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바지, 한 번 입었는데 더러워졌으니 교환해 달라고?

[기획연재] 감정노동자들의 고충을 나누다 ⑨-아울렛매장 점원

2014-12-30     이재은 기자

지난 25일에 만난 이선아(가명) 씨는 막 일을 마치고 온 참이었다. 올해 스무 살, 선아 씨는 주름치마에 도트가 새겨진 블루 계열 카디건을 입고 있었다. “원래는 정해진 근무복이 있는데 연말이라 분위기 내라고 해서 요즘에는 사복을 입어요.”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그런지 평일에도 매장에 사람이 많아요. 점심시간 외에는 앉아있을 시간도 없어요.”

선아 씨는 인문계고에 진학했지만 고3 1년간 위탁 학교인 인천산업정보학교 패션과에 다녔다. 패션에 관한 전반적인 이론, 포토샵 등을 배웠고 실기 시간에는 옷을 만들기도 했다. 졸업하면서 패션, 매장관리 자격증인 숍마스터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녀의 꿈은 패션관련 잡지사에서 일하는 것이다. 옷을 디피하고, 사진을 찍고,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다. 옷 매장에서 일하는 이유도 관심 있는 ‘패션’의 현장 경험을 쌓기 위해서다.

인천의 아울렛 매장에서 일하기 전에는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에 다녔다. 작년 이맘때쯤 3개월 남짓 일했는데 거리도 멀고 종일 손님을 상대해야 하는 게 힘들었다. SPA 매장과 달리 손님이 올 때마다 다가가 말을 걸어야 하는 게 싫었다. 급여나 근무조건이 좋은 것도 아니어서 인천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같은 판매직이라도 SPA 매장이 편해요.”

SPA는 ‘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의 약자로 생산부터 소매, 유통까지 직접 맡는 패션 업체를 말한다. 백화점의 고비용 유통을 피해 대형 직영매장을 운영, 비용을 절감시켜 싼 가격에 제품을 공급한다. 소비자의 요구를 정확하고 빠르게 캐치하여 상품에 반영시키는 신 유통업체다. 시장상황에 따라 1~2주 만에 ‘다품종 대량공급’이 가능하며, SPA를 ‘패스트 패션’이라고도 부른다. 지오다노, 유니클로, H&M등이 SPA 브랜드에 속한다.

직원은 손님이 필요할 때 도와주면 되고 손님은 자유롭게 물건을 살펴보고 입어 볼 수 있어 부담이 없다. 하지만 타 브랜드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탓인지 쉽게 사고 쉽게 포기하는 고객이 많다. 선아 씨는 “백화점이 상대적으로 ‘진상’이 적은 것 같다”고 했다.

오픈조는 9시반부터 6시반까지, 마감조는 오후 1시에 출근해서 뒷정리 마치고 10시반에 퇴근한다. 점장이 주말에 다음 주 스케줄을 알려주면 일주일 단위로 일하고 주 5일 근무한다.

손님의 쇼핑을 돕는 일 외에 어떤 일을 할까.

“본사에서 이게 이번 시즌 메인이라고 알려 와요. 디스플레이(디피) 방법도 알려주고요. 그대로 디피해서 사진 찍어 보내면 본사에서 피드백 해주고, 지적사항 있으면 바꾸고요. 세일을 자주 하는데 품목이 정해지면 안내 종이를 만드는 것도 우리 몫이에요.”

어떤 점이 힘든지 물었다.

“하는 일마다 힘들어요. 물건을 갖고 오는 건 무거워서 힘들고 물건이 비면 fill up(채워 넣는 것) 해야 하는데 물품수가 많아 창고에 물건이 어디 있는지 잘 모르니 힘들고. 하는 업무마다 쉬운 건 없어요. 캐셔는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하거든요. 가격표를 떼면 환불이 안 된다고 얘기해 주는데도 귀 기울여 듣지 않고 심지어 더러워진 옷, 입었던 옷을 가지고 와요.”

“창고 정리하면서 동료랑 얘기했는데 왜 일 안하고 떠드느냐고 지적 받기도 하죠. 일 하면서 얘기한 거라고 대답하면 말대꾸하지 말라고 하고요. 잘못한 점은 지적받는 게 당연하지만 윗사람이 하는 말을 무조건 들어야 하는 건 아니죠. 윗사람도 자기 책임을 지지 않고 업무능력이 떨어지면 싸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손님들이 오는데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을 대상으로 한 캐주얼이 많다보니 아무래도 젊은층이 많이 찾는다.

“흰 오버바지를 환불해 달라고 했던 손님이 기억에 남아요. 텍도 없고 바지도 입었더라고요. 엉덩이가 시커매졌다면서 이렇게 쉽게 더러워진 걸 어떻게 입느냐고요. 흰색 바지잖아요. 상담실 쪽에서 교환해 달라고 해서 환불해준 적이 있어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지만 매장은 고객의 요구를 최대한 들어주는 편이에요. 그런 손님을 대할 때마다 일하기 싫다, 저런 사람 보기 싫다, 응대해주기 싫다는 기분이 들어요.”

1시간에서 1시간반 단위로 계산대, 피팅룸, fill-up 등으로 업무 위치를 바꾼다. 한 장소에만 있으면 지루하고 주말에는 계산대의 줄이 길어서 오래 하기 버겁기 때문이다.

선아 씨는 한 달에 120만원 정도를 받는다. “제 또래 친구들에 비해 많이 버는 편”이라고 했다. “친구들은 주말에만 일하거나 평일에 야간 알바를 하는데 그렇게 해도 3-40밖에 못 받거든요.”

요즘은 이유 없이 힘들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일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연말이라 그런지 몸도 마음도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가 많단다. 선아 씨는 내년에 미국에서 ‘패션 마케팅’을 공부할 생각이다. 제 손으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적금을 붓고, 틈틈이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할까.

“딱히 푸는 방법은 없어요. 친구들한테 일 얘기를 별로 안 하거든요. 저처럼 사회생활 하는 친구도 없고요. 외향적인 성격이지만 매일 손님 만나는 거 자체가 귀찮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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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간다. 내 몸은 아직 일할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목숨을 부지하려면’ 기계에 내 시간을 맞춰야 한다. 감정의 불일치. 고객에게 마냥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는 인식도 마찬가지다. ‘판매원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므로’ 마음 상태와 관계없이 언제나 웃을 수는 없다.

마우스를 눌렀는데 화면이 바뀌지 않을 때 현대인은 ‘3초 만에’ 땀이 난다고 한다. 11초가 지나도 변화가 없으면 심장박동수가 유의미하게 증가하고 심장에 부하가 간다. 스트레스로 말미암은 심혈관계 질환은 이런 식으로 발생한다. 우리는 인터넷을 하면서도 끝없이 감정노동을 한다.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는 업무가 40% 이상을 차지하는 감정노동자. 최근 이들과 관련된 사건이 뉴스에 자주 나온다. 입주민의 폭언으로 자살한 아파트 경비원, 대기업 임원의 비행기 승무원 폭행 사건 등. 감정노동자의 비애는 ‘갑질의 비애’로 이어진다.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을’을 함부로 대해도 좋을 사람으로 무시한다. ‘서비스 제공자인 당신은 업무 시간 내내 감정을 억제해야만 해. 인터넷을 통한 간접구매가 아닌 직접 쇼핑을 하는 건 당신의 감정노동비도 지불한다는 의미일 테니까.’ 여전히 얄궂은 소비자가 있다.

자본주의의 병폐, 돈이면 다 된다는 잘못된 생각, 사람에 대한 예의와 존중 부족, 경쟁 등 이유는 다변적이고 복잡하다. [감정노동자의 고충을 다루다]를 연재하면서 간병인, 홈플러스 캐셔, 미추홀콜센터 상담원, 헤어디자이너, 응급실 간호사, SK브로드밴드 기사, 학습지교사 등을 인터뷰했다. 대부분의 인터뷰이들은 안하무인인 고객보다 자신을 믿고 인정해주지 않는 조직과 주변 사람들의 무관심에 더 실망하고 있었다. 지난 4월 옥상에서 자살 소동을 벌인 백화점 직원이 고객의 폭언도 참을 수 없었지만 백화점이 전적으로 고객 편이 되어 자신의 잘못을 몰아세운 데 더 억울해했던 것처럼.

많은 사람이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인구의 절반 이상인 감정노동자를 향한 관심과 배려가 경원시되면 안 된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안전할 수 없다. 그동안 [감정노동자의 고충을 다루다]를 지켜봐주신 독자에게 감사드리며 연재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