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작은 클럽에서 연주된 세계 정상의 재즈 '관객 모두 놀랐다’

[공연리뷰] 띠에리 마이야르 트리오 인천공연, 프랑스 재즈의 중심 명쾌히 보여줘

2016-04-22     배영수 기자

신포동 재즈 클럽 ‘버텀 라인’서 열린 띠에리 마이야르 트리오 인천 공연 현장. ⓒ배영수

명품이나 주요 관광지로 사실 더 유명하지만, 최근 한국의 보컬리스트 나윤선이 정상급 활약을 펼치는 나라로도 재즈 팬들에게 잘 알려진 나라 프랑스는, 사실 오래 전부터 유럽 재즈 신의 중심에 있었다. 과거 본토 미국의 재즈 신이 이 모달, 프리 재즈와 같이 연주는 물론 감상에 있어서도 난이도가 다소 높은 연주 접근을 받아들이면서, 이에 염증을 느낀 뮤지션들이 미국을 떠나 정착한 곳들 중 가장 많은 빈도를 프랑스가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 덱스터 고든이나 버드 파웰 등 미국에서 재즈를 하다 유럽으로 건너간 사례는 [재즈 총론] 등 재즈사를 깊게 다룬 서적을 통해 내용을 얼마든 접할 수 있다.

실제 프랑스는 지금도 유럽에서 재즈 뮤지션들이  ‘메인스트림’으로 여기는 나라다. 자국의 재즈 거장 미셸 패트루치아니를 비롯해 앙리 텍시에르,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지오바니 미라바시와 파올로 프레주, 그리고 스위스 출신 띠에리 랑 등 프랑스에서 활약하는 뮤지션들은 현재 세계 재즈 신에서 굉장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얀 룬드그렌과 야곱 칼존, 닐스 란드그렌과 울프 바케니우스 등 북유럽 출신의 재즈 스타들 역시 주무대를 프랑스로 삼고 있을 정도다. 프랑스가 유럽 재즈 신의 중심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Naive], [Harmonia Mundi], [Cristal] 등 세계적인 지명도를 갖고 있는 유럽 음반사를 통해 꾸준히 앨범을 내며 유럽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는 띠에리 마이야르 역시 프랑스가 배출한 세계적인 뮤지션 중 한 명이다. 그가 바로 지난 21일 인천을 찾아 세계적인 수준의 재즈 무대를 선사했다. 중구 신포동 재즈 클럽 ‘버텀 라인’이 진행한 이 공연은 이날 밤 8시 30분에 시작, 두 시간여 진행되며 “왜 프랑스가 유럽 재즈의 중심에 서 있는가”를 명쾌히 보여줬다.
 

서정적인 피아노 터치와 재즈의 즉흥성을 모자람 없이 진중히 구현한 이날 공연의 주인공, 피아니스트 띠에리 마이야르. ⓒ배영수

띠에리 마이야르는 세계 재즈 평단 전반으로부터 “리듬에 대한 접근이 특히 뛰어나지만 멜로디의 아름다움 역시 놓치지 않는다”는 극찬을 받고 있다. 이 찬사는, ‘몽트뢰’나 ‘몬트리올’ 등에서 열리는 세계구급 재즈 페스티벌 무대가 아닌 ‘인천의 작은 클럽’에서 그대로 증명됐다. 짝수 박에 박자를 타는 재즈의 기본 연주서부터, 다른 장르와의 융합을 보여주는 소위 ‘하이브리드’한 특성의 연주, 그리고 유럽의 고상한 기운을 전해주는 리리컬한 멜로디 감성까지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세 연주자들의 기본적인 합(合)은 물론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기자는 지난 2014년,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렸던 ‘유러피언 재즈 페스티벌’을 통해 이들의 모습을 본 바가 있다. 당시에도 이들은 다른 연주자들이 있었음에도 공연을 보러 온 팬들로부터 단연 이목을 끌었었다. 물론 이날 ‘버텀 라인’에 모인 관객들 대부분은 2014년 내한 당시의 연주를 볼 수는 없었을 거라 여겨지기는 하지만, 당시 무대도 경험한 기자로서는 멜로디의 아름다움과 재즈의 즉흥성을 조화롭게 버무리는 능력이 변치 않았음을 직감하고 이내 감흥에 젖었다.
 
이날 연주의 가장 큰 특징이라 감흥의 지점이라면 세 연주자가 보여주는 음악적인 특징이 명확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그 특징을 완벽하게 섞어내 하나의 유기체로 완성하는 지점, 그러니까 현 유럽 재즈의 동향과 그 동향에서 보이는 장점만을 걸러 보여줬다는 데에 있다.
 

이날 재즈 팬들에게 가장 주목을 받은 인물인 베이시스트 도미니크 드 피아자. 이탈리아 재즈계에서 내로라하는 연주자 중 하나다. ⓒ배영수

즉흥적인 연주도 물론 뛰어나지만 한때는 클래식을 공부했던 피아니스트 띠에리 마이야르의 서정적이고 진중한 연주 접근법, 록 기타리스트도 울고 갈 만큼의 속주(손가락을 빠르게 놀려 연주하는 것)를 줄이 굵은 베이스로 구현하며 연주 한음 한음에 대해 전혀 작위성이 없이 자연스러운 진행을 보이는 도미니크 드 피아자, 그리고 젊은 패기와 강한 타점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걸 관객 앞에서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게 늘어놓는 드러머 요한 슈미트의 연주적 특징은, 사실 그렇게 맞닿는 지점은 없다고 판단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세 명이 합을 이루는 모습은 끈끈함과 일치성을 보여주며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이날 기자는 연주를 지켜보는 관객들의 모습도 예의주시했다. 그리고 관객들이 감동에 젖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실제 많은 관객들이 공연 직후 “인천 클럽서도 이러한 재즈 연주회가 있을 수 있다”며 반응을 보였고, 관객들이 이날 현장에서 절대 저렴하지 않은 수준(장당 2만 원)으로 판매된 이들의 연주 CD를 수십 장을 구입해 사인을 받는 등의 결과를 통해 명쾌히 증명됐다.
 
흔히 클럽 공연의 연주자들 중 이미 음반을 발매한 경우에는, 연주를 전후해 카운터에서 음반을 비치해 관객들이 구매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기자가 인천 클럽에서 열린 음반 발매 뮤지션들의 공연들도 꽤나 많이 봤지만, 그게 실제로 음반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는 한 회당 흔히 5장 미만에 불과할 때가 많았다. 이미 한국에는 디지털 음원 시장의 확대로 소위 ‘피지컬 음원(음반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음원으로 LP와 CD, 테이프 등을 말한다 - 형태가 없는 mp3, FLAC 등은 이에 포함되지 않음)’으로 분류되는 CD의 시대가 저문 지 오래이기 때문.
 
이날 공연을 주최한 버텀 라인의 임승경 매니저는 “이들이 역대 버텀 라인에서 공연한 뮤지션들 중 가장 많은 수의 CD를 판매한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팀의 외국인 매니저가 판매수를 체크하고 우리에게 미처 알려주지 않아 정확한 판매 수 집계가 없지만, 최소 30장에서 최대 50장까지는 판매한 것 같았다”고 전했다.
 

화려하고 강한 타점으로 유럽 재즈의 진수를 보여준 드러머 요한 슈미트. ⓒ배영수

이런 현상은 한국 재즈 신의 동향을 비교적 잘 파악하고 있는 기자로서는 무척 신기한 경험이기도 했다. 이날 연주회에서 띠에리 마이야르 트리오는 ‘Autumn Leaves’라던지 ‘My Funny Valentin’과 같은 익숙한 재즈 스탠더드를 전혀 연주하지 않고 자신들의 창작넘버를 주 레퍼토리로 들고 나왔다. “우리 음악은 이러이러하고 관객에 끼워 맞추거나 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보였던 셈.
 
오랜 기간 재즈를 들어왔던 기자도 그랬지만, ‘최소한’은 기자만큼 재즈를 들어왔을 버텀 라인의 관계자들에게도 띠에리 마이야르의 연주 레퍼토리는 무척 낯설기 짝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서울도 아닌 인천의 관객들, 그러니까 이 연주곡 모두를 대부분 알지 못할 이들이 이렇게까지 반응을 보이며 수십 장의 음반(그것도 장당 2만 원이라는 높은 가격이었다)이 현장에서 판매되는 것은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움’의 수준이었다. 실제 이들이 들고 와 판매한 총 4타이틀의 앨범 중 2010년 발매반 [4 Essential]은 현장에서 품절까지 되기도 했다.
 
도서주민들로 구성된 북도면 인천공항 피해대책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는 차광윤씨는 “<인천in>의 공연소식 기사 보고 너무 궁금해서 왔는데, 사는 곳과 아주 멀지 않은 곳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무대를 불과 3만 원의 가격에 보게 될 줄은 몰랐다”면서 “공연을 기획한 버텀 라인 측에도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날 공연을 두고 주최 측인 버텀 라인의 허정선 대표는 “공연을 진행하면서 관객들도 챙겨야 하고 눈코 뜰 새 없이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그들의 연주가 귀에 아름답게 다가올 만큼 인상적이었다”면서 “지난 1994년 버텀 라인을 인수받아 운영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퀄리티가 높은 무대를 경험했다고 평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띠에리 마이야르는 공연을 마치고 기자와의 대화 중 “인천 공연이 끝나면 국내에서 연주회가 또 있고 그걸 마치면 일단 출국할 예정인데, 특히 인천 관객들의 반응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연주 끝나고 멀지 않은 때에 다시 한 번 인천을 찾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는 “다음에 인천을 오면 두 번의 연주회를 가질 예정”이라며 “오늘 봤던 분들을 그때도 꼭 또 뵈었으면 좋겠다”며 소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