절대 도시에서는 못 산다.” … 로마제국 전성기에 자기 뜻으로 로마를 떠난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니면 100년 전 런던을 등진 사람은? 제국에는 끌어당기는 중력이 있어 만물을 그 중심으로 끌어들인다 ..  (95, 272쪽)


 독일말 교재 두 권을 품에 안고 나오는 길에 뒤돌아본 헌책방 책시렁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내 눈에는 교과서와 교재는 하나도 안 꽂힌 ‘여느 책들’이 한가득 보입니다. 학교 도서실을 비웃는 듯한, 인천 시내 구립도서관은 아무것 아니라는 듯한, 여느 책들이 골고루 한가득 꽂힌 책시렁이 보입니다.

 알 수 없는 커다란 덩이가 가슴에 내려앉습니다. 기뻤던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습니다. 책방 문을 열고 나섭니다. 동무한테 전화합니다. 동무는 몹시 좋아합니다. 다음주부터 학원에서 아주 홀가분하게 독일말을 배웁니다. 이듬해 본고사를 치릅니다. 본고사에 나오는 제2외국어 시험은 문제 눈높이가 꽤 높습니다. 학원에서는 초급을 배웠다고 한다면, 시험은 고급이라 할 만합니다. 도무지 모르는 낱말투성이에다가 문제를 읽을 수 없습니다. 본고사를 치르는 내내 ‘학교에서 정규과목으로 배웠으면 더 몰랐겠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 식스펜스 (하우스)는 사랑과 돈을 충분히 쏟으면 아주 멋진 집이 될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 다 우리에게는 여유가 없다. 우리한테는 아기가 있고, 아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아이보다 더 많은 관심을 필요로 하는 집에 살아서는 안 될 것이다 ..  (255쪽)


 독일말 교재를 찾아낸 날은 1992년 7월 27일. 꼭 한 달이 지난 1992년 8월 28일에 헌책방을 다시 찾아갑니다. 학교에서는 학원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 토요일 한 시에 빠져나옵니다. 수험생은 토요일에도 자율학습에 붙잡힙니다.

 자율학습을 빼먹고 찾아가는 헌책방에서 해가 지도록 한 자리에서 꼼짝을 하지 않습니다. 교과서와 자습서에서 이름만 듣던 숱한 시쟁이 소설쟁이 글쟁이 책을 만난 놀라움과 기쁨과 벅참과 보람에 눈을 떼지 못합니다. 이제껏 이름을 듣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책에 박힌 눈을 떨어뜨리지 못합니다. 헌책방 아주머니가 “이제 문 닫을 시간입니다. 나가 주세요.” 하고 부를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안수길 장편소설과 박은식 《한국통사》를 사들고 헌책방을 나섭니다. 깜깜해진 밤거리를 걷습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내 조그마한 가슴에 스며든 울렁이는 책씨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시원한 여름 저녁바람을 쐬면서 집까지 천천히 걸어갑니다. 이제 비로소 책을 만났다는 생각에, 이제부터 참말 책을 읽는다는 생각에,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책을 모르며 살았으며, 내 열여덟이 그동안 얼마나 어둡고 가녀렸는가 하는 생각에, 곰곰이 중얼중얼 읊으며 길바닥을 내려다보고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두 시간쯤 될 길을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갑니다.

 찻길을 내달리는 불 밝힌 버스에는 나와 닮은 수험생이 가득 실렸습니다. 학교옷을 입고 무거운 가방을 들었으며 파리하게 지친 얼굴입니다. 가벼운 발걸음을 보여주는 내 또래는 보이지 않습니다. 무거운 가방처럼 무거운 발길을 질질 끕니다. 어깨에 머리에 가슴에 발에 손에 온통 무겁디무거운 납자루를 쥔 꼴입니다.

 내 가방에도 갖가지 교과서와 참고서와 사전이 들었습니다. 이십 킬로그램은 될 듯 아주 무겁습니다. 여기에 헌책방에서 8500원어치 장만한 책 몇 가지 얹혔습니다. 밤길을 거닐며 길거리 등불 빛에 기대어 《한국통사》를 읽습니다.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느작하느작 걷습니다. 자동차들이 윽박지르듯 마구 달리건 말건 나는 책에 빠져듭니다. 교과서에는 딱 한 줄로 지나가는 박은식이라는 이름으료 《한국통사》라는 책이름이지만, 나는 오래오래 곰삭이면서 책 하나로 마주합니다.

 책을 읽는다 할 때에는 사람을 읽는다는 뜻이요, 삶을 읽는다는 뜻이며, 사랑을 읽는다는 뜻입니다. 열여덟 고등학교 이학년 푸름이가 되어서야 이 뜻을 살짝 들여다봅니다.


 (3) 책마을에서 길을 잃었다는 책을 읽다


 폴 콜린스 님이 쓴 《식스펜스 하우스》(양철북,2011)를 읽습니다. 옆지기랑 두 아이랑 살아가는 바쁜 나날을 쪼개어 읽습니다. 둘째가 태어난 뒤 집일을 도맡을 뿐 아니라 옆지기 몸풀이까지 도맡았습니다. 두 달 남짓 하루에 글 한 줄 읽기란 얼마나 힘들며 빠듯한가를 느끼는 한편, 하루에 글 한 줄 읽을 수 있는 일이란 얼마나 큰 고마움이요 아름다움인가를 느낍니다.

 둘째가 태어나고 석 달이 거의 가까울 무렵, 내 몸이 많이 무너집니다. 이동안 옆지기는 첫째랑 멧자락 마실을 다니면서 몸이 많이 좋아집니다. 내 몸이 많이 무너져 이제 집일을 건사하지 못할 만큼 될 즈음, 옆지기가 씩씩하고 힘차게 집일을 맡아 줍니다. 끙끙 앓으며 드러누운 채 옆지기가 집일 하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몸이 아픈 사람이 몸이 튼튼한 사람을 바라보는 눈높이를 몸으로 겪습니다. 일하는 사람도 힘들다 할 테지만, 일을 할 수 없이 지켜보기만 하는 사람 또한 더없이 힘든 나날인 줄 시나브로 느낍니다.

 아픈 몸을 달래면서 모로 누운 채 《식스펜스 하우스》를 읽습니다. 세 식구가 오순도순 사랑스레 지낼 보금자리를 찾아 먼길을 나섰다가 슬프게 제자리로 돌아오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책마을에서 길을 잃었다기보다 폴 콜린스 당신 삶자락에서 길을 잃었구나 싶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글쓴이 폴 콜린스 님은 당신이 길을 잃은 이야기를 숨기지 않습니다. 당신처럼 길을 잃은 사람들 이야기이든, 아니면 길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제 길을 걷는다는 책마을 사람들 이야기이든, 덧보태거나 깎지 않고 수수하게 들려줍니다.


.. “초콜릿은 어디 있어요?” 계산대 뒤에서 주인 아주머니가 한숨을 짓는다. “아, 떠나요. 문을 닫게 됐어요.” 아주머니가 슬프게 말했다. “하지만, 하지만 …….” 나는 말을 더듬으며 조그만 문방구 안을 둘러본다. “이 가게는 150년 된 가게잖아요!” “맞아요, 그리울 거예요.” 아주머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다. 오래된 가게는 곁길로 밀려나고, 그걸 막을 방법은 아무 데도 없다 … 어쩐지 다이애나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자, 이 이야기를 지켜 주세요. 혹시 내가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  (301, 307∼308쪽)


 길을 잃었대서 바보가 되지 않습니다. 길을 잃은 줄 깨닫지 못하거나 길을 잃었으면서 ‘길을 잃었다는 대목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 바보가 됩니다.

 길을 잃었기에 길을 찾습니다. 예전 길이든 새로운 길이든, 내가 살아갈 길을 찾습니다. 사랑하는 짝꿍이 있으면 둘이 살아갈 길을 찾습니다. 사랑하는 짝꿍하고 낳은 아이가 있으면 셋이나 넷이 살아갈 길을 찾습니다.

 길을 쉬 보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쉬 보이는 길이 꼭 걸을 만하지는 않습니다. 길은 좀처럼 안 보일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안 보이는 길을 찾아 헤매는 나날이 나 스스로 모르던 내 삶길을 조용히 걷던 나날일는지 모릅니다.

 폴 콜린스 님네 세 식구는 새 보금자리를 찾아 미국에서 영국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갑니다. 우리 네 식구는 멧골짜기에 깃든 자그마한 집에서 한 해를 살았는데, 이곳을 떠나 새로 깃들 보금자리를 찾습니다. 도시는 너무 힘들어 시골로 왔는데 다시 도시로 갈 수 없습니다. 마시는 바람과 물과 햇살부터 다르고, 밟거나 스치는 풀줄기부터 다르기에, 도시로 돌아갈 마음이 없습니다. 더 낫거나 더 좋거나 더 깊다 할 시골보다, 우리 네 식구가 조용하면서 아늑하게 어우러질 만한 사랑스러운 시골 보금자리를 찾고 싶습니다. 텔레비전을 모시지 않는 우리 식구가 새소리와 바람소리와 풀벌레소리를 맞아들일 만한 시골 보금자리를 찾고 싶습니다. 자가용을 섬기지 않는 우리 식구가 자전거와 두 다리를 사랑스레 즐길 만한 시골 보금자리를 찾고 싶습니다. 옆지기가 아이 손을 잡고 오르내리면서 찬거리 삼을 풀을 뜯을 멧골이 있는 시골 보금자리를 찾고 싶습니다. 마당 한켠에 나무를 심고 빨랫줄을 드리우며 해바라기를 즐길 만한 시골 보금자리를 찾고 싶습니다.

 옆지기 몸이 시골살이에 발맞추어 차츰차츰 푸른 빛깔을 띄기에, 옆지기가 나중에 둘째를 태우고 다닐 자전거를 새로 장만했습니다. 천천히 푼푼이 모아 이 자전거에 조그마한 수레를 달아야지요. 천천히 푼푼이 돈을 모으는 동안 옆지기는 이 자전거를 사랑하면서 살뜰히 껴안겠지요.

 자전거길이 따로 없어도 됩니다. 우리는 자전거길을 달리지 않아요. 이 나라 모든 사람들이 자가용을 장만해서 고속도로를 달려도 아랑곳할 까닭이 없어요. 우리는 호젓한 시골길을 자전거 두 대로 천천히 달리면 돼요.

 《식스펜스 하우스》를 쓴 폴 콜린스 님은 돈이 없거나 적으니까 헤이온와이에서 좋은 보금자리를 마련하지 못했지만, 폴 콜린스 님은 돈이 없거나 적기 때문에 헤이온와이를 더 깊이 바라보면서 사랑할 수 있었고, 더 따스히 어루만지면서 아끼는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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