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평화를 향한 80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해방까지 독립운동가 5천명 수감

2013-08-17     김호선 시민기자
광복 68주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의 모습
 
서대문 독립공원의 서대문형무속 역사관 붉은 담장길 따라 붉은 건물이 빼곡하다.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10월 일제강점기에 경성감옥으로 시작되어 1945년 해방 때까지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수감시켰다. 당시 수감기록에 의하면 그 수가 5천명에 달했다.
 
해방 이후 현대사에서도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인사들이 수감되었던 곳이다.
그 현장이 이렇게 보전되어 광복절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되고 일제 만행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지하독방

수감시 취조 후 옥사로 이동하기 전 감금했던 곳. 곳곳에서 들려오는 고통의 비명소리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고문의 공포로 휩싸인 공간. 그러나 이러한 지하독방에서도 독립운동가는 만세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감옥내부, 복도 양 옆으로 감방이 있다.

벽관 고문

옴짝달싹할 수도 없이 좁은 공간에 사람을 감금하여 앉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고통을 주었던 고문도구, 벽에 서있는 관이라 하여 벽관이라 한다.
 

수감자 노역 시 탈주를 방지하기 위해 허리에 채웠던 형구(무게 5kg, 길이3m)

용수

수감자 이송 시 일반인에게 독립운동가의 얼굴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얼굴에 씌웠던 도구, 2008년에 발굴되었다 한다.

상자 고문

상자 안쪽에 날카로운 못을 박아 놓고 사람을 상자 안에 집어 넣어 마구 흔들어 못에 찔리게 하여 고통을 주었던 고문도구.

격벽장

수감자들이 운동할 때에 서로 대화하는 것을 방지하고 감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여러 개의 칸막이를 만들고 각 칸에 수감자들을 분리, 수용하여 운동을 시켰던 일종의 운동시설. 1920년대 지었졌다가 해방 이후 철거 되었던 것을 2011년 원 위치에서 약 20m 이전하여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

통한의 미루나무(높이 30m)와 사형장의 모습

광복을 위해 외쳤던 구호들

"바람 앞에 흔들리는 조국, 만 사람들이여 일어나라" 
"죽어서도 차마 놓지 못할 광복의 그 찬란한 꿈"
"흰 저고리 피로 물들어도 웃음으로 밝은 세상 꿈꾸리라"
"그대는 정년 일신의 딸 조선 독립의 화신이었소"

서대문형무소의 망루와 담장

서대문형무소의 울타리로 개소 당시 함석판으로 되어 있던 것을 1923년 벽돌로 다시 4m의 담장과 수감자들의 탈옥을 막고 동태를 감시하기 위해 1930년대 후반 설치되었던 높이 10m의 망루이다.
당장은 총 1,161m 가운데 현재 앞면에 80m, 뒷면에 200m가 보존되어 있다. 망루는 총 6개소 가운데 앞, 뒤면 각 1기씩 2기가 보존되어 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관람 위해서는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5번출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