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글들이, 살아있는 가슴에”

⑮ 배다리 헌책방거리의 터줏대감 아벨서점

2019-04-17     배영수 기자



아벨서점 안은 온통 헌책 뿐이다. “헌책이라면 없는 게 없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보유 서적의 양이 많다. ⓒ배영수

 

지난 2017년 인천문화재단은 주민들이 직접 영유하고 창조하는 생활문화예술 활동을 민간 공간 차원에서 장려해주기 위해 ‘동네방네 아지트’라는 사업을 추진,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이 사업들은 올해도 계속된다. <인천in>은 인천시가 펼치고 있는  '천개의 오아시스' 사업과 동네방네 아지트 사업에 선정된 공간을 비롯해 미선정 공간 혹은 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공간 중 생활문화예술 차원의 문화공간으로서 정체성을 갖고 있는 공간을 소개한다. 



아벨서점의 곽현숙 대표. ⓒ배영수


 
2년여 전쯤 케이블 채널 ‘tvN’을 통해 방영된 드라마 ‘도깨비’가 인천 곳곳에서 촬영된 것이 입소문을 탄 적이 있다. 여러 곳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외지인들이 가장 많이 찾았던 곳이 배다리 헌책방거리였다. 다른 여러 장소들과는 다른 유니크한 이곳 만의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정작 이곳에 오래 거주한 주민들이 볼거리를 찾아온 외지인들을 보는 시선은 곱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오래 살아오며 만들어진 터전이 '도깨비'라는 이벤트에 모두 가려지는 것 같은 느낌은 거주민들에겐 일종의 ‘박탈감’으로 찾아왔으리라.
 
한국전쟁 직전이던 1950년 5월에 동구 금곡동에서 태어나 1970년대부터 헌책방거리에서 책방 일을 천직처럼 여겨 온 아벨서점의 곽현숙 대표도 그러했다.

“자괴감이 컸지. 몇년 전부터 인천시 등이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장소로 이곳을 조명하는 분위기가 있긴 했는데, 여기 주민들이 수십 년 살아오면서 형성된 분위기가 있거든. 주민들에게는 생활 자체인데 특별한 시각으로 보는 게 어처구니도 없고 그래. 지역마다 향수라는 게 있잖아.”
 
아벨서점이 지금의 자리에 터를 잡은 때가 1995년이지만, 곽 대표는 1973년 창영복지회관 맞은편 터(현재 카페가 들어서 있음) 에 책방을 개업한 이후 다사다난한 과정을 거치며 지금까지 헌책방거리를 지켜온 인물이다. 책방을 열 때 10원짜리 한 장 없는 무일푼이었지만 같은 직장에 다니던 한 지인이 본인의 결혼지참금 32만원을 빌려 주었고, 그 돈으로 5평 남짓한 책방을 연 것이 현 아벨서점의 전신이었다.
 
도시의 형태가 변화하고 그 변화의 일환으로 헌책방을 찾는 사람들이 급속히 줄어 어려움도 있었지만, 곽 대표는 헌책방 거리를 떠나지 않고 한 자리를 지켰다. 2003년에는 아벨서점 옆 건물에 서관을 하나 더 내면서 ‘시 다락방’이라는 이름의 책 전시 및 활동 공간도 열었다. 오랜 시간 책을 다뤄오다 보니 지역의 주요 매체에서도 제법 조명이 됐고, 주변 사람 중 몇몇은 문인 활동에 대한 권유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롯이 책방지기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했고, 어쩌면 남들에겐 ‘미련해 보인다’고도 할 수 있는 그 뚝심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10년 전 정도만 해도 신학기를 맞게 되면 책방도 매출이 나름대로 있고 했는데, 이젠 그런 시대가 아니잖아. 그런데 나는 이 상황에서 오히려 희망이 있다고 봐. 책을 통해서 사람들이 진짜 인문학이라는 공간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싶거든.”
 


아벨서점이 2003년 낸 '시 다락방' 입구. ⓒ배영수



이제는 5곳 밖에 남지 않은 헌책방 가운데 한 곳이지만 아벨서점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매달 진행하고 있는 시 낭송회와 ‘한 권의 책 전시’라는 특이한 콘셉트의 전시회다.
 
지난 2007년부터 매달 하고 있다는 시 낭송회는 곽 대표가 아벨서점의 모토라고 했던 ‘살아있는 글들이 살아있는 가슴에’라는 표현을 현실화시켜 주는 것 중 하나다.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냐고 묻자 그런 성격의 것은 절대 아니라고 한다. 직접 시인을 초대하고 그 시인의 작품을 살리는 작업의 일환으로, 시 자체를 연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참여할 만한 성격은 처음부터 아니었다는 것이다. 곽 대표는 “시를 모신다”고 표현할 정도로 극진한 마인드를 갖고 작업에 임한다.
 
특히 이번달 27일에는 지금은 고인이 된 문익환 목사의 시를 모신다고 한다. 문 목사가 배다리와 큰 인연은 없지만, 일생동안 생명과 자연을 강조했던 삶 자체가 현재 배다리에서 공동체 단위로 벌어지는 활동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또 직접 시인이 되어 나서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어 매년 6월, 12월에는 ‘나도 시인이 되는 날’이라는 주제로 낭송회가 열리기도 한단다. 글과 마음이 뜨거운 사람들의 활동이 좋아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또 곽 대표가 직접 접한 책 전체를 복사해서 전시하는 ‘한 권의 책 전시’는 아벨서점만의 특별한 전시회로 이미 자리를 잡아 지역사회에서 호평을 얻고 있다. 지금까지 10번 정도 해왔다는 곽 대표는 책에서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낀다고 했다. 정신이 실리는 것이 책이고, 그 맛을 보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도 했다. 그렇게 많이 쌓여있는 책들 하나하나를 아직도 손수 정리하는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이렇게 책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부분을 가장 중심에 놓자 생각 있는 사람들이 모였다. 특히 아벨서점 '시 다락방'의 묘책이라는 독서기반의 모임은 지난해 인천문화재단의 동네방네 아지트 사업에도 선정돼 여러 활동들을 펼쳐 좋은 반응을 이끌기도 했다. 묘책 모임의 특이한 점은 일정한 리더를 정하지 않고 그날 독서모임에서 나눌 책을 정한 사람이 그날의 모든 일정을 관장하는 것이다. 이 별난 모임을 운영해온 인물은 박수희씨. 인천시가 운영하는 온라인 매체 ‘I-View’의 객원기자 등 사회활동을 해온 인물로, 이제 일흔이 된 곽 대표와는 꽤나 세대 차이가 있지만 이를 허물고 친구처럼 지내왔다고 한다.
 
“애초에 배다리라는 이 동네 자체가 좋아서 모인 사람들 중에, 책이 취미인 사람들 위주로 활동을 하고 있는 모임이 묘책이예요. 아벨서점과 시 다락방은 제가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하는 공간입니다. 묘책의 모임을 여기서 하게 되면 모임의 순간만큼은 우리만을 위한 공간으로 변모한다는 사실이에 만족감이 커요. 곽 대표님이 서점 관리를 거의 손수 다 하셔서 모든 시간을 곽 대표님과 함께 할 수는 없지만, 물심양면으로 많이 도와 주셔서 활동도 잘 할 수 있고 보람도 큽니다” (박수희)
 
곽 대표는 아벨서점과 이 공간을 사랑해 모인 사람들을 통해 책이 시공간을 초월한 친구와 같은 존재로 인식됐으면 하는 바람을 늘 갖고 있다. 자신의 힘이 보잘 것 없지만, 이 곳을 자신이 아닌 책이라는 존재가 지켜줄 것이고, 그것이 한 세대를 타고 또 흐를 것이라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땐가 한창 책 정리를 하고 있는데, 어떤 분이 혼자 책방에 오셔서 책도 보시고 30분 정도를 시 다락방에 있다가 가시면서 ‘자기가 평생동안 만나고 싶었던 걸 만나고 간다’고 하더라고. 그럼 난 그 한 사람에게는 성공의 삶을 준 거잖아.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런 마음을 다 느끼지는 못할 거라고 보지만, 책방은 원래 자신을 어떤 지향점이랄까, 그 선상에 놓고 여행하는 공간이거든. 책에는 그런 무한한 세계가 있다고 생각해. 내 후세대에도 누군가는 책이라는 존재를 소중히 아끼고 지켜갈 거야.”
 


지난해 아벨서점을 기반으로 활동을 펼쳤던 ‘묘책’ 모임의 운영자 박수희씨(사진 왼쪽)와 곽현숙 대표. ⓒ배영수