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당선과 북-미 관계의 변화

[특별기고] 지창영 / 시인, 평화협정운동인천본부 대표

2016-11-10     지창영

미군 철수를 들고 나온 트럼프
 
미국 대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것을 한국에서는 특히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향후 북코리아와 미국 관계에도 많은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고 그에 따라 한반도에도 큰 변화가 올 것이라는 예상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분명 이제까지 보지 못한 변화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는 트럼프가 당선되지 않았어도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들이다.
 
한반도와 관련된 트럼프의 주장에서 파격적인 면들이 많지만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미군 철수론이다. 그의 말대로 된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변화를 동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해 볼 일이 있다.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됐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의 정책을 움직이는 것은 대통령 한 사람이 아니다.
 
미국은 주한 미군 철수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것은 북-미 사이의 평화협정과 관계가 있다. 문제는 평화협정이 미국의 호의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은 분명 아시아 패권을 놓기 싫어한다. 그것이 아시아회귀(Pivot to Asia) 전략과 그에 따른 한미일 삼각동맹 공고화로 나타난다.
 
그러나 현실은 미국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 핵심에 북코리아가 있다. 북코리아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에 맞서면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략핵무기를 배치하고 미국의 안전을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나라가 됐기 때문이다. 많은 분석가들이 이 점을 간과하거나 과소평가하는데, 사실 이는 현재의 국제정세를 분석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핵심 열쇠다.
 
역사가 증명하는 것처럼 미국은 약한 나라는 힘으로 굴복시키기를 주저하지 않지만 강한 나라 앞에서는 대화 카드를 꺼내 든다. 약한 나라를 힘으로 굴복시킨 최근의 사례로 아프간 침략(2001년)과 이라크 침략(2003년)을 들 수 있다. 힘으로 굴복시키기를 포기하고 공존 관계로 전환한 사례로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2015. 7. 1.) 그리고 이란과의 핵협상 타결(2015. 7. 14.)이 있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있는데 이는 미국과 북코리아와의 관계 개선을 전망하는 데 참고할 만한 사례다.

 
중-미 관계 개선을 추동했던 중국의 핵무장
 
중국이 원자탄을 개발(1964년)하고 수소탄을 개발(1967년)한 데 이어 인공위성을 발사(1970년)하자 미국은 중국과의 대결 정책을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국무장관 키신저가 베이징을 방문(1971년)하고 같은 해에 닉슨 대통령이 방중하면서 중국과의 핵미사일 대결전은 종식되고 중-미 관계는 정상화되었다. 1979년에는 중국을 공식 승인하고 외교관계를 수립하면서 미국은 그동안 우호적으로 지냈던 대만과의 국교를 단절하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중요한 것은 그와 유사한 일이 한반도와 미국 사이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자리에 북한을, 대만의 자리에 남한을 대입해 놓고 생각하면 그 흐름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중국이 그랬던 것처럼 원자탄을 개발했다. 인공위성을 발사하여 궤도에 올려놓았고 수소탄 시험도 단행(2016년 1월)했다. 미국은 결국 ‘전략적 인내’ 정책을 더 이상 끌고 나갈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 결국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들어 평화협정 논의가 물밑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그것이 간혹 수면 위로 드러나는 일이 잦아지는 것은 이러한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할 명분이 사라진다. 미군 철수의 핑계 거리였던 북한의 위협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트럼프는 미군 철수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했던 것이다. 트럼프가 후보 시절에 미군 철수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트럼프의 미군 철수론은’ 북-미 대결의 막바지에서 미국이 선택한 출구 전략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트럼프는 주한 미군 철수도 불사하겠다는 언급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 그의 발언 속에는 미국 엘리트 집단의 속내가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어차피 미군은 한반도에서 철수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가 미리 떠들어 놓으면 미군을 빼 간다 해도 그것은 미국의 의지에 의한 철수라고 세계 앞에 말할 수 있다. (2016. 6. 29. 인천in 이슈칼럼, ‘북-미 평화협정 어디까지 왔나 - 도널드 트럼프와 미국의 출구전략’>, http://bit.ly/2fTIP4z)

 
미국에게 공포의 대상이자 대화의 상대인 북코리아
 
결국 트럼프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북한과 관련하여 그가 할 일은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는 것이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북의 지도자 김정은을 만나겠다고 한 발언은 실현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과 관련하여 트럼프가 쏟아낸 발언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그의 말에서 미국이 북에 대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핵심 생각을 짚어낼 수 있다. 하나는 북이 공포의 대상이라는 점이고 나머지 하나는 대화밖에 길이 없다는 현실 인식이다.
 
북을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는 미국의 내심을 읽을 수 있는 발언을 보자. 1월 10일 아이오와주 유세에서 트럼프는 김정은 위원장이 25~26살의 어린 나이에 군부를 장악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이제 그는 지배자다, 놀라운 일”이라고 평하는 한편 “그는 고모부도 제거했고 이 사람 저사람 다 제거했다”며 “이 사내는 게임 같은 걸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그 남자와 게임을 할 수 없다”고도 말했다. 이를 한 마디로 축약하면 우리(미국)는 김정은 위원장을 상대하여 밀고 당기고 할 형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만큼 북코리아는 공포의 대상인 것이다.
 
북과의 대화를 시사하는 발언들을 보자. “김정은과 북핵 문제를 놓고 대화할 것이며 대화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5월17일 영국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미국에 온다면 만나서 햄버거를 먹으며 더 나은 핵 협상을 하겠다”(6월15일 애틀랜타 유세에서) 라는 등의 발언이 있었다. 물론 보수층의 눈을 의식하여 그 반대 되는 발언도 쏟아냈고 때로는 오락가락 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숨은 뜻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향후 행보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북에서는 일찍부터 트럼프를 ‘현명한 정치인’, ‘선견지명 있는 대통령 후보감’이라고 하면서 힐러리 클린턴보다 호의적인 평가를 하고 있었다. 결국 북에서 호의적으로 보고 있는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고 그는 미군 철수를 주장한다. 이로써 향후 펼쳐질 북-미 간의 대결과 대화의 향방은 대략 정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2017년 1월 말경 임기를 시작하면서 북과의 새로운 관계 수립을 국정 우선순위의 상단에 둘 것이다. 빠르면 2017년 상반기에는 획기적인 변화가 공식화될 것으로 보인다. 북-미 사이의 평화협정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될 것이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와 북코리아의 지도자 김정은이 손을 맞잡는 장면이 전세계 뉴스를 장식하는 날을 머지않아 보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국제정세는 변화무쌍한 것이어서 어떤 우여곡절을 겪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변화가 큰 시기인 만큼 위험 또한 내재해 있을 것이다. 특히 미국과 한국의 보수 기득권층 일부는 목숨을 걸고 평화협정을 방해할 개연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최악의 경우 크고 작은 전쟁의 위험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좌우로 굽이치는 일이 있을지라도 가고 있는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북-미 관계는 이미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이 점점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다.
 
 
관련 글(1) : 점점 명확해지는 북-미 평화협정의 징후
http://incheonin.com/2014/news/news_view.php?sq=31686&m_no=2&sec=2
 
관련 글(2) : 대북 제재 결의안 2270호에 숨겨진 비밀
http://incheonin.com/2014/news/news_view.php?sq=31777&m_no=2&sec=2
 
관련 글(3) : 미국 합참의장의 고백(“한반도 전쟁의 주도권을 북코리아가 잡을 수 있다.”)
http://incheonin.com/2014/news/news_view.php?sq=32101&m_no=2&sec=2
 
관련 글(4) : 북-미 평화협정 어디까지 왔나 - 도널드 트럼프와 미국의 출구전략
http://incheonin.com/2014/news/news_view.php?m_no=2&sq=33364&thread=002001017&sec=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