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피시'의 지느러미

[문학의 향기] 장재연 / 소설가

2012-08-16     장재연


   <꿈꾸는 자의 나성>(1987)을 읽다 보니 문득 <Waterloo bridge>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흑백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인물의 환상적인 표정과 안개가 자욱한 워터루 다리, 그리고 여주인공을 가혹하게 몰고 갔던 운명의 교차점 등. 그러나 이보다 더욱 또렷이 각인된 것은 '로이' 대위가 여주인공 '마이라'에게 했던 말이다. 로이 대위는 행복한 사랑의 감흥 속에서도 문득 느껴지는 생소함을 연인 마이라에게서 발견하고는 그녀에게 패배주의자, 감상주의자라는 표현을 했었다.

윤흥길의 <꿈꾸는 자의 나성>에도 그러한 패배주의적 성향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허름한 옷차림에 커다란 가방을 들고 후미진 뒷골목 다방의 공중전화 박스에서 L.A행 비행기편을 묻고 다니는 '그'와 직장 상사인 '손대리'이다. 화자인 '나'는 ‘반면교사’라는 일본의 경구처럼 남의 잘못된 점을 보며 자신의 잘못됨을 깨닫는 관찰자인 셈이다.

작중에서 화자인 '나'는 '손대리'에게 강렬한 분노와 반발을 느끼고 있다. '손대리'는 같은 방 동료들 간에 묵계가 되어 있는, 예를 들면 번차례로 점심과 커피 값을 내는 것의 순번을 교묘하게 피해 갈 뿐만 아니라 틈만 나면 수첩에 무엇인가 꼼꼼히 적은 행위로 보여주어 쩨쩨함과 불안감을 안겨주는 사람이다. 동료들은 '손대리'가 수첩에 적는 것이 사원 개개인의 근무동태랄지 비정상적인 사생활에 관한 정보를 적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급기야 작중 화자인 '나'의 선배가 좌천되고 그 자리를 '손대리'가 이어받자 선배의 송별회 자리에서 '손과장'의 본색을 밝혀내기 위한 쇼가 벌어진다. 그러나 그들이 밝혀 낸 것은 '손과장'의 쩨쩨함과 무고가 아니라, 속은 곪아터지면서도 겉으로는 의젓하게 보이려고 애를 쓰는 '사나이다운 자존심'이었다. '손과장'에게는 심장병으로 오래 고생하는 부인이 있어 퇴근길에 직접 시장을 봐야 했기 때문에 수첩에 가계부를 썼던 것이었고 부인의 병치레로 집을 팔아야 될 만큼 가계가 쪼들려서 남들처럼 점심 값이다, 차 값이다 하는 것의 지출을 피해왔다.

한편 찬바람이 부는 가을에도 여전히 철지난 여름옷을 입고 다니며 L.A행 비행기편을 묻고 다니는 '그'는 다방에서 엽차만 시켜먹다가 가는 곳마다 쫓겨난다. 생존싸움에 실패하고 한국 땅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고 판단되는 '그'의 불행한 모습에 대해 '나'는 호사가적인 궁금증과 연민의 정 때문에 그를 추적해나간다. 그는 낙오자이면서 몽상가임에 틀림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가 '그'를 만나려는 이유는 순전히 "이 세상에 낙원이란 게 어디 따로 있을라구요"라는 말을 해주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말은 '그'가 가고 싶어하는 이상향(L.A)에 대한 지적이기도 하고 바로 '나' 자신을 설득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렵게 '그'를 만나게 되면서부터 이 소설의 주제가 밝혀진다. '그'는 '나'를 만나 엔젤피시에 대한 얘기를 한다.

"엔젤피시. 이름이나 생김새가 그럴 듯하지요. 그야말로 천사처럼 착하고 우아한 몸으로 기품 있게 움직이는 놈입니다. 허지만 이름하고는 달라서 사실은 아주 불행한 놈이지요. 녀석의 불행은 성품이 너무 착한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모양은 아무리 그럴 듯해 보여도 바로 그 모양이란 것이 생존에 방해가 될 때는 그걸 과감히 버려야만 합니다. 그런데도 저놈은 여전히 제 몸뚱이보다 큰 지느러미를 치렁치렁 달고 다니면서 그걸로도 모자라서 끝에다 기다란 끈까지 거느리고 있습니다. 바로 그 없어도 무방한, 오히려 없는 편이 생존에 훨씬 더 유리할 거추장스런 장식물들은 굶주린 적들한테 제법 식욕을 돋우는 좋은 표적이 되곤 합니다. 적한테 쫓길 때는 또 불필요한 그 장식들 때문에 동작이 마냥 굼뜨고 게을러져서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하늘나라에 있을 때나 천사지 이 혼탁하고 잡박한 생존의 전쟁터에 내려오면 엔젤피시도 볼장 다 보는 겁니다. 악마가 아니고 천사이기 때문에 숙명적으로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는 거지요."

우리가 사는 곳은 천사들이 사는 하늘나라가 아니다. 그곳은 어디까지나 이상향일 뿐이다. 이 잡박한 세상에서 살아내려면 생존에 방해가 되는 큰 지느러미와 거추장스런 장식물 따윈 없애버려야 하는 것이다. 우아하고 기품 있게 보이는 큰 지느러미와 장식물은 '손대리'에게는 없어야 될 자존심이고 '그'에게 있어선 패배를 건너 뛸 구름다리이며, '마이라'에게는 ‘양심’일 수도 있다. 그들은 모두 엔젤피시였던 것이다. 그들은 천사의 날개 같은 지느러미와 장식물들을 떼어내지 못해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러나 영화와 소설이 다른 점도 있다. 영화 속 '마이라'는 아름다운 지느러미를 떼어내지 못해 죽음을 택했고 소설 속 '그'는 L.A(이상향)을 버리고 자신의 고향(생존의 싸움터)로 돌아간다. 거추장스러운 지느러미를 떼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손대리' 역시 고향으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상처 입은 지느러미를 그대로 달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