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고 잘 자는데 왜 자꾸만 힘이 빠지는지"

(131) 붕붕카할머니와 쫑

2017-03-24     김인자
 
심계옥엄니 사랑터 가시는 아침.
이제는 완연한 봄이다. 하루가 다르게 아파트 화단의 봄 새싹들이 쑥쑥 자라고 있다. 신기하고 반가운 자연의 변화. 따뜻한 햇살에 할머니들이 그림책벤치에 나와 계실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나로서는 매일 매일 쪼꼼씩 달라지는 온도가 반갑고 고맙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어 안녕~"
"아고, 오랜만에 뵙네여."
엘리베이터가 2층에 서고 붕붕카할머니가 붕붕카를 조심스레 미시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오신다. 엘리베이터 밖에는 붕붕카할머니 며느님이 13년 산 개 쫑을 안고 서있다.
 
"예, 지금 가세요? 몸은 좀 어떠셔요?"
"그냥 그렇지요."
"오늘은 일찍 가시네요."
"예 아들이 일찍 가믄 일찍 가고 늦게 가믄 늦게 가고 저야 아들가는 김에 병원가는 것이니, 아들 갈 때가 저 갈 때지여. 그런데 어르신은 센터 가는 시간이 좀 늦어지신거 같은데여 ?"
"예, 한 20분 정도 늦어졌어여."
 
엘리베이터안에서 심계옥엄니와 붕붕카할머니가 주거니 받거니 하시는 말씀.
매일 아침 병원에 가시는 붕붕카할머니.
 
붕붕카를 잡고 계시던 붕붕카할머니가 갑자기 휘청 하신다.
"이런 클나시겠네."
지팡이 짚은 심계옥엄니가 붕붕카할머니 팔을 얼른 붙잡으신다.
"에고, 감사합니다. 요즘은 붙잡고 섰어도 다리에 히마리가 없어서 일케 홀딱 꺾이니 원..."
"그르게나 말입니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만치 자고 그르는데 몸땡이는 날이 갈수록 왜 자꾸만 힘이 빠지는지..."
"그르게나 말입니다. 백 살을 산다구쳐두 잠든날 병든날 빼고 나면 살 날이 얼마나 된다고..." "그렇치않아 그렇지요..."
아침부터 우리 두 할무니들 이야기가 참으로 철학적이시다.
 
미리 계단으로 걸어내려온 붕붕카할머니 며느님이랑 13년 된 개 쫑. 1층에서 할머니들을 기다린다. 그러고보니 쫑 옷이 또 바뀌었다.
 
"쫑~ 너 패셔니스타구나. 근데 잠옷같은데?"
"네, 맞아요. 잠옷."
잠옷바람에 붕붕카할머니 병원가시는 길 배웅 나온 쫑.
나오자마자 시원하게 오줌 한번 쫘~악 갈기시고~
 
"우와 쫑, 너 시원하겠다야아~~ 잠옷 입고 할무니 배웅나왔어?"
어제만 해도 쫑 옷이 두터운 겨울옷이었는데 오늘은 얇은 면티다.
"그르게 말이야. 손녀딸이 이쁜거는 죄다 사다 날라여. 개 옷이 을마나 많은지 몰라.
죽으믄 다 없애야 될걸 뭐하러 그렇게 사날르는지.
옷도 많아봤자야. 한 개만 있어도 그저 가벼운게 최고야.
아프니까 내몸땡이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어. 옷이 무거우믄 어깨가 더 아퍼.
그래서 얇은거 하나 입혀도 내 가만 있었지. 쟤도 사람나이로 치믄 거의 백 살이 다 되가는걸. 내 처지나 저놈 처지나 똑같은 걸 뭐."
 
붕붕카할머니가 아드님차 타시고 병원으로 가시고도 한참 동안을 늙은 개 쫑은 할머니가 떠난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쫑 춥다. 언능 들어가라."
그런데 쫑은 심계옥엄니를 사랑터차에 태워드리고 왔는데도 아직 그 자리에 고대로 서있다.
"쫑, 아직 안들어갔어?"
"예... 쉬하느라."
"쉬요? 아까 나올 때 했잖아여."
"예, 자주 해요."
오줌 양도 많고 백 살이 되가는데도 그래도 쫑은 건강한 것 같다.
"예 많이 눠여. 한동안은 찔끔찔금 흘리고 다니더니 집안에만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아 그릉가 싶어 아침 저녁으로 데리고 나와요. 그랬더니 오줌 지리는거 딱 멈추더라고요."
"와 신기하네요. 나이 먹어서 괄약근 조절 안되는 것도 울 할무니들하고 똑같네요."
"네, 쟤도 우리 시아버님 닮았나봐여. 하루에 두 번은 꼭 데리고 나와야해요. 문 앞에 가서 낑낑거려요. 나가자고. 그러구 나오면 아파트를 크게 한 바퀴 돌아야돼요."
"쫑도 왔다갔다 할아버지 처럼 산책을 좋아하는군요."
"예~똥도 싸고 오줌도 싸고 지가 다니는 길로 한바퀴 돌아야되고. 자기가 가는 코스가 딱 정해져 있어여."
 
한동안 붕붕카 할머니 짝꿍인 왔다갔다할아버지 산책길에 늘 따라 다녔던 붕붕카할머니와 왔다갔다할아버지의 착한 며느리.
오늘은 왔다갔다할아버지 대신 늙은 개 쫑 뒤를 조용히 뒤따라간다.
이 세상에는 마음이 곱고 따뜻한 분들이 참 많다. 개도 주인의 그 마음을 닮는거 같다.
 
"쫑 이쪽으로 가야지~"
늘 저 가던 코스가 있다던 쫑.
오늘은 내 코스가 궁금한 걸까?
자꾸만 쫑이 내 꼬랑지를 쫄랑쫄랑 따라온다.
"쫑, 내가 가는 길이 궁금해?"
 
그래 가자, 가자.
우리 함께 가보자.
너 가고 싶은 곳,
나 가고 싶은 곳.
우리 함께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