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키세요, 어르신!”

[복지칼럼] 김영수 / 인천YMCA 갈산종합사회복지관 관장

2013-08-21     김영수

승용차 한 대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 갑자기 ‘빠-앙!’하고 요란한 자동차 경적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돌아보니 지팡이를 짚은 반신불수의 어르신이 힘겹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고 그 때문에 지체된 승용차의 젊은 운전자가 짜증 담긴 경적을 계속 울리고 있었다. 어르신의 느린 발걸음을 견디지 못한 운전자가 소리친다.
“비키세요, 어르신!”
형식은 존댓말이지만 내용은 명령이다. 겉으로는 예의를 갖추었지만 거추장스러우니 비키라는 호통이요 짜증이다. 마치 우리 사회가 노인들에 대해 취하고 있는 태도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현재의 노인세대의 주류는 격변기를 거치면서 자녀교육과 생활을 위해 치열한 노력을 해야만 했던 세대이다. 경제적으로는 자녀교육과 자립지원 등으로 노후대비자원을 지출하였지만, 자녀로부터 부양을 받지 못해 빈곤한 상태이며, 다수가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제도로 부터도 보호를 받지 못하여 생활유지에 어려움을 격고 있는 상태이다. 문화적으로는 문화적 향유의 경험이 별로 없어 TV시청 등 수동적인 문화수용자로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실정이고, 사회적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현재의 주류문화에서 소외받고 있으며, 다양한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진다. 권위적이고 가부장중심의 교육환경 속에서 성장하여 남성 노인의 경우 생활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며, 수평적 관계형성과 자치적 모임 형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그리고 정보사회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노인세대의 경험에 기초한 지식의 가치가 떨어짐에 따라 가정 내에서도 주도권을 잃었다.
자신들이 힘껏 만든 길에서 비켜나야하는 노인들의 형편과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최첨단의 기술로 지어진 빌딩에 감탄하면서도 그 빌딩에 선뜻 들어가기 두렵다. 이 사회를 만든 것이 바로 자신들의 억척스러운 노력 때문이었다는 자부심도 있지만, 이제는 시들어가는 이들로, 곧 떠나야 하는 이들로 대접받는 서러움이 더 크다. 민주세력임을 자부하는 정당의 전 대통령 후보는 노인들은 투표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더니, 젊은 사람들 투표는 독려하면서 노인들은 가급적 투표 하지 않기를 바라는 눈치다. 다 안다 노인들은, 너희가 우리를 무시하는 지 아닌지, 살아온 시간이 얼마인데 그 쯤 모르겠는가?
지난 대통령 선거는 고통스럽고 억척스러운 삶을 살아온 노인들이 그 시절을 함께 겪어온 이들과 그것을 상징하는 인물에 대해 동지애를 적극적으로 표시한 선거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살과 뼈로 만들어 지지 못해 생각과 주장으로 떠도는 가치가 눈물 어린 동지애 앞에 미처 힘을 쓰지 못한 것이다. 노인들의 고난하고 억척스럽던 삶의 과정과 이제는 주변을 서성거리는 처지에 대한 한탄을 무시하지 마시라. “비키세요, 어르신!”이라 하지 말고 그 힘겹고 느린 발걸음에 맞출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